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세바돈 - 폰페라다 (28km)
조금만 움직여도 심하게 삐걱거리는 2층 나무침대가 있는 방에선 짐을 쌀 수가 없어 아예 다 챙겨 앞에 있던 마당으로 나와 그곳에서 짐을 쌌다. 살짝 쌀쌀했지만 짐을 챙기며 하늘 보다가 별똥별도 하나 봤으니 수확이 아주 없진 않았던 것 같다. 새벽 일찍 나와 준비해준 알베르게 스텝 덕에 따뜻한 커피와 빵을 먹고 길을 나설 수 있었다.
어둡지만 넓은 산길을 별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는데 어디선가 엄청난 한국인 젊은이 무리가 뒤쪽에서 다가왔다. 아마 어제 라바날 데 까미노에서 묶었던 사람들인가 보다. 어둡고 숨도 차서 굳이 아는 척은 하지 않고 조용히 하늘만 보며 걷다가 별똥별도 하나 더 봤지만 소원은 못 빌었다. 희미한 내 헤드렌턴과 다른 순례자들의 밝은 랜턴/휴대폰 플래시에 의지해 한 시간 정도를 걷자 영영 어두울 것만 같던 하늘 한쪽이 어슴푸레 밝아지며 까미노의 상징 중 하나인 철 십자가에 도착했다.
이틀 전에 아스토르가에서 철십자가 진품을 봤던지라 엄청 큰 게 아니란 건 알고 있었지만, 십자가를 받치고 있는 기둥의 높이가 꽤 있어서 어둠 속에선 그 끝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십자가만큼이나 유명한 것은 그 밑에 가득한 돌무더기. 자신의 고향에서 가져온 돌, 혹은 자신이 버리고 싶은 것을 돌에 적어 이곳에 두고 가면 버릴 수 있다는 말이 있어서 지역과 사람의 이름이 적힌 돌, 무언가 길게 적혀있는 돌들이 십자가 밑에 언덕처럼 쌓여있었다.
같은 알베르게에서 비슷한 시간에 아침을 먹고 출발했던 벨기에 할아버지 순례자가 두 손으로 들어야 하는 크기의 돌에 가족의 이름을 가득 적어 십자가 밑에 내려두고 있었다. 저렇게 무거운 돌을 설마 고향 벨기에에서부터 가지고 온 걸까 싶어 대단하게 보였다. 난 까미노 걷던 첫날에 주운, 정말 가벼운 작은 돌멩이를 그곳에 내려두고 왔다. 나와 함께 한 달 가까이 걸었으니 나름 나의 단점을 많이 보았을 것이라는 소박한 합리화를 하면서.
이어지는 차도를 따라 내려오는데 등 뒤에서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높은 봉우리를 지나쳐 내려가는 거라 해는 산 아래쪽에서 아직 위로 올라오지 못해 하늘만 밝아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차도를 벗어나 등산로처럼 이어지는 순례길 쪽으로 들어서니 정말 헉 소리가 절로 나오는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높은 봉우리들 사이에 구름 같은 안개가 잔뜩 내려앉아 있어, 그야말로 '운해'의 모습이었다! 구름 같은 안개는 끝도 없이 이어져 지평선에 닿을 듯 멀어 보였고 그 바로 위는 새파란 하늘이라서, 중간중간 보이는 푸른색 산봉우리들이 아니었다면 영락없이 비행기 위라고 착각할 법한 모습이었다.
엄청난 장관에 순례자들은 너도나도 휴대폰 카메라를 꺼내 풍경과 자신과 친구들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사진을 잘 부탁하지 않던 나지만 이 풍경에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외국인 순례자에게 사진을 부탁했고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멋진 풍경에 서있는 4등신 사진을 얻었다.
내리막길의 엄청난 운무에 감탄도 잠시, 잠깐 정신을 조금 놓은 사이에 길을 살짝 잘못 들어 정신을 차려보니 웬 송전탑과 전력센터 같은 건물의 입구다. 당연히 문은 잠겨 있었고 원래의 길로 되돌아가려면 한참을 돌아가야 할 것 같아 구글 지도를 켜고 원래의 까미노를 찾아보았다. 까미노는 내가 있는 언덕 아래쪽으로 나 있었다.
송전탑 앞 헬기장 한쪽 수풀 쪽으로 들어가면 원래의 까미노에 그나마 빠르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수풀에 뭐가 있는 줄도 모르고 무작정 걸어 들어갔다. 수풀치곤 희미한 샛길 같은 흔적이 있어서 ‘역시 다들 나처럼 헤맸구먼!’ 하는 생각도 잠시, 발아래 곳곳에 보이는 하얀 휴지와 무언가를 보면서 그제야 이곳이 순례자들의 비공식 화장실이었던 것을 깨달았다.
