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백련사 다산 정약용 혜장스님 아암장공의 탑명

by 꽃뜰


<2017년 3월 여고동창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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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이 다산초당에 기거하게 된 것은 해남 윤 씨의 자제들을 가르치기 위해서였지만 백련 사 주지 혜장 스님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해남 대흥사에서 스물 아홉 젊은 나이에 지도자를 지낸 똑똑하고 자유로운 승려 혜장선사에게 경학에 밝은 학자 정약용은 비록 귀양을 온 사람이지만 가뭄에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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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와 다산초당을 오가는 오솔길은 그런 둘 사이의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는 길이다. 둘은 서로를 그리워한 나머지 하루가 멀다 하게 숲길을 오가곤 했는데, 어느 날에는 하루 종일 정담을 나눈 후 밤늦게 돌아와서도 다시 가서 보고 싶어 애를 태우곤 했다. 그러나 혜장 스님은 서른아홉 살 나이예요 절하고 만다. 정약용은 몹시 슬퍼하며 '아암장공의 탑명'을 써서 그를 기리는데 이 글에서 정약용은 둘이 처음 만나 <주역>을 논하던 광경을 마치 사진처럼 선명하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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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 생활을 하던 다산에게 혜장선사는 참으로 좋은 말벗이었다. 한 번은 다산초당을 나선 다산이 백련사에 이를 무렵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이때 절 입구까지 마중 나왔던 혜장선사는 급히 달려가 다산의 손을 꼭 잡는다. 그리고 집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안 하고 손을 꼭 잡은 채 처마 밑으로 발걸음을 옮겨 반가움의 안부를 나누는 게 아닌가. 너무 반가워 서로 그 두 손을 놓지도 못한 채 말이다.


혜장 선사? 선사가 뭘까?


禪 고요할 선

師 스승 사


선사(禪師)는 선정(禪定)에 통달한 승려를 부르는 호칭이다.


그렇다면 선정은 또 뭘까?


禪 고요할 선

定 정할 정


선정(禪定) 이란

산란한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여 흔들림 없이 모든 생각이 하나가 된 상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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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장선사는 다산보다 열 살이 적었다. 논리적인 다산에 비해 고집이 세고 다른 사람들에게 지기 싫어하는 편이었다. 한 번은 다산 정약용이 혜장 선사에게 "고집을 조금 버리고, 아이처럼 순해졌으면 좋겠다."라고 조언을 했다. 다산의 진심 어린 조언을 받아들인 혜장선사는 스스로 자신의 호를 '아암(兒菴)'이라 칭하며 예의를 갖췄다. 아마 다른 사람의 말이었다면 듣지 않았을 수도 있다. 1811년 가을, 39 살의 나이로 혜장선사가 입적한다. 입적?


入 들 입

寂 고요할 적


입적은 승려가 죽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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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슬픔은 어마어마했다. 마음이 통하는 유일한 벗을 잃은 다산. 그 슬픔과 아픔을 적어 놓은 것이 바로

'아암장공의 탑명 兒菴藏公塔銘'이다. 해남 대흥사 부도밭에 세워져 있다.


빛나는 우담발화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시들었네.

펄펄 나는 금시조
잠깐 앉았다 곧 날아갔네.

슬프다,
이 아름답고 깨끗함이여

지은 글 있어도
전할 사람 없어라

그대와 함께라면
오묘한 진리, 깊은 이치도
열 수 있었으리

조용한 밤에 낚시 거두니
밝은 달이 배에 가득하네.

지난 봄에 입을 다무니
산속 동네가 너무 쓸쓸하다.

이름 역시 나이든 아이인데
하늘은 그 나이에도 인색했네.

이름이야 스님인데
행실은 유자(儒者)이네
군자가 어여삐 여긴 바로세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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