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서 다시 내가 되는 시간
Photo by Bruno Martins on Unsplash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가끔 길을 멀리 돌아 집으로 돌아올 때가 있다. 대부분의 날들은, 아이를 데려다주고 노트북을 짊어지고 일터로 향하기 때문에 늘 잰 발걸음으로 걸어 다니곤 한다. 하지만 가끔 일부러 노트북도 집에 두고 핸드폰과 이어폰만 들고 나서기도 한다.
킥보드를 신나게 타고 어린이집에 도착한 아이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선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노라 존스를 튼다. 비가 와도 좋고 오지 않아도 좋다. 평소 워낙에 빠르게 걷는데 오늘은 조금 느리게 걸어본다.
아직은 오래된 가게들이 많이 있는 동네길을 걸으며 주변을 둘러본다. 매일 직접 빵을 구워 파시는 나이 지긋한 부부가 운영하는 빵집에서 향긋한 냄새를 맡는다. 나란히 줄을 맞춰 바구니에 담겨있는 복숭아들도 본다. 작은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할머니에게 미소 짓는다. 아이의 친구 엄마들에게 눈인사를 건넨다.
길을 건넌다. 대로변에서 누워있는 노숙인들을 지나친다. 어떻게 해서 길 위에서 지내게 되셨을까. 어떤 사연이 있을까. 코를 찌르는 냄새와 함께 여러 가지 생각이 뒤엉킨다. 슈퍼 앞에서 상자를 모으고 계시는 할머니의 굽은 등을 바라본다. 내가 사 먹는 커피 한잔 값을 벌기 위해 저렇게 고생하시겠지. 그러다가도 어쩌면 건물주인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담배를 피우며 걸어가는 아저씨를 피해 잰걸음을 놀린다.
중고물품을 많이 파는 거리를 지나간다. 낡은 신발과 가방들이 곱게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명품도 그렇지 않은 물건도 똑같은 자리에서 새로운 주인을 기다린다. 고운 옷을 입고 나온 젊은이들이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거리를 색색으로 물들인다. 한잔에 천 원 하는 아이스커피와 미숫가루가 힘차게 돌아간다. 고소한 마가린 냄새가 거리 한편을 채운다. 타투와 피어싱으로 가득한 청년도 등산조끼를 입은 아저씨도 모두 파란 천 원 한 장에 마음을 채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팔토시를 낀 힙한 원단 가게 사장님들이 들어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해서 들고 가신다. 1500원의 커피가 주는 한순간의 여유가 밀려온다. 오래된 상가들이 허물어지고 커다란 오피스텔 건물들이 들어서는 거리를 지나 걸어간다. 낡은 아파트에 들어간다. 오래된 아파트는 그 세월만큼 다른 문들을 가지고 있다. 나무문, 회색 철문, 금장 검은 문 등등. 오래전 부모님이 회색 페인트로 칠한 나의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간다.
엄마인 나에서 다시 39살 내가 된다.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