얼굴 높이에는 수풀 사이의 거미줄도 꽤나 있어서 손과 발이 모두 바쁜 길 아닌 길을 한참을 뚫어 ‘진짜 길’에 도착했다. 발 밑의 수상한 물체도 거미줄도 없었지만 그때부턴 정말 지옥의 내리막길이었다. 위에서 볼 땐 그저 아름답기만 하던 운무 속으로 걸어 들어가니 급기야 축축하고 앞도 잘 보이지 않는다. 해결 방법이 뭐 있나, 그냥 가야지.
작은 마을 만하린은 그냥 지나고 다음 마을 아세보에서 또르띠야와 토마토가 발라진 빵을 조금 먹으며 기운을 차리고 다시 출발했다. 다시 굉장한 내리막길이 펼쳐졌지만 다행히 밥 먹는 사이에 안개가 걷힌 건지 구름으로 올라가버린 건지 길은 맑게 개어 있었다. 내리쬐는 햇볕을 받으며 그 사이에 바싹 말라 흙가루가 날리는 바위 길을 걸었다. 푹신한 흙으로 덮인 산이 아닌 단단한 바위 산이었는데, 바위 위에 흙가루가 얇게 쌓여있어 오히려 까딱하면 미끄러질 것 같아 잔뜩 긴장한 채로 내려갔다. 무릎이며 발목이며 어느 한 곳 바짝 긴장하지 않은 부위가 없어서 등산 스틱 하나라도 챙길걸 하는 후회가 가득했다. 급경사를 오르고 급 내리막을 내려가는 재미로 등산을 즐기시는 엄마가 이곳에 오셨다면 재밌게 산을 타셨겠지만 완만한 등산을 즐기는 내겐 너무나 험난한 길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계속된 내리막이 끝날 무렵 유럽풍의 아름다운 마을 몰리나세카가 눈앞에 나타났다. 남색 지붕과 하얀 벽으로 만들어진 크고 작은 건물들이 숲과 나무, 개울과 그 위의 다리와 함께 조화롭게 어울려있는 아주 예쁜 마을이었다. 사람들이 머릿속에 꿈꾸는 전형적인 유럽의 작은 마을의 느낌. 이 마을에서 묶어도 좋겠다 싶었지만 목적지인 폰페라다에 숙소 예약도 했거니와, 폰페라다에 있는 스포츠용품점 데카트론에 가서 살 물건들이 있어 눈물을 머금고 마을을 지나쳤다. 마을 중앙에 나 있는 길을 통과할 때 어제 라바날에서 잠깐 만났던 H를 다시 만났고 짧은 인사를 나누고 몰리나세카 마을 끝까지 걸어가 그늘 밑 벤치에서 잠시 발을 말렸다.
목적지 폰페라다까지는 약 7km 정도 남아 있었고 1시간 반 정도는 더 걸어야 했다. 몰리나세카에서 폰페라다까지 바로 이어지는 길도 있었지만 중간에 캄포라는 마을을 거쳐가는 루트를 선택했다. 살짝 돌아가는 길이었지만 캄포 마을에 있다는 로마시대 저수지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래 머물진 않더라도 지나가면서라도 슬쩍 보려고 했는데, 작은 입구가 자물쇠로 잠겨 있어서 작은 담장 너머에서 까치발로 쓱 훑어만 보고 말아야 했다. 몇몇 가문의 문장이 집 벽에 돌로 새겨져 있어 아쉬운 대로 그 구경을 하며 캄포를 지나 다시 지루하게 이어진 작은 차도를 걸어 드디어 폰페라다에 도착했다!
새벽부터 이어진 고된 산행 때문인지, 내리막길에서 잔뜩 긴장했던 영향인지 체감은 30km 넘게 걸은 듯했는데 쓸데없이 정직한 스마트워치와 휴대폰 건강 앱은 오늘 내가 걸은 거리가 28km 정도라고 알려준다. 너무 지쳐서 빨리 숙소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에 숙소 위치만 대충 찍고서 길도 확인하지 않고 그 방향으로 직진하느라 오히려 길을 잃어버려 숙소를 찾는데만 10분을 헤맸다. 아무리 힘들어도 샤워와 빨래까지는 마치고 점심이든 간식이든 먹어왔던 나였지만, 오늘만은 너무나 힘들어서 가방과 무거운 등산화만 던져두고 숙소 바로 근처에 있는 바로 뛰듯이 달려가 참치 파이에 맥주 하나를 시켜 한입에 털어 넣었다.
꺼질듯한 허기를 그렇게 달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샤워와 빨래 널기를 마치고 잠시 멍 때리다 폰페라다의 유명한 곳을 보러 출발했다. 폰페라다 하면 역시 성당기사단 성이 가장 유명해서, 입장권을 사서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원래 가격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페레그리노 세일, 순례자 할인을 받아 입장했다. 오디오 가이드도 있었지만 한국어는 없었고 영어로 들어봤자 제대로 알아듣는 단어가 몹시 적을 것이기에 돈 낭비 말고 느끼는 대로 보자(?)는 마음으로 성을 둘러봤다.
