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말로 던진 "밥 한번 먹자"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는 소심한 사람도 있다.
오랜만에 마주치게 되면 "밥 한번 먹자"라고 인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냥 빈말로 저런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나는 저 말을 들을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든다. '진짜 나와 밥을 먹고 싶어서 저런 말을 하는 것이면 어쩌나?' 하는 소심한 걱정 때문이다.
얼마 전 회사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러 가는데, 작년에 이직한 옛 동료와 마주쳤다. 내가 기억하는 그는 다소 직설적인 표현으로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받지만, 연차가 낮은데도 일을 잘하고 똑 부러지는 젊은이였다.
오랜만에 길에서 만나 다들 반갑게 인사는 했으나, 이내 어색한 분위기로 흐르게 되자 동료 중 한 명이 "밥이나 한 번 먹자"는 말을 던졌다. "이제 할 말은 다 했으니 각자 가던 길 가자"의 완곡한 표현이었음이 명백했으나, 그 젊은 직원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언제가 좋으신데요?"
밥 한번 먹자고 말한 동료는 물론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그 이직한 직원이 이미 식사를 한 것을 눈치챈 동료가 "지금 같이 갈까?"라는 말을 던졌다. 점심을 두 번 먹을 수는 없으니, 그냥 "나중에 연락하자" 하고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점심을 먹는 동안 그 직원에 대한 평가회가 열렸다. 눈치가 없다, 이기적이다, 사회성이 없다 등등의 험담이 이어졌는데, 대부분 별 실체도 없는 내용들이었다. 빈말로 던진 밥 한번 먹자는 말에 눈치 없이 진지하게 언제가 좋냐고 물어본 죗값 치고는 심한 것 같았다.
“밥 한번 먹자”는 말을 인사치레로 생각하지 않고 진짜로 “언제가 좋냐”라고 물어본 것이 그렇게도 큰 잘못인가? 이런 광경을 그 직원이 본다면 '대체 그따위 빈말은 왜 하는 거냐?'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그 직원이 먼저 밥을 사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지나가는 사람을 멈춰 세워놓고 쓸데없는 소리를 왜 하는지, 그래놓고 왜 욕을 하는지 내가 봐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에 나에게도 저런 일이 생기고 말았다. 가끔 만나서 점심식사를 하는 여자 팀장들이 있는데, 그들은 금요일 저녁에도 종종 만나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신다며 나에게도 나올 것을 권유했었다. 지금까지는 “나중에”라며 잘 넘어가 왔는데, 지난주에 갑자기 “맨날 다음이라고 하면서 언제 가능하냐?”라고 물어 오는 것이었다. 나는 소심하게도 “아.. 아.. 이번주에 갈게요.”라고 마음에도 없는 대답을 했고, 결국 금요일 퇴근 후 그들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맨날 나중에라고 하더니 오늘은 오셨네요”라는 뼈 있는 말을 억지로 웃으며 듣고 있어야 했다.
사실 나는 금요일 저녁 만남에 나오라고 하는 것이 진심인지 아닌지도 잘 몰랐다. “밥 한번 먹자”처럼 그냥 빈말로 던지는 것 같기도 한데, 생각해 봤자 마음만 불편하고 굳이 나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에 빈말인지 아닌지 확인할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냥 “나중에”라는 대답만 반복했던 것이다.
만약 처음부터 “나는 술도 안 마시고, 몸이 약해서 금요일이면 너무 힘들어 집에 가서 쉬어야 한다”라고 말을 했으면 어땠을까? 그래도 그들과 점심 정도는 가끔씩 같이 하는 사이로 지낼 수 있었을까?
세상에는 저 이직한 직원처럼 눈치 보지 않고 대범한 사람도 있지만, 나처럼 생각이 많고 소심한 사람도 많이 있다. 빈말인지 아닌지 모를 말들이 오가는 상황들에 대처하기란 나 같은 소심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부담스럽고 힘든 일이다.
“제발 마음 약한 소심이들을 위해서 성격 좋고 대범하신 분들이 빈말로 호의를 표하는 일을 조금은 자제해 달라”는 말을 대놓고 할 용기는 없어서, 이렇게 글을 통해서라도 소심하게 외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