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제 딸은 애교가 많은 것이 아닙니다.

애교, 여성과 남성, 그리고 감정표현

by 서박하

제 아이는 아주 사랑스럽습니다. 고맙다는 말도 엄마가 있어 좋다는 말도 망설임 없이 합니다. 길을 걷다가 밥을 먹다가도 사랑해라고 말합니다. 그 거침없는 사랑에 저는 늘 가슴이 벅찹니다. 이런 거침없는 애정표현을 동반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 종종 당황하기도 합니다. (남편은 사랑한다는 말을 아주 소중히 가슴 깊이 넣어두는 사람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감정표현을 잘 못합니다. 좋아도 슬퍼도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랐어요. 이런 감정을 표현하고 조절하는 것도 어릴 때 배웠어야 한다는 걸 나중에 공부할 때 알게 되었지요. 아버지는 저의 이런 모습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어요. 6~7살 때부터 너는 왜 이렇게 애교가 없냐고 하셨지요. 저는 애교가 뭔지도 몰랐어요.

아버지 어머니는 제가 기억할 때부터 사업 때문에 주말부부셨는데 주말에 아버지는 돌아오시면 이런저런 확인을 하고 저희를 혼내셨어요. 지금 생각하면 주중에 힘들게 지내시는 어머니를 대신해 훈육하셨던 거 같아요. 하지만 저희 3남매는 아버지가 오시는 걸 두려워하게 돼버렸지요. 그래서 늘 특별히 문제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와중에 애교는 생각도 할 수 없었지요. 원하는 게 있다면 애교가 아니라 노트에 기획서 비슷한 것을 썼습니다.

다만 저는 할아버지에게 늘 달려가 안기고 미소 지으며 할아버지 볼을 쓰다듬었지요 마구 뽀뽀를 날리기도 하고요. 그 넓은 품에서 저는 마음껏 제 마음을 사랑을 표현할 수 있었어요. 지금 제 딸이 제 아버지에게 그러듯이요.


저는 애교 없는 제가 부족한 딸이라 생각했어요. 남동생도 오빠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지요. 반대로 감수성이 풍부하고 여린 오빠는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 무도학원을 다니며 고생을 하고 그런 특이함 들을 부모님이 받아들이지 못해 아주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지요. 중학생 시절 밤늦게 오빠의 마음을 위로해주던 라디오가 부서지기도 했고 일기장은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남자답게 혹은 여자답게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각자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일까요?

제 아이는 거침없는 사랑 표현과 잘 웃는 성품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제 아이에게 '여자애라 애교가 많다' '천생 여자다'라고 합니다. 덧붙여 '엄마가 애교가 많은가 보네'라고도 합니다.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늘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제 아이는 그저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는 거랍니다. 애교가 많은 게 아니에요.



'애교'라는 표현은 한국에만 있다고 하지요. 한류 열풍으로 이 용어가 세계적으로 알려지며 'Aegyo'라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고 들었습니다. 딱히 대체할만한 영어단어가 없기 때문이지요. 비슷한 예로 '오빠'라는 단어도 번역이 어렵다고 영화 '기생충'의 번역가가 인터뷰한 것을 보았습니다. 오빠라는 단어도 애교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단어입니다. 구구절절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일단 한마디로 정리해본다면, 저는 애교라는 말이 이제는 한국에 없어지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에게 사랑스러워 보이기 위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흉내 내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면 되겠지요. 최근에 혀 짧은 소리를 내며 몸을 비틀며 뭔가를 해달라고 조르는 모습들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여자 연예인들에게 가끔은 남자 연예인들에게 애교를 요구하는 모습이 없어지면 좋겠습니다.


저는 지금 젠더에 대해 논쟁을 하려고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남자에게 치마를 입히자거나 여자에게 태권도를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도 아직 젠더이슈에 대해 더 공부해야 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은 분명 다른 점들이 있습니다. 다만 자신의 의견과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성별에 다르게 강요되는 문화는 이제 사라지면 좋겠습니다.


여성에게 너는 왜 애교가 없냐 이렇게 말하기 전에 네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해주세요. 그리고 망설이지 말고 더 많이 웃어주세요. 반가운 사람을 보면 제 아이처럼 뛰어가서 안아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또 섬세하고 감수성이 남성에게 씩씩하게 지내라고 하는 대신 어쩌면 그렇게 고운 생각을 하는지 감탄해주세요.


우리는 애교가 아닌 사랑의 표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애교가 아닌 사랑의 표현이 필요합니다. 성별에 관계없이 말이죠.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우리 모두 사랑한다 좋아한다 보고 싶었다고 마음껏 표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면 기쁘게 웃고 안아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겐 애교가 필요한 게 아니라 사랑을 표현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