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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그녀 Jan 27. 2020

'가족' 은 너무 무거워

- 우리 가볍게, 좀!

결혼을 하면 갑자기 생기는 가족?     


결혼을 하면 새로운 가족이 생기는구나, 생각은 했지만 처음부터 그 새로운 가족에 ‘나와 배우자’ 이외의 사람들을 염두했던 건 아니었다.     

  

결혼 전 나의 가족 구성원은 아빠, 엄마, 언니, 나. 이렇게 네 명이었다. 부모님이 이혼을 하고 한 집에 같이 살지 않았지만 그들은 사회에서 인정하는 우리 가족 구성원이다. 나의 가족관계증명서에 적혀 있는 가족.  

   

나의 엄마가 아들을 낳지 못해서 한스러웠다거나, 시댁 식구들에게 구박을 당했다거나 하는 말을 들은 적은 없지만, 내 결혼을 앞두고 엄마는 ‘사위’가 아닌 ‘아들 같은 사위’였으면 좋겠다는 속내를 밝힌 적이 있다. ‘아들 같은 사위’는 여자들이 질색하는 시어머니의 ‘딸 같은 며느리’와 다를 것 없지 않은가.     

 

애초에 엄마의 바람을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엄마, 그냥 남의 집 아들이야. 그렇게 생각해.’라고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을 때 엄마는 서운한 마음을 과감 없이 드러냈다.      


그럼에도 엄마는 ‘사위인데 알면 어때’ 라거나 ‘아들같이 좀 의지하고 그럼 좋잖아’ 같은 말들을 해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처음에 나는 철저하게 ‘가족’이라는 정의를 ‘나와 신랑’으로 규정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내가 그런 마음을 갖는다고 해서 한국 사회에서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라는 물음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살다 보니, 특히 아이를 낳고 보니 그건 한국 사회에서 영원히 불가능할 것처럼 느껴졌다.         

  

시부모님이라 어렵고 친정 부모님이라 괜찮은 건 아니야     


가족이 되었지만 시어른들이 내 생활에 지대한 불편을 끼친 건 아니었다.

시어머니는 먼저 전화를 걸지 않으셨고(남편이 전화를 받지 않을 경우에만 내게 전화를 하신다), 남편은 안부를 챙겨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결혼 후 시어른들이 우리 집에 방문한 건 10년 동안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적었다.      


오히려 아이를 주로 돌봐주시는 친정 부모님과는 자주 만나고, 소소한 일상을 함께 했다. ‘아이’를 부탁해야 할 때마다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고, 아이를 맡기는 일이 죄송스러워서 더 마음을 써야 하는 일들이 일어났다.  

    

결혼 후 한동안은 신랑도 늘 함께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나’만, 아이들이 생긴 뒤에는 특별한 날이 아니면 나와 아이들만 친정에 간다. 만약 지금까지도 내가 신랑에게 친정에 갈 때마다 같이 가자고 했자면, 서로 마음 상하는 일이 괜히 얼굴을 붉혀야 하는 상황이 종종 일어나지 않았을까.      


나뿐만 아니라 주변에 보면 육아를 이유로 친정 근처에 사는 부부들이 많아지고 있고, 자연스럽게 시댁보다는 친정 식구들과 어울리는 이들이 많아 보인다. 오히려 나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가까이 산다는 이유로 아이를 부탁하게 되는 친정이 가끔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성들은, 며느리들은 시어른들 때문에, 그 주변의 가족들 때문에 힘들다고 토로한다.  

    

장인, 장모는 사위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걸까?

손님 대하듯, 아들 대하듯 아끼고 소중하게 대해주나?

‘고부갈등’ 만큼이나 ‘장서갈등’도 심각하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리는데,

그럼에도 대체로 그런 이야기들은 금세 묻히거나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넘겨지고, 며느리들이 고충을 토로하는 이야기들은 왜 끊이지 않는 걸까?     


