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을 10년 만에 다시 만나면

기적보다 더 기적 같은

by 양유정


오래전에 헤어졌던 첫사랑과
다시 연애하게 된다면 어떨 것 같으신가요?


저는 글쎄요, 너무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상상조차 안 되네요. 시간은 늘 많은 것을 바꾸잖아요. 우리는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고요. 첫사랑이라고 별 수 있을까요? 십수 년 만에 어딘가에서 첫사랑을 다시 마주칠 확률, 다시 만난 그 타이밍에 서로 애인이 없을 확률, 또 서로에게 애틋한 감정이 남아있을 확률, 그리고 다시 잘해보자고 동시에 용기를 낼 확률. 이 모든 확률을 곱한 값만큼 어려운 일이니까요.


음... 그래도 굳이 상상해본다면 그저 기적 같을 것 같아요. 그 기적의 주인공이 나라는 것도 믿기지 않을 것 같고요. 그런데요, 이 어마어마한 확률을 뚫고 10년 만에 다시 만나 2년째 연애 중인 예쁜 커플이 있습니다. 저와 15년 지기 친구인 H와, 14년 지기 친구인 Y의 이야기예요. 둘은 14살, 그러니까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에서 처음 만났는데요. 닮은 구석이 참 많았습니다. 하얗고 둥글둥글한 생김새도, 순진하고 투명한 성격도 비슷했어요. 색깔로 따지자면 청량한 하늘색 같은 친구들이었죠. 그래서 서로에게 끌렸던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둘은 그로부터 1년 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귀기 시작했는데요. 행복하기만 하면 좋았을 텐데, 첫사랑, 첫 연애. 처음은 왜 이렇게 항상 어려운지. 마음은 저 멀리 앞서가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다가 시간만 하염없이 흘렀더랬죠. 사귀는 것도 안 사귀는 것도 아닌 모호한 연애가 싫어서, 좋아하는 마음을 뒤로하고 H는 이별을 택했고요.


여느 첫사랑처럼 그들의 사랑도 이렇게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같은 중학교,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둘이 다시 만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니까요. 서로 다른 대학에 들어갔으니 성인이 된 이후론 더 어려워질 줄 알았는데... 25살, 동창들과의 모임에서 다시 만난 둘은 테이블 한편에 마주 앉아서, 마치 그 모임에 단 둘만 있는 것처럼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대요. 미련, 아쉬움, 애틋함이 잔뜩 묻어나는 대화였겠죠. 그날을 계기로 연락을 이어가다가 H의 과감한 고백으로 다시 연애를 시작한 거고요.


사실 저도 자세한 내막은 몰라요. 그래서 직접 물어봤어요. 지난 십수 년간 둘에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시 만난 지금은 어떤지에 대해서 말이에요. 첫사랑을 이룬 기분이란 어떤 걸까요?



♥ 서로 처음 좋아하게 된 계기, 기억 나?

Y : 잘 모르겠어. 언제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H를 좋아하고 있었거든. 누가 먼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좋아한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부터는 알고 있었던 것 같아.

H : 웃는 게 귀여웠어. 내가 맨날 너한테 그랬잖아, 귀엽다고. 책상에 엎드려 자다가 이마에 동그란 자국 남는 것도 귀엽고. 귀여움엔 출구가 없다잖아. 성격에 모난 부분도 없어서 친구들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래서 좋아하게 됐던 것 같아.


♥ 당시에 오래 만나지 못하고 헤어진 이유는 뭘까?

Y : 내 소심한 성격 때문이었던 것 같아. H 앞에만 서면 자꾸 부끄러워서 아무것도 못했거든. 그게 창피해서 잘 못 만나고 연락도 잘 못 했어. 연애를 시작하긴 했지만 여전히 쑥스러운 짝사랑만 하고 있었던 거지. H 입장에선 연애하는 기분이 안 났을 것 같아.

H : 서로 첫 연애이다 보니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몰랐던 거 같아. 문득 연인이 아니라, 조금 더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게 더 힘들어서 내가 헤어지자고 했어.


♥ 헤어졌던 날은 기억 나?

Y : 어느 날 친구랑 산책하는데 H에게 문자가 한 통 오더라. "Y야" 하고 내 이름을 부르는데 너무 무서웠어. 그래서 한참 후에 답장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헤어지자고 하더라고. 집에서 하염없이 기타를 쳤어. Cavatina라는 곡이었는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연주하면 다시 H가 나를 좋아해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어.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웃기고 어이없지만, 당시엔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던 거 같아.

H : 나는 솔직히 자세히는 기억 안 나. 복잡한 마음에 한참을 친구랑 걸었던가...?


♥ 헤어지고 난 후에도 같은 중학교,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잖아. 그때 서로에 대한 감정은 어땠어?

Y : 처음엔 허전했지. 가슴 한가운데가 뻥 뚫린 기분. 매일매일 H가 다시 나를 좋아하게 해달라고 빌었어. 근데 다른 반 되고, 교실도 멀고 마주칠 일 없는 채로 1년이 넘어가니까 조금씩 무뎌지더라고.

