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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묵한 해설자 Nov 18. 2024

정관장 홍삼은 안 먹는다

웃자고 한 말인데 왜 이렇게 민감하게 굴어?

웃자고 한 말에 웃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농담이 아니다.


사회 초년생 시절 사정이 생겨서 일주일 정도 친구집에 머물렀던 적이 있다. 부모님도 같이 계신 집이라서 빈손으로 갈 수 없어 정관장 홍삼을 사들고 갔다. 마침 부모님이 모두 계셨는데, 친구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구, 장관님들 드시는 홍삼을 사 왔네. 차관이 이거 먹어도 되나? 아, 정장관이 아니고 정관장이구나. 깔깔깔.”


친구 아버지는 엘리트 공무원으로, 관료사회의 꽃이라는 1급을 넘어 차관까지 지내고 은퇴하신 분이었다. 그런데도 장관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원통함을 가지고 계셨고, 어머니는 그것을 가지고 놀리셨던 것이다.


친구 아버지가 불편한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가시려 하자 친구 어머니는 “뭐 이런 걸 갖고 그래? 웃자고 한 말인데 왜 이렇게 민감하게 굴어?” 라며 쏘아붙이셨다. 대체 왜 그런 소재로 농담을 하시는지, 왜 하필 내가 사들고 간 정관장 홍삼을 두고 그러셔서 나를 이토록 불편하게 만드시는 것인지, 중간에 끼어있는 나로서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친구의 아버지는 저 사건 이후로 정관장뿐 아니라 그냥 홍삼 자체를 꺼리신다고 한다. 홍삼이 보일 때마다 어머니가 “이건 정장관이네, 저건 정장관 아니네” 하면서 계속 장관 이야기로 놀리셔서 그런 것 같은데, 내가 원인제공을 한 것 같아서 마음이 지금까지도 편치 못하다.


친구 어머니는 저걸 농담이라 생각하시는 것 같고, 친구 역시 그냥 웃고 마는데, 나는 저런 일이 매우 불편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친구 아버지 역시 나와 비슷한 마음을 가지신 것 같다. 농담이란 듣는 사람도 재미있어야 농담인 것이지, 하는 사람만 재미있다고 농담이 아니지 않은가?



웃자고 한 말에 웃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농담이 아닌 조롱일 뿐이다.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관계없이, 만약 듣는 사람이 불쾌함을 느꼈다면 그 상황을 진지하게 반성할 필요가 있다. 누구나 본인이 조롱당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으면서, 왜 남이 듣기 싫은 말은 자꾸 하는가?


저런 농담을 즐기는 사람들의 더 나쁜 점은, 상대가 기분 나빠하면 사과를 하거나 멈추는 것이 아니라 “뭐 이런 걸 갖고 그래?” 라며 상대를 속 좁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점이다. 나는 괜찮더라도 남이 싫다면 그건 해서는 안 되는 것이며, 싫다고 하는 상대방이 잘못된 것이 결코 아닌데도 말이다.




그런데, 나 역시 저런 식으로 누군가의 감정을 상하게 했던 것은 아닐까? 정관장 사건처럼 내가 웃자고 한 말 때문에 누군가 웃을 수 없었던 것은 아닐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앞으로는 누군가의 마음을 해칠 수 있는 시덥지 못한 농담보다는, 다 같이 진심으로 웃을 수 있는 즐겁고 따뜻한 말을 건네고 싶다.


만약 따뜻한 말을 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개그맨이 아닌 이상엔 괜한 말로 남을 웃겨서 얻을 것도 없고, 그저 입이라도 다물고 있으면 적어도 속상한 사람은 생기지 않을 테니 말이다.


바쁜 일상 속 출 퇴근길, 잠들기 전 "정관장 홍삼은 안 먹는다"를 오디오북으로 들어보세요

https://youtu.be/9S_mub0p5Hk?si=AJYcwZKv4hGtJPkY

너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 별을 기다리는 너에게


이미지 출처: 1. 정관장 로고© KGC인삼공사, 2. Battle for Dream Island © Carries and Michael Hu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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