대부분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일의 대부분은 굉장히 소소하고 디테일하다. 그 소소하고 디테일한 요구가 한 번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제사 참여, 음식하기, 식사 준비, 식사 뒤처리, 생신 챙기기, 어버이날 챙기기 등등. 반면 남성들에게는 굵직한 문제이거나 일회성으로 끝나는 일들이 단편적으로 요구된다.

     

‘반복’ 해야 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힘들다. 그게 좋은 일이라도 질리고 말 텐데, 하물며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 그러니 여자들의 불만이 크게 터져 나올 수밖에 없지 않을까. 끝나지 않는 몸의 노동, 감정의 노동은 누구라도 지치게 만드니까.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을 때 절망스러우니까.    

  

앤서니 기든스는 『사회학의 핵심 개념들』에서 ‘가족은 혈연, 혼인, 또는 입양에 의해 맺어져 있고 서로에 대한 헌신을 공유하는 개인들로 구성된 사회집단’이라고 정의했다.      


「많은 사회학자들이 단일 민족 사회는 물론 세계 여러 사회들을 통틀어 다양한 가족 유형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함에 따라, 오늘날 ’ 가족‘을 정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됐다. - 같은 책 p259」

    

새로운 가족의 형태- 동거, 동성혼, 다문화가정 등-를 가족으로 인정하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구나 느껴질 때도 있다. 다행스럽지만 여전히 일부일 뿐이고 그들의 이야기가 들릴 때마다, 익명의 사람들로부터 이유 없는 악플과 질타가 여전히 이어지는 건 왜일까.      


사람들이 말하는 ‘정상가족’은 해체된 지 오래인데, 여전히 ‘정상가족’이라는 이상한 이데올로기가 존재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서로에 대한 ‘헌신’을 하는 건 여전히 ‘여성’들이 대다수다.      

Image by Rudy and Peter Skitterians from Pixabay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늘 도망치고 싶은 건 여성들이었고, 그렇게 도망쳐 자신만의 가정을 꾸린 뒤에도 여전히 다른 세계로 다시 도망치고 싶어 지는 여성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너무 높고 뾰족하다.

마치 함부로 도망쳤다가는 울타리도 넘기 전에 찔리고 말 것 같은 불안함이 늘 따라붙는다.   

   

게다가 내가 혼자 도망치고 나면 남겨질 아이들은 어쩌지 싶은 마음이 들고 나면 다시 ‘내가 좀 참으면 되겠지’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희생을 주입시킨다.           


가족은 너무 무거워     


결혼식을 올린 후 우리 부부는 1년이 넘게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 둘 다 먼저 혼인신고해야지, 하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 출산이 다가올 때쯤 결혼이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혼인신고서에 도장을 찍었다.      


종이 한 장인데, 혼인신고서에 도장을 찍고 나닌 드디어, 가족이 되었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이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구나. 촌스럽게 나는 또 그런 생각을 했다.  

    

도장 하나 찍는 게 뭐라고.

아니다. 그 도장 하나 찍힌 종이 한 장이, 가벼운 바람만 불어도 홀랑 날아가 버릴 것 같은 그 종이 한 장이 참 무겁게 느껴졌다.      


누구나 인정하는, 부정할 수 없는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만들어졌지만 든든하다는 생각보다는 두렵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는 이 가족을 잘 지킬 수 있을까?

잘 해낼 수 있을까?

엄마 역할이, 아내 역할이 내게 잘 들어맞는 옷인가?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고, 참고, 견디는 시간들이 늘어갈수록 침묵의 시간이 늘어 갔다.    

  

결혼 생활 10년이라는 시간은 그런 것들을 대충 무뎌지게 할 수도 있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정당하지 않다는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번 설 명절 우리 가족의 풍경은 이랬다.      

설 전 날 오후에 집을 나서 서울에 있는 어머님 댁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고, 뒷정리를 하고 서로 별 할 말 없는 무료한 밤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 떡국을 끓여먹고 어머님 댁을 나섰다.

