한 거 없이 피곤한 이유. 호랑이와 하이파이브.
"왜 이렇게 한 거 없이 피곤하지?"
피곤하다는 것은 분명 뭔가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게 없다고 느껴진다. 도대체 뭘 한 걸까?
보통 앉아 있다가 이 말을 한다. 그리고 주로 앉아서 컴퓨터나 핸드폰을 쳐다보다 말한다. 한 게 없지 않다. 정보처리를 했다. 그것도 아주 많은 양의 정보처리를 말이다.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하거나 장소를 옮겨 다니면 뭔가 많이 한 것 같은 느낌이 난다. 그러나 디지털 매체를 활용하여 정보처리를 한 경우. 특히 소비 위주의 정보처리를 한 경우 결과물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한 게 없다고 느낀다.
스크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가치를 준다. 우리는 앉은자리에서 지구 반태 편 뉴욕에 살고 있는 고양이의 생활을 볼 수 있다. 직접 갔다면 비행기 값과 숙박비만 벌써 몇백만 원 들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무언가 구매하려고 마음먹었을 때도 모든 옵션을 검토할 수 있다. 자주 사는 물건이 아니고 가격이 비싸다면 더 긴 시간을 투자하여 최고의 선택을 할 수 있다.
But. 아이러니하게도.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정보가 풍부한데도 불구하고. 쉽게 선택하지 못한다. 선택을 했을 때 그 결과가 조금이라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후회와 죄책감을 느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보가 다 널려 있는데도 내가 그걸 놓쳤다니. 담엔 더 살펴봐야겠다."
그럼 더 살펴보면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아쉽지만 그렇지도 않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올린 리뷰 코멘트는 광고비를 받고 작성한 글일 수도 있고 심지어 AI가 작성한 정보일 수도 있다. 믿음이 가지 않으니 뇌는 자체 정보 보안 분류 모델을 통해 참과 거짓, 진정성과 최신성, 신뢰성을 파악한다.
이 복잡한 정보처리 과정에서 수많은 광고 배너를 무시하고, 수많은 숏폼과 흥미성 콘텐츠를 무시하는 에너지. 종종 날아오는 스팸문자와 단체카톡방에서 떠드는 알림까지 메인 업무를 방해한다.
처음엔 분명히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갈 만한 식당을 검색하기 위해 스크린에 들어왔는데 나중엔 뉴욕 뒷골목 고양이의 독특한 매력에 빠져 있는 나를 발견한다. 게다가 그 고양이는 3년 전에 본 고양이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한다는데 호랑이 굴이 꼭 스크린 속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호랑이 굴에는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뺏는 것이 너무 많은 데다 호랑이굴에 왜 들어왔는지 잊어버릴 만큼 많은 양의 정보가 내 뇌를 지나간다.
문제는 우리가 '호랑이 굴'은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 '스크린'은 너무나 익숙하고 자연스러워서 조심성 없이 마구 돌아다닌 다는 것이다. 디지털 공간은 실제 세상의 정보를 저장하고 보여주는 것이기에 즐거움과 의미 있는 것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위험과 범죄도 함께 존재한다.
그런 디지털 세상을 스크린을 통해 여행을 하였으니 피곤할 수밖에 없다.
'뭔가 한 게 없는데 피곤하다.'라고 말하지 말고
'스크린 속 세상을 여행하면서 정보처리를 많이 해서 피곤하다.'라고 말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다.
"호랑이굴에 가도 정신 차리면 산다."
이제 스크린이 호랑이 굴이란 걸 알았으니 정신을 차리자.
1. 스크린에 들어가기 전에 목적을 적자.
이거 은근 효과 있다. 포스트잇에 적어서 스크린에 실제로 붙이면 확실하다. 다하면 포스트잇을 뗄 수 있다.
2. 타임박싱을 한다.
15분에서 30분 정도 예상 소요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에는 목적한 것에 집중한다.
3. 결과를 확보한다.
구매였다면 구매를 하고, 탐색이었다면 탐색 결과를 리스트로 만든다. 유튜브 시청이 목표였나? 그렇다면 최소한 유튜브 시청 결과에 대한 후기를 짧게 기록하자. 유튜브를 통해 새로이 알게 된 지식이나 관점이 발전하거나 유튜브와 멀어지거나 어느 쪽이든 우리에게 도움 될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스크린에 들어가야 하는 시대다.
디지털 시대인데 스크린을 멀리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잘 다루는 쪽으로 훈련하자.
운이 좋다면 호랑이랑 하이파이브를 할 수준이 될 정도로 단련될 것이다.
오늘도 스크린에 들어가야 하는 우리. 호랑이굴을 무사히 제때 빠져나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