H : 나쁘게 헤어진 건 아니었으니까 아쉬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오래도록 남았지. 몇 년이 지나 고등학생이 됐을 땐 내가 다시 짝사랑을 하고 있더라? 고2 때였나, Y가 다른 애한테 관심 표현하는 거 보고 어찌나 질투가 나던지. 혼자 울고 불고 난리 쳤잖아. 결국 못 참고 고3 때 Y한테 편지도 한 번 썼어. 답장은 못 받았지만.


♥ 대학생 때는 서로 마주칠 일도 없고, 다른 연애도 많이 했을 것 같은데. 서로를 잊고 살았어?

Y : 고3, 재수 때는 공부하느라 바빴고, 입학해서는 동아리 생활에 집중했어. 그리고 곧바로 군대에 갔으니 다른 연애는 안 했지. H는 항상 내 마음 한편에 묻어두고 있었던 것 같아. 첫사랑을 어떻게 잊겠어.

H : 솔직히 말하면... 대학 다니면서 좋은 사람을 만났고 연애도 했어. Y를 완전히 잊었다고도 생각했고. 그러다 문득 한 번씩 첫사랑 얘기가 나오면 떠올리는 정도였지. 나중에 다시 만나면 그냥 술 한 잔 같이 하면서 추억팔이 하고 싶다는 생각은 종종 했던 것 같아.


♥ 둘이 재회한 게 스물다섯.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다시 연애를 해보겠다고 결심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

Y : 나 전역하는 날, 고등학교 동창 모임을 갔는데 H도 왔더라고. H를 오랜만에 봤는데 여전히 예쁘더라. 1차, 2차, 3차까지 가면서 H랑 그동안 못 했던 말들을 나눴어. 사실 술을 많이 먹어서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 그냥 다음 날 아침에 H한테서 온 카톡을 보고 그린 라이트라는 건 확신했지. 고민되지 않았던 건 아니야. 근데 'H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모습을 보고도 내가 아무렇지 않게 축복해줄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까, 아니더라. 답은 금방 나왔어.

H : 동창 모임에 전역을 앞둔 Y도 나왔더라고.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라 놀랐고 옛날 생각도 많이 났어. 고등학교 때 혼자 짝사랑했던 얘기를 털어놨던 거 같은데, 나 엉엉 울었잖아. 그리고 필름이 끊겼어. 정확히 무슨 말들을 늘어놨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그냥 연락하고 싶었어. 이번에도 놓치면 정말 후회할 것 같았거든. 그래서 이번엔 내가 먼저 말했지, 연애하자고.


♥ 처음 연애할 때랑, 지금이랑 많이 다르지?

Y : 많이 다르지. 솔직히 첫 연애는 짝사랑이나 다름없었어. 그래서 지금 처음 연애하는 기분이야.

H : Y는 그대로야.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나를 아껴주는 게 느껴져. 달라진 건 그때와 달리 지금은 서로 많은 것을 표현하고 행동한다는 거?


♥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들 하잖아. 어떻게 보면 너희는 이룬 셈인데 심경이 어때?

Y : 진짜 신기해. 중학생 때 기타 치면서 간절히 바랐던 소원이 이뤄진 것 같아. 인연이라는 거 진짜 있나 봐.

H : 솔직히 실감이 안 날 때가 많아. 근데 첫사랑을 이룬 것에 대한 것보다도, 어린 시절을 같이 공유하고 추억할 수 있는 애인을 만났다는 게 더 좋은 것 같아.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어?

Y : 내가 군대를 공석으로 갔거든. 신청하면 일주일 내로 입대할 수 있는 제도야. 당시에 신청할 수 있는 두 날짜가 있었는데 하루가 H의 생일이더라? 왠지 그 날짜가 군생활에 작은 행운이라도 가져다주지 않을까 싶어서 그날로 신청했어. 괜히 더 싱숭생숭해졌는데, H한테 알려주고 싶더라고. 네 생일에 나 입대한다고. 그래서 기프티콘과 함께 생일 축하 인사를 남기고 훈련소에 들어갔어. 근데 전역 날 동창 모임에서 다시 H를 만난 거지! 괜한 의미부여일 수도 있는데, 그때 내가 한 선택이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이끌어준 게 아닐까 싶어.

H : 고등학생 때, 다른 남자 애가 나한테 고백하려고 하는데 우연히 Y가 그 앞을 지나갔어. 머쓱하게 인사하고 가더라고. 대학교 입학하고 나서는 썸 타던 대학 선배랑 전화하면서 걷고 있는데 Y가 또 우연히 맞은편에서 걸어오더라? 계속 그렇게 한 번씩 마주친 짧은 순간들이 긴 여운을 만들었던 것 같아. 이 정도면 진짜 운명 아닐까?




양유정

그림 소우주 (instagram@sowoojoo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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