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다시 만나도 괜찮을까요?

추억은 추억으로,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by 양유정


[사연 제보]

저에게는 대학 시절을 다 바쳐 사랑했던 여자친구가 있습니다. 아, 전 여자친구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네요. 벌써 헤어진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거든요.

저희는 3년 가까이 만나면서 예쁜 추억을 쌓았습니다. 이렇게 계속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졸업이 가까워지자 평화로웠던 저희의 관계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여자친구가 부산에서 간호사로 취업하고 얼마 후 저도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노량진으로 가면서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예상은 했지만 여자친구는 일하느라, 저는 공부하느라 연락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줄었습니다. 예전만큼 자주 만날 수도 없었고요. 어느 순간부터는 전화를 해도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점점 지쳤고 결국 헤어졌습니다.

헤어지고 6개월 정도 흘렀을 무렵, 전 여자친구한테 연락이 왔어요. 다시 만나고 싶다면서요. 저도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터라 큰 고민 없이 승낙했습니다. 하지만 달라진 게 없더군요. 저도 여전히 공부 중이고, 여자친구도 여전히 바빴으니까요. 예전과 같은 상황, 반복되는 다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막막한 미래에 저희는 또 한 번 아픈 이별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로부터 3년이 흘렀습니다. 저는 준비했던 시험에서 합격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안정감을 되찾자 가장 먼저 생각 나는 사람이 바로 전 여자친구였어요. 잘 지낼까, 만나는 사람은 있을까, 그녀도 내가 그리울까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SNS을 찾아보니 남자친구는 없는 것 같았고, 친구들도 용기 내어 보라고 응원해주었습니다. 거절당할 각오를 하고서 잘 지내냐고 SNS로 메시지를 보냈어요. 제 걱정과 달리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너무도 반갑게 제 연락을 받아주더라고요. 그녀가 일하고 있는 부산에 놀러 오라면서요. 다시 잘해볼 수 있을 거란 희망에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날부터 며칠 동안 연락이 계속됐어요. 마치 대학생 시절 썸을 탔던 때처럼 말랑말랑한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 옛날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어요. 저는 부산으로 놀러 갈 주말만을 기다리며 기대감에 부푼 채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밤, 그녀가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말을 꺼냈거든요.


"나 남자친구 있는 거, 알고 있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카톡 프로필 사진, SNS 피드 그 어디에서도 남자친구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고, 그녀도 이야기해주지 않았으니까요. 그녀는 자기도 제가 너무 그리웠다며, 지금 만나는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정리할 테니 기다려 달란 말을 덧붙였습니다. 대신 그 남자친구와 미리 예정되어 있던 여행만 갔다 오겠다면서요.


아...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민이 되더라고요. 눈 딱 감고 며칠만 기다리면 다시 예전처럼 행복하게 연애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제는 불안정했던 예전과 달리 서로 안정적인 직장도 갖게 됐으니까요. 또 3년이나 만났으니 서로가 서로를 제일 잘 알테고, 새로운 사람과 적응하는 불필요한 시간을 가질 필요도 없고요. 그녀도 계속 저를 설득했습니다. 친구를 통해 종종 제 근황을 물어왔던 것과 제 SNS를 계속 확인했던 이야기를 하며, 그동안 저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설명했어요.

또 한 번 모진 상황을 원망하며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만날까, 그만할까... 이번이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니 너무 속상했지만 끝내 저는 그녀와 다시 만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녀가 현 남자친구와 여행 가는 걸 기다릴 자신이 없었거든요. 그 시간 동안 저는 얼마나 피가 마를까요? 그녀가 돌아온다고 해도 이 사건은 계속 떠오를 테고, 무엇보다 그녀의 남자친구에게도 할 짓이 아닌 것 같더라고요. 결국 저는 그녀와 세 번째 이별을 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새로 연락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섬세한 말과 행동으로 저를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에요. 제가 틀렸습니다. 오래 만났던 전 여자친구만큼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새로운 사람과도 충분히 안정적인 연애를 할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어요. 그때 전 여자친구와의 재회를 선택하지 않은 걸 가끔 후회하기도 했는데요, 참 잘한 것 같습니다.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저도 1년 반 정도 만났던 전 남자친구에게 연락해본 적이 있습니다. 헤어진 날로부터 8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는데요. 그때와 상황도 달라졌고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터라 다시 만나고 싶더라고요. 기억이 미화됐는지 앞으로 수많은 사람을 만나도, 그만한 사람이 없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도 들었고요. 마음만 같다면 충분히 다시 시작해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연락을 했어요. 다행히 그도 잘 지내냐며 따뜻한 답장을 보내주더라고요. 제 마음을 솔직하게 전하자 그도 흔들렸는지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술자리에서 그간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사귀었을 때의 감정이 모락모락 다시 피어났어요. 당연히 다시 만나게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과 달리 다음 날 그는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다’는 답변을 전해왔어요. 이제 우리는 더 이상 20대 초반이 아닌데, 그때의 감정을 기대하면서 다시 시작하는 건 아닌 것 같다면서요. 아직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남아 있는데 다시 만날 수 없다니,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얼굴 보자고는 왜 했는지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때의 우리가 아니니까



그런데 시간이 좀 더 흐르니 알 것 같더라고요.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만났던 사람과 다시 만나면 더 쉽고 편할 것 같지만 훨씬 더 힘든 게 현실이거든요. 헤어지던 때에 서로에게 남긴 상처가 아예 지워질 수 없기 때문에 그 상처를 커버할 만큼 큰 노력이 필요할 거고, 관계가 조금만 어긋나도 맞춰나가려 하기보다는 '그때도 그랬는데, 역시 안 바뀌는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 테고요. 그럼 같은 이유로 또 헤어지고, 다시 만난 걸 후회하고, 남아있던 예쁜 추억마저 망쳐버리겠죠. 한 번 만나봤던 만큼 더 견고한 연애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한 번 깨진 유리잔을 아슬아슬하게 테이프로 붙여놓은 것처럼 불안한 관계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게다가 학생 시절에 만났던 추억을 떠올리면서 재회하는 거라면, 서로에게 더 쉽게 실망하고 말 거예요. 이제 더 이상, 재고 따질 거 없이 사랑에 올인할 수 있었던 그때의 상황이 아니니까요. 타이밍은 또 어떻고요. 제보자님처럼 하필 다시 연락했을 때 남자친구가 있다면 정말 최악입니다. 만약 전 여자친구가 현 남자친구와 여행을 가지 않고 빨리 정리했다면 좀 다를까요? 아니요. 그녀가 제보자분에게 돌아온 것처럼, 언젠가 나를 버리고 다른 전 남자친구에게 돌아갈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자꾸 불안해질 거예요. 급하게 끝낸 관계가 깨끗하게 정리될 리도 없고 말이에요.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남아있고 의지가 충만하더라도 이렇게 딱 하나,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모든 게 소용없습니다.


물론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만나서 잘 지내는 커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몇 안 되는 기적같은 케이스일 뿐이에요. 보통의 경우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다시 이별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게임에 해당될 겁니다. 오랜 인연을 끊어내는 건 가슴 아프지만, 이렇게나 낮은 확률에 시간과 마음을 베팅할 이유가 있을까요? 어쩌면 우리가 우리의 연애를 잘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다시 만나는 게 아니라 추억을 추억으로 남겨놓고, 그리움은 그리움대로 묻어두는 것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양유정

그림 소우주 (instagram@sowoojoo_)


연애 이야기를 메일함에 배달해드립니다 ☞ 여기를 눌러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세요!

keyword
이전 08화그런 이별은 하지 말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