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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야 Sep 24. 2020

독일 바이올린

바이올린 이야기 #4

■독일


    유독 현악기 제작에서 독일산은 이탈리아나 프랑스에 비해 약한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독일 악기를 저악기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 독일의 바이올린 역사도 이탈리아만큼은 아니지만 뼈대 있다.


    독일 바이올린 제작자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Jacob Stainer(슈타이너)다. 무려 17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제작자다. 슈타이너가 활동했던 독일 미텐발트(Mittenwald)는 당시에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땅이었다.


Jacob Stainer, Absam c. 1655


    미텐발트 지역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자. 미텐발트 인근 독일 남부에는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 라는 큰 산맥이 있는데, 이 산맥은 바이올린 재료가 되는 양질의 스프러스(가문비나무)의 산지다. 스프러스 공급이 충분하기에 독일 악기는 가격대비 괜찮은 품질의 악기를 만들어왔다. 이는 근대~현대 독일 악기도 마찬가지고, 독일 뿐만 아니라 스프러스나 메이플(단풍나무)이 많은 동유럽도 마찬가지다.


    슈타이너가 제작하던 지역의 영주는 페르디난트 카를 대공(Archduke Ferdinand Charles)으로 그의 어머니와 아내가 이탈리아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여성이었다. 카를 대공 가문에 악기를 납품했던 슈타이너는 자연스럽게 아마티, 가스파로 등 이탈리아 악기의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슈타이너 악기의 가장 큰 특징은 아칭이다. 당시 다른 악기에 비해 배불뚝이 마냥 불룩한 것이 특징이다. 이는 이탈리아 크레모나 악기와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불룩한 아칭을 가진 악기는 장단점이 생긴다. 장점은 울림이 커지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지만, 단점으론 뻗어나가는 힘이 부족해진다. 쉽게 말해 가까운 곳에서는 예쁜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멀리서는 무슨 음을 내는지 모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슈타이너 스타일의 악기는 바로크 양식인 고전 실내악에서 주로 활용되지만, 오늘날 대규모 관현악단에서는 외면받는게 특징이다. 당시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인정을 받은 제작자는 슈타이너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크 시대인 당시 악기 편성도 궁정 내부의 실내음악 위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클래식이 궁정음악이 아닌 대중들을 향한 대규모 관현악단으로 진화하면서 슈타이너 악기의 선호도는 뻗어나가는 힘이 강한 이탈리아 악기에 밀리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시대연주를 선호하는 이들이나 독특한 악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악기이기도 하다.


    또 슈타이너 악기는 스크롤에 사자를 조각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당시 귀족의 취향에 맞춰 스크롤을 사자 머리로 조각했다는 말도 있고, 슈타이너 자신이 사자를 좋아했다는 말도 있다.



    슈타이너에 뒤를 이어 독일 학파를 계승한 가문은 Klotz Family(클로츠 가문)이다. 클로츠 제작 가문의 시작으로 알려진 Matthias Klotz I는 슈타이너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클로츠 가문은 Georg I, Sebastian I, Aegidius Sebastian, Johann Karl 등이 대를 이어 악기를 제작했고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이어졌다. 그 유명한 모차르트도 클로츠 가문의 바이올린을 사용했다는 소문도 있다.


    미텐발트가 아닌 다른 독일 지역에서도 악기 제작은 많이 이뤄졌다. 19세기 독일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19세기 독일은 지금의 독일 이미지와는 거리가 좀 있다. 중세와 근대 독일 역시 이탈리아처럼 프로이센, 작센 등 여러 국가로 갈라져 있다가 지금 독일의 국부이자 당시 프로이센의 철혈 재상으로 유명한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의 활약으로 19세기 중반에 통일 독일을 이뤘다.


Sebastian Klotz, Mittenwald circa 1750


    통일을 이루긴 했으나 당시 독일을 살펴보면 프랑스나 영국에 비해 기술력이나 문화가 한 수 떨어진 ‘B급’ 국가 취급을 받았고(물론 이런 이미지는 19세기 후반 독일-프랑스 전쟁에 독일이 승리하면서 뒤집어지게 된다), 인구수는 다른 서유럽 국가보다 더 많아 노동력 확보가 쉬웠다. 쉽게 생각하면 오늘날 중국이 당시 독일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늘날 현대 바이올린 제작에서 중국이 풍요로운 목재 자원과 압도적인 노동력에 힘입어 가성비 좋은 ‘공장형’ 바이올린을 찍어내다시피 하듯이, 당시 독일도 같은 알고리즘으로 중저가형 악기 시장을 평정하다시피 했다.


    19세기에도 기차가 있었고 심지어 영국과 헝가리, 미국에는 지하철도 있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악기를 제조하는 공장도 있었다.


    중저가형 악기를 찍어내던 독일 지역인 대표적으로 마르크노이키르센(Markneukirchen)이 있다. 지금도 정체불명의 독일 올드악기 라벨을 보면 해당 지역에 제작됐다는 글귀를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악기들은 당시 신문 전단지 광고를 통해 대중적으로 많이 팔렸던 것을 알 수 있다.



    마르크노이키르센에서 제작된 바이올린이 전부 저렴한 것은 아니다. 물론 중저가 바이올린이 많이 만들어진 도시이긴 했으나, 프랑스 도시 미흐뚜흐(Mirecourt)와 같이 수준급의 바이올린을 만드는 제작자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Ernst Heinrich Roth(로스)가 있다. 오늘날에도 로스 악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로스가 살아생전 만들었던 바이올린 공장이 지금까지 이어져오면서 로스의 이름을 붙여 생한 악기다.


    로스 공장에 만든 악기도 그럭저럭 쓸만하다는 평이지만, 예술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로스가 살아 있을적 직접 만들었던 악기다. 비록 일부 악기상의 평가지만 로스 바이올린의 소리 평가는 수 천만원대 악기만큼이나 훌륭하다는 의견인데, 가격은 그에 비해 훨씬 저렴해 인기가 많은 악기다. 주로 1910~1920년 사이에 만들어진 로스악기를 전성기라고 본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로스 악기가 경매에 올라오면 종종 입찰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미텐발트, 마르크노이키르센 이외에도 가까운 만하임(Mannheim)에서도 독일 남부의 영향을 받은 악기가 제작되기도 했다. 만하임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진 않지만, 주요 제작자로는 Wilhelm August Kessler 등을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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