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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야 Sep 21. 2020

만토바와 토리노 바이올린

바이올린 이야기 #2

■만토바


    역시 이탈리아 북부 도시 만토바도 컨템포러리 제작 학파 중 하나로 꼽힌다. 밀라노, 볼로냐, 크레모나에 비해서 조금 ‘마이너’한 감은 있다. 만토바 학파의 기원은 Stefano Scarampella(스카람펠라)가 말년에 머물면서 지금의 만토바 학파의 시작으로 자리잡았다. 스카람펠라는 프랑스인 비안치에게 제작을 배웠고, 비안치는 이탈리아 제작자에게 악기 만드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스카람펠라는 평생 가난을 면치 못했지만 악기 제작 실력은 훌륭했는지 오늘날 명장의 악기로 인정받았다. 현재 경매에서도 스카람펠라 악기는 1억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이 되는 편이다. 물론 스트라디, 과르네리 하다못해 프랑스 악기인 J.B 뷔욤보다 더 낮은 가격이긴 하지만, 스카람펠라를 주 악기로 사용하는 전문 연주자들도 꽤나 있다.


Stefano Scarampella, Mantova 1922


    스카람펠라 이후 그의 제자인 Gaetano Gadda(가에타노 가다)가 뒤를 이어 만토바 스쿨을 이어받았다. 가에타노 가다 역시 악기 실력은 괜찮아서 현재 경매에서도 괜찮은 가격에 거래되는 편이지만 스승의 벽을 뛰어넘지는 못했다고 본다.


    가에타노 가다에 이어 그의 아들인 Mario Gadda(마리오 가다)가 만토바 스쿨을 이어받았고, 마리오 가다는 나름 오래 살면서 많은 악기를 만들었다. 물론 마리오 가다 역시 아버지 가에타노나, 아버지의 스승인 스카람펠라의 벽을 뛰어넘지는 못했다는 평이 있지만, 나름 전공생들이 그냥저냥 쓰는 악기라는 평이다. 후술하지만 마가다 본인이 말년에는 좀 장난질을 했다는 소문이 있어 말년에 제작된 악기는 인기가 없고, 아버지인 가에타노랑 작업했던 초기작이 더 비싸게 팔리는 게 특징이다.


Gaetano Gadda, Mantua circa 1930



Mario Gadda,1978


    마리오는 제자 두 명을 뒀는데 한 명이 처남인 Franco Forcellini(포셀리니), 조카인 Andrea Caccia(카샤)로 이어져 내려온다. 현재 생존해 있는 제작자다. 이들은 각각 만토바 스쿨의 수제자로 꼽히긴 한다. 포셀리니 악기가 카샤보다 조금 더 낫다는 평이지만, 노년의 포셀리니보다 젊은 카샤의 장래성을 더 높게 쳐주는 사람들도 많은 편. 특히 카샤는 2018년도 이후 만토바의 기원인 스카람펠라의 패턴을 연구해 현대 악기로 재현한다는 목표를 세웠다는데 정말 가능하게 될지는 현재 진행형이다.               



토리노


    토리노 지역은 과다니니가 말년까지 작업한 곳이라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또 지리적으로 토리노는 프랑스 접경 지역이었고, 1802년부터 1814년까지는 아예 프랑스령이면서 프렌치 제작 스타일 영향을 많이 받은 편이다. 샤노 등 프랑스 제작자와 함께 일한 사람도 많고, 바니쉬 스타일도 프랑스 스타일을 고집하는 경우도 있다.


    토리노 학파의 큰 흐름은 Giovanni Francesco Pressenda(프레센다), Giuseppe Antonio Rocca(로카), Carlo Giuseppe Oddone(오도네), Annibale Fagnola(파뇰라) 등 전설적인 제작자로 이어지고 오늘날엔 Dario Verne(다리오베르네) 등으로 이어졌다. 


    프레센다는 삼십대 후반인 37살에 처음으로 바이올린 제작을 시작했다. 고향인 이탈리아 소도시 알바에서 공방을 열었다고 망하고, 1820년 즈음에 토리노에서 다시 공방을 열었다. 프레센다가 유명해진 계기는 1824년 당시 토리노 왕실 오케스트라 악장이었던 Giovanno Battista Polledro의 지지를 받으면서다. 프레센다의 악기의 특징은 거의 동일한 사이즈의 패턴을 고집하였고, 판이 상대적로 두꺼운 원피스 뒷판을 선호했다(원피스 9, 투피스 1). 또한 스크롤을 크게 조각하는 것을 좋아했다. 또한 그는 스트라디 당시 크레모나의 바니쉬 레시피를 다시 복원하려는 마음으로 악기마다 다른 바니쉬를 적용했다. 하지만 자신의 바니쉬 레시피를 기록으로 남기거나 제자들에게 공유하지 않아 현재까지도 그의 바니쉬 레시피는 미궁 속이다.


    프레센다의 제자이자 오늘날에도 명장으로 거론되는 로카의 악기를 살펴보자. 로카는 27살 때 토리노로 이주하면서 프레센다 제자로 들어가면서 악기 제작활동을 시작한다. 로카의 악기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헝그리 정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평생 가난을 면치 못했기 때문에 저렴한 목재들을 가져와 많은 노력과 연구로 좋은 악기를 만들었다. 심지어 토리노 개울가에 설치한 다리에서 가져온 벌레가 파먹은 목재를 사용한 적도 있다고 한다.


Giuseppe Antonio Rocca    Turin 1848  “Doragon's blood”


    로카의 패턴은 초기작의 경우 스승인 프레센다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중기에 들어서 스트라디와 과르네리 패턴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만해도 스트라디나 과르네리 등의 악기를 전문적으로 연구했던 제작자가 로카 이외에는 드물었기 때문에 오늘날 로카 악기는 연구 대상으로 중요하다는 평이다. 또한 바니쉬 레시피를 제자들에게도 비밀로 부쳤던 프레센다의 영향으로 독창적인 바니쉬 레시피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Annibale Fagnola, Turin,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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