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가 도대체 뭐길래?
산티아고 순례라 함은 스페인 북서부에 위치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걷는 기독교의 도보 성지 순례길을 일컫는다. 원래 기독교 제일의 성지는 다름 아닌 예루살렘이었다. 지금에야 예루살렘은 유대교의 발상지인 이스라엘의 땅이 되었지만, 그 이전까지는 이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로마 제국을 비롯한 이슬람 세계의 땅이었다. 교황청은 성지聖地가 이교도의 손에 있다는 게 달가울리 없었다. 교황 우르 바누스 2세는 1095년, ‘예루살렘 탈환’이라는 기치로 전쟁을 일으킨다.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가 격돌한 이 전쟁 이 바로 ‘십자군 전쟁’이었다.
기독교 세계가 어언 이백 년 동안 일으킨 십자군 전쟁은 결과적으로 실패였다. 여전히 예루살렘은 이슬람 세계의 손아귀에 있었던 것이다. 골머리를 앓던 교황은 궁여지책을 내세운다. 바로 로마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예루살렘과 동등한 성지로 인정한 것이다. 당시 기독교인들에게 성지에 간다는 것은 천국에 가는 보증 수표나 다름없었다. 그리하여 위험을 무릅쓰며 이슬람의 손아귀에 있는 예루살렘에 가기도 했고, 십자군 전쟁이 발발하자 참전 자체를 성지 순례라 여기며 전쟁터로 향했다. 하지만 이제는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어졌다. 산티아고는 이미 유럽 세계에 있었으니까.
어엿한 성지의 반열에 오른 산티아고. 하지만 궁여지책으로 성지로 정했다고 해서 산티아고가 성지로서의 명분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인 야고보의 유해가 묻혀있는 곳이 바로 산티아고 대성당이었다. 게다가 이미 산티아고는 1189년 교황 알렉산더 3세가 이곳 산티아고에 가는 교인들에게 면죄를 해준다는 칙령을 발표 해 성지에 버금가는 장소가 되었다. 거기에 교황이 성지라고 선포했으니 산티아고는 교인들에게는 이미 예루살렘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어언 팔백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산티아고는 기독교의 삼대 성지 순례길이라는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크게 세 갈래로 이루어져 있다. 이베리아 반도를 횡단하는 프랑스 길과 스페인 북부 해안길로 이어지는 일명 북부 길, 그리고 리스본부터 시작하는 포르투갈 길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이외에도 여러 길들이 존재 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순례라는 것이 무조건 정해진 길을 걸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서 어떻게 가든, 목적지에만 도달한다면 그것이 진짜 순례 길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도시인들이 나침반과 별빛에 의지한 채 와일드한 순례를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저 ‘주어진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모험이요, 도전이 된다.
오늘날에 이르러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종교적인 색채가 점점 희미해지게 된다. 순례길을 걸었던 세계적인 인기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자신의 저작들을 통해 순례길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순례길을 내면의 진실한 무언가를 마주하는 길로 묘사했다. 물론 종교적인 의미로 온 순례자들도 있었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볼 때 이런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많은 순례자가 개인적인 동기를 갖고 순례길에 올랐다. 이제 산티아고 순례길은 신에게로 가는 길이라기보단 나에게로 가는 길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 위클리 매거진을 통해 연재한 글이 출간을 했습니다. 미연재분을 포함 총 50개의 에세이가 엮인 산티아고 순례 에세이집 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