가이드북에 적힌 바로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중세 이후에 붐이 일면서,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와 교인들을 노상의 각종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고, 각 지역의 큰 거점을 중심으로 성당기사단이 활성화되었는데 이 지역에선 폰페라다의 성당 기사단이 가장 크게 활성화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성벽이 세워진 시기는 11세기~12세기까지도 거슬러 올라가서, 거의 천 년에 가까운 세월을 자랑하고 있었다. 예전에야 성당기사단의 본부였겠지만, 이젠 유적과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성을 한참을 둘러보고서, 발길을 돌려 스포츠용품점 데카트론으로 향했다.
애초에 사려고 했던 물건은 갈수록 추워지는 가을 날씨를 대비한 두꺼운 겉옷과, 프로미스타 인근에서 잃어버렸던 장갑을 대체할 새로운 장갑이었지만 낮에 철의 십자가 이후 내리막길을 내려오면서 등산스틱 한 세트를 머릿속 장바구니에 추가한 상태였다. 오늘 하루 너무 많이 걸어 더 이상은 못 걷겠다고, 버스든 택시든 타고 이동하려 했지만 그러기엔 성당 기사단 성에서 너무 쌩쌩히 돌아다녔기에, 그냥 눈 꼭 감고 데카트론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한국을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정확하다는 구글 지도의 명성에 어울리게, 데카트론은 지도 위 딱 그 지점에 위치해 있었고 난 빈 장바구니 하나를 잡고서 위풍당당하게 그곳으로 입장했다.
생각했던 것만큼 엄청 싸진 않았지만 순례길중에 마주치는 대도시의 기념품 샵에서 파는 물건들보단 질도 좋고 가격도 저렴했기에 부담 없이 필요한 물건들을 고를 수 있었다.
첫 번째로 고른 것은 점퍼. 10월에 들어서면서 이젠 누가 봐도 늦여름이나 초가을보단 확연히 추워진 완연한 가을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가지고 온 것은 일회용 비닐장갑만큼이나 얇은 바람막이 하나였고, 일찌감치 팜플로나에서 샀던 두툼한 카디건은 푹신하고 따뜻하긴 했지만 새벽의 찬 바람까지 막기엔 역부족이라 좀 더 두께감 있는 외피가 필요했다. 한국의 등산용품점에서 봤던 것들과는 조금 다른 디자인에, 유럽인 체형에 맞춰 나와 팔이 길고 흉통이 좁았지만 그래도 어깨에 맞는 점퍼 하나를 골라 장바구니에 집어넣었다.
두 번째로 고른 것은 장갑. 프로미스타의 바에서 잠깐 머물렀을 때 흘린 뒤로 장갑 없이 다녔는데 역시 새벽이 생각보다 추워서 장갑이 있었야겠다는 생각에 몇 종류 없는 장갑 중에 하나를 골랐다. 적당한 두께에 미끄러지지 않는 고무 패드까지 부착된 한국산 장갑과는 비교하기에도 민망한 퀄리티와 가격이었지만 당장 급했기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세 번째로 고른 것은 스틱. 한국에서도 종종 한라산을 오르곤 해서 스틱을 가지고 있었지만, 순례길 나서기 전에 들렀던 세미나에서 ‘제대로 사용하지 않을 거라면 스틱은 없는 게 낫다’라는 조언을 해주셔서 스틱은 아예 챙기지도 않고 비행기에 올랐었다. 그리고 그 조언대로, 정말 대부분의 구간에선 스틱이 필요가 없었다. 단 한 구간, 이라체 고개에서 폰페라다로 이어지던 오늘의 내리막길에서 나는 왜 내가 스틱, 하다못해 굴러다니던 나무 막대기 하나도 찾아보지 않았었는지 절절히 후회했다. 내리막길도 완만하거나 흙길이었다면 발 끝에 힘을 주어가며 내려가도 괜찮았겠지만, 마치 관악산과 같은 바위 가득한 내리막길에 고운 흙과 모래가 바싹 마른 채로 내려앉아있어 발을 조금만 잘 못 디뎌도 주르륵 미끄러지기 십상이었다. 요철이 없는 내리막이면 그냥 쭉 달리듯 내려가면 속도도 빠르고 다칠 위험도 적었겠지만 삐죽한 바위들이 가득하고 주변에 잡고 내려올 나무들도 없는 넓은 능선 내리막길에선 살금살금 내려가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 내리막을 내려오며, 나는 기필코 큰 도시에 가서 스틱을 사겠노라고 다짐했던 차였다.
이 세 가지 물품을 구입하는데 든 가격은 69.95유로. 환화로 9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이었다. 나름 뿌듯한 쇼핑을 마치고 숙소 돌아오는 길에 먹거리도 몇 개 사서 던져두고 다시 길을 나서 본격적인 디너타임을 가졌다. 폰페라다 성 바로 앞의 멋진 바에서 하몽과 빵, 소시지, 와인을 맛있게 먹고 나와서 폰페라다 도착하자마자 갔던 바에 다시 가서 맥주 하나와 햄버거까지 알차게 먹으며 2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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