점심쯤 친정아버지를 찾아뵙고 세배를 드리고, 밖에 나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잠시 집에 돌아와 쉬다가 저녁엔 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친정 엄마를 찾아뵙고 다시 세배를 드리고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1박 2일의 짧은 시간 동안 양가 부모님을 찾아뵙고, 함께 밥을 먹는 일이 마치 의무처럼, 지키지 않으면 안 될 책임처럼 느껴졌다.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여는 순간, ‘아- 이제 할 일 다 했구나’ 싶은 홀가분함을 느꼈다.   

    

일 년에 두 번 매해 반복되는 일이고, 그때마다 꼭 해야 할 일을 마친 것처럼 ‘해냈다’ 하는 마음이 드는 일. 친정인지, 시댁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이들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야 하는 일. 마치 일 년에 두 번 풀어야 할 과제처럼 느껴지는 일.  하지 않으면 혼이라도 날 것 같아 때론 마지못해 하게 되는 일.  한 달에 한 번 만나 밥을 먹고, 수시로 일상을 공유하며 살아가는데도 '명절'은 건너뛰면 큰 일 날 것 같은 무거운  책임감에서 언제쯤이면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전근대적 사회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모든 책임과 의무를 가족에게 떠넘기고 있다. 어려운 시대를 헤쳐 나갈 힘은 ‘가족’ 밖에 없다는 식의 논리는 여전히 사회 이곳저곳에 깊숙이 뿌리 내려져 있다.      


지켜야 하고 도움을 주어야 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돌봄과 지원을 책임져야 하는 사회적 집단이 여전히 ‘가족’ 뿐이라면 너무 절망적이다.     

 

힘들 때 그래도 가족밖에 없어, 라는 말은 때론 맞다.

남보다 못한 게 가족일 때도 있더라, 라는 말도 자주 맞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가족’이라는 말에 무거운 의미를 부여하면서 살도록 요구받는 건 아닐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말에서 벗어나 살아가고 있는데 나만 아직도 이러는 걸까 싶다가도 명절 전후로 기사화되는 불편한 이야기나, 맘 카페 등등에 남겨지는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아니구나, 여전히, 아직도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여자들은 엄마가 된 뒤 아이들에게만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갖는 게 아니라, ‘여성’으로서 학습받은 ‘희생’과 ‘헌신’이라는 말 때문에 시어른들 사이에서도, 친정 부모님 사이에서도 잘해야 한다는, 잘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어떤 죄책감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란 여전히 남의 이야기 일뿐, 나의 이야기가 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건 아닐까. 끊임없이 여성들에게 죄책감을 갖게 하는 사회 구조, 그것을 이겨내야 하는 것도 여성 스스로의 몫이어야 한다면 ‘이상한 정상 가족’에서 벗어 날 수 있는 희망은 없어 보인다.      


다양함이 진정한 다양함으로 존재하려면, 다양함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려면 ‘가족’이라는 말을, 그 의미를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우선 그간 ‘가족 중심’으로 이루어져 온,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많은 사회 시스템이 각각의 개인을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Image by Moshe Harosh from Pixabay


여전히 멈춰있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형형색색의 가족, 다른 모양의 가족, 아무것도 아닌 가족, 그냥 가족, 누구도 임의로, 함부로 규정하지 못할 ‘가족’의 모습을 꿈꾸는 건 너무 이상적인가.    

  

챙기고, 챙김 받아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때때로 죄책감을 나눠가져야 하는 사이 말고, 가장 친밀한 타인으로 인정하고, 인정받으면서 살고 싶다.

오늘 만났으니 우리 언제 또 시간 날 때 만나 함께 밥 먹자, 가볍게 인사하고 헤어질 수 있다면 좋겠다.

지켜야 할 사이 아니라 그냥 함께 살아가는 사이로 여길 수 있다면 좋겠다.

적당한 거리두기와 너는 너, 나는 나의 사고가 질타의 대상이 되지 않는 사회라면 좋겠다.     

 

그렇게 우리, 가볍게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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