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여고동창들과 함께>
일단 아프지 말아야 바다고 산이고 아름다운 풍경이고 친구고 눈에 들어오는 것이지 내 몸이 아프고 보니
이거 저거 만사가 귀찮다. 아무리 뒤져도 이날 밤 사진은 꼭 두 장뿐. 그렇게 난 아팠다. 선옥이가 신혼여행
갔다가, 그때 제주도 가면 신혼부부들 호텔에서 모아 단체로 버스 태워 구경시켜주던 그런 프로그램 있었는데
그 버스 바로 옆자리의 신혼부부랑 의기투합해 핸드폰도 없던 시절 일정에서 벗어나 보길도로 샌 후 뒤늦게 서울로 와 시어머니께 팍 찍혔다는 바로 그때 묵었다는 민박집 추억의 그 민박집에서 오늘 밤 우리도 묵는다. 얼마나 감회가 클까 선옥이.
옛날 민박집 젊었던 주인 부부는 할아버지가 되었고 할머니가 되었다. 그 옛날을 추억하며 너무너무 좋다고
맛있는 것도 많이 주신다. "왕년에 우리 민박집이~" 호호. 호탕한 주인아저씨의 왕년 이야기를 우린 한참 깔깔대며 듣는다.
새롭게 이런 2층이 생긴 것만 다르다며 그때랑 꼭 같은 민박집 모습에 선옥인 마구 추억에 젖는다. 이곳 2층으로 올라가는 데 쌔앵~ 쌔앵~ 아, 찬바람이 얼마나 세차게 불던지. 으~ 추워. 이 날, 바람이 몹시 차가왔기 때문일까. 일정이 너무도 빡빡했기 때문일까. 나뿐만이 아니다. 길쌤도, 선옥이도, 명숙이도, 아프다 많이. 오슬오슬 춥고 배가 살살 아픈 게 어쩌지도 못하게끔. 선희랑 나랑 정희랑 명숙이랑 한 방이었는데 명숙인 아예 밥 먹으러도 못 내려가고 끙끙 앓는다.
나도 열이 나는 것 같으며 시름시름 앓았으니, 옆방에선 길쌤과 선옥이가 끙끙 앓고 험난한 밤이다. 정애가 미국에서 유명하다는 약을 내게 주어 먹고 푹 잠을 잔다. 아, 또 누군가가 내게 약을 주었는데, 미애였는지 정자였는지 선희였는지 선혜였는지 가물가물 여하튼 그 유명하다는 약을 주어 다음 날도 먹는다.
그렇게 아픈 밤은 시름시름 지나갔다. 그래도... 공룡알 해변은 가봐야겠지? 일찌감치 다녀온 팀. 이젠 떠나야 한다고 서두르는데 시름시름 아팠던 우리. 후다다닥 튕겨 나간다. "공룡알 해변을 안 볼 수야 없지." "빨리들 와야 해~ 배 떠난다~" "알았어~" 달려라 달려. 히히. 저 멀리 보이는 작은 섬은 치도. "공룡알은 어디에?" 그러나 공룡들이 그 옛날에 살았던 흔적이나 공룡알의 화석이 있는 게 아니었다.
바로바로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돌들. 자세히 보라. 커다란 공룡알처럼 타원형으로 둥글둥글 해변 전체에 이런 커다란 돌들이 쫘악 깔려 있었으니,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공룡알 해변'이었던 것이다. "난 공룡이 지나간
흔적이 있는 줄 알았어." "나도. 무슨 화석이 있는 줄 알았지." 하하. 우리는 제멋대로의 상상을 끝내며 공룡알돌을 밟고 찰칵찰칵 이른 아침에 사진을 찍는다. "영선아, 추워. 감기 걸린다." 알뜰살뜰 그 옛날 여고시절 짝지
챙겨주는 정자. 바람에 쓰러질 듯 뒤뚱뒤뚱하면서도 우리는 찰칵. 참으로 멋진 풍경. 바닷가 한가운데 떠 있는 외로운 섬 하며. 쌩~쌩~ 부는 춥지만 매우 상쾌한 바닷바람. 요렇게 조렇게 공룡알을 밟고 서서 포즈~ 또 포즈. 미제 약이 좋아서인가. 난 거뜬하게 일어나 다시 찰칵찰칵 하고 있다. "찍사도 찍으세요~" 밤 새 앓은 얼굴로 나도 찰칵 찍힌다.
얼마나 바람이 심하게 부는지 포즈 취하러 윤심이 옆으로 가는 데 뒤뚱뒤뚱 여차하면 공룡알처럼 커다란 돌멩이 바닥에 곤두박이쳐질 태세다. 조심조심. 넓은 해변에 쫘악 깔린 커다란 돌 공룡알. 썰물 때에 제일 잘 볼 수 있단다. 그렇겠지. 하하 자세히 보면 맨질맨질 얼마나 탐나게 생겼는지 모른다. 누군가... 하하 오이지 눌러놓기 꼭 좋게 생겼네. 하하 푸하하하 그러나 절대로 이 돌은 가지고 나갈 수 없다. 아주 엄하게 법으로 금해져 있다.
그냥 무심코 찍었는데 이제 와서 살펴보니 바닷가 끝자락엔 꼭 미경이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미경이는 하염없이 바다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바다에서나 조용히.
이젠 가야 한다. 배를 타야 할 시간이라고 서두르라고 난리다. 그래도 눈에서 놓고 싶지 않은 풍경 바다 그리고
작은 섬 딱 한 개. 해변 오른쪽을 보니 뾰족한 산. 이름하여 뾰족산. 보옥리 마을 안쪽을 감싸고 있는 이 뾰족산
아래 해안이 바로 공룡알 해변이다.
우리가 망끝 전망대에서 봤던 바로 그 뾰족한 산. 우린 그 아래 해변에 와 있는 것이다. 보고 또 보고 또 보아도 또 보고파라~ 바다 아. 멋지다. 얼마나 좋아 우리? 그 옛날 종로구 연지동에서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과 이렇게 함께 여행하니 말이야. 아 좋다. 우리 오래오래 이렇게 함께 하자.
무슨 소원을 담아 저리 차곡차곡 돌을 쌓아 올렸을까? 잘 있거라 우린 간다. 이제는 우리가 떠나야 할 시간.
한 번 더 바다와 작은 섬과 공룡알을 눈에 담고. 오 예. 출 바아 아아 알~
"꼭 들 다시 놀러 와야 혀!!!" 우리와의 헤어짐이 아련한 옛 추억이 너무도 너무도 섭섭하신 걸까. 왕년의 젊었던 민박집주인아저씨 헤어지는 우리들 일일이 악수하며 그 손을 놓을 줄 모르신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