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자본주의사회에서의 혐오에 관하여 (3)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성경에도 나올 만큼 고전적인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일을 열심히 해도 성과가 없다면 먹지 말아라로 바뀌었다. 너의 시작점이 어디든, 어떤 환경이든 상관없이 결과가 없다면 너에겐 자격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모로 가든 서울로 가면 된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말이다.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하지만 결과중심주의에 빠져있는 이 시대는 과정보다 나타나는 열매에만 주목한다. 그것이 GMO든 농약을 쳤든 상관없이 말이다.
A: SKY 4년제 (혹은 인 서울) 대학을 졸업하고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높은 어학점수에 대기업 인턴 경력 혹은 스타트업 업 창업 경력. - 정말 열심히 살았구나 평가한다.
B: 고졸. 계약직 직원으로 일함. 어학점수 없음. - 서류조차 통과할 수 없다.
A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자신들이 얼마나 중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했고 인턴이 얼마나 힘들었고 어학을 위해 노력했는지. 모든 것이 노력의 결과라고 말한다. 자신과 동일한 결과가 없는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아서"라고 이야기한다. "노오력-" 이건 비단 기성세대들이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말이 아니다. 지금 현재 대학생들도 말한다. 자신과 지방대 출신들이 같은 취급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말이다. 자신들이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거라고.
물론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다 틀린 말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며 보내고 대학에 들어갔지만 등록금과 생활비, 교재비를 감당할 수 없어 결국 자퇴하고 일을 시작하는 어린 친구들을 많이 만나보았다. 어릴 때부터 학원조차 다닐 여유가 없어, 집에 책상 하나 없어 방치된 친구들은 수학책을 펴도 물어볼 사람 하나 없다. 어렵게 공부를 해서 어학시험을 보지만 두 번 볼 수 있는 돈이 없다. 출발선이 다르다는 것, 그 선을 보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로 점점 굳어져가고 있다. 그리고 이 흐름에는 "자기 계발"의 신화도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성과중심 시대, 개인의 노력이 자기 계발은 사회구조보다 중요해진 시대에 중요한 불쏘시개가 되었다.
서점 한편을 가보면 자기 계발서로 한 코너가 가득하고 사람들도 가득하다. 습관을 바꿔라 아침을 바꿔라 긍정적으로 살아라 칭찬을 해라 인내를 해라 등등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계발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이 자기 계발이 나쁘니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좋은 습관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어느 시대나 중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자기 계발의 흐름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궁극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느냐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청교도 시대에서 시작된 절제의 미덕은 이후 번영신학 등과 연합하여 긍정의 메시지로 뒤덮인 사회를 만들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암도 이기고 부자도 될 수 있다는 것 노력하면 안 될 것이 없다는 메시지. 우리도 많이 들어보지 않았는가?
이 메시지는 결국 개인의 실패는 개인의 몫이라는 것이다. 암을 이기지 못한 건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못한 내 잘못이고 가난하게 사는 나는 죽을 만큼 노력하고 꿈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는 잘살고 있는 금수저들보다 오히려 사회로부터 기회를 얻어 조금 나은 삶을 살게 된 이들을 더 배척한다. 타고난 시대와 구조로 잘 살고 있는 자들, 자본주의 사회라는 말을 타고 힘차게 달려가는 이들은 다 그들이 노력해서 돈을 잘 벌었으니 할 말이 없네라고 더 이상 비판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보다 더 낮은 곳에서 출발한 이가 사회가 놓아주는 사다리를 밟고 내 곁으로 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최근에 한 공기업에서 비정규직을 대규모로 정규직화 한다고 발표하자 수많은 청년들이 들고일어났고 좌절했다고 한다. 물론 이 일이 잘되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청년들은 왜 자신들에게도 사다리를 놓아주어 더 높이 올라가게 해주는 것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더 아래에서 허우적대다 올라온 이들에게 더 분노하는가. 결국 이면에는 그들은 우리보다 노력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노력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어디서부터가 동일한 분량의 노력인가. 이러한 근본적인 이유를 들여다보고 정당한 곳을 향해 분노해야 한다. 우리가 모두 다 함께 잘 살기 위해서는. 사회의 바닥 20%에서 80%가 바글거리는 사회의 구조를 바라봐야 한다. 왜 저 위쪽 80%는 20%의 사람이 여유롭게 누리고 있는가. 우리는 왜 함께 잘 살지 못하는가. 우리는 현상 아래에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구조를 반드시 바라봐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은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그 근원을 돌아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엉뚱한 곳을 향해 분노와 혐오를 보내게 된다.
우리의 두 손은 낮을 곳을 향해 섬김을 보내고 높은 곳과 더 큰 구조를 향해 에너지를 내어 바꾸어 가야 한다. 데모를 하자거나 정치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부터 아주 작은 흐름을 바꾸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서 여성과 동물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구조가 바뀌어 간다. 평범한 사람들의 운동이 모여 플라스틱들이 줄어들고 하천이 깨끗해진다. 이제는 견고한 야수 자본주의에 우리의 인간성을 더해 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