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인생 넉 달. 인생 첫 컷

삼각대 대신 사랑으로 찍다

by 시애

산부인과에서 임신 판정이 나는 순간부터 ‘안녕하십니까. 여론조사 전문 기관...’ 전화 수준으로 플러팅을 당하게 되는 업계가 있다. 바로 아기 사진 촬영 업체들이다. 자매품으로는 태아보험 업체. 보험 가입하라는 연락은 21주가 넘어가면 끝나는데, 사진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우리 아기 제일 예쁠 때 남겨주셔야죠. 남는 건 사진밖에 없는 거 아시죠, 어머니.



내 만삭 사진은 내가 찍지 않기로 결정하면 끝이지만, 아기 사진 촬영 여부를 본인 의사는 묻지도 않고 내가 정해도 되는 걸까. 나중에 근사한 백일 사진이나 돌 사진이 없어서 섭섭해하면 어떡하지. 혹시 담임선생님이 어릴 때 찍은 사진을 갖고 오라고 했는데, 다른 애들은 다 샤방샤방한 스튜디오 사진을 가져왔는데, 우리 아기만 그런 사진이 없으면 어떡하지. 하잘것없는 상상을 잔뜩 하다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산후조리원에 들어갔다.






산후조리원의 스케줄 중 ‘아기 촬영’이 있었다. 가까운 스튜디오에서 홍보차 조리원까지 와서 신생아 사진을 찍어주는 행사였다. 촬영하는 동안 엄마 휴대전화로 사진을 못 찍게 하고 원본 이미지 파일을 얻고 싶으면 돈을 내세요, 라는 거였는데, 장사라는 걸 알면서도 너무 찍고 싶었다. 우리 아기는 산후조리원에서 (내 눈에는) 가장 조그맣고 하얗고 귀여웠다. 미니어처 같았다. 이렇게 작고 예쁜 시절을 조리원 안에서 나만 보기 아까웠다.



태어난 지 일주일째 되는 날, 꼬물거리는 아기를 안고 신생아 촬영 대기석에 슬쩍 앉았다. 조금 전 촬영한 아기의 의상을 벗겨 우리 아기에게 입히고 사진 찍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기를 천으로 돌돌 감아 새 둥지 위의 알처럼 촬영하는 컨셉이었다. 그렇지. 너는 박혁거세의 후손이 낳은 아기지. 그러나 박혁거세의 후손이 아닌 아기들도 죄다 알이 되었고,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포유류인데 어째서 촬영 컨셉이 알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겨났으며, 어쩐지 컨베이어 벨트 같은 알 촬영이 계속되었다. 원본 파일에 돈을 지불할 마음은 좀처럼 나지 않았다. 무료 서비스로 제공하는 액자 하나만 받기로 했다.





아기 50일이 다가오자 다시 사진 촬영 고민이 시작되었다. ‘성장앨범’이라는 상품명으로 50일, 100일, 돌 사진까지 쭉 찍는 상품을 많이 계약한다. 흠.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지 않을까. 아기의 50일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잖아. 스튜디오 검색을 시작했다. 후기를 꼼꼼하게 비교하고, 집과의 거리를 고려하여 한 곳을 선정하였다. 좋아. 연락하... 잠깐. 예약 시간에 아기가 먹고 싶거나 자고 싶으면 어떡하지? 몸이 안 좋으면 어떡하지? 울면 어떡하지? 촬영 의상이 안 맞으면 어떡하지? 컨베이어 벨트 위의 알 둥지가 생각났다. 일단 집에서 내가 찍어볼까.



아기가 기분 좋을 때 분홍 보넷을 씌워 꽃무늬 천 위에 눕혔다. 라탄 바스켓, 챙 넓은 밀짚모자와 젖병 몇 개도 같이 놓았다. 작품명은 '아기의 소풍'. 어떻게 찍어도 아기는 귀엽고 귀엽고 귀여워. 몽실몽실한 모든 곡선이 황홀해. 몇 장을 추려 SNS 가족 채팅방에 올리자, 동생이 스튜디오 가서 찍었냐며 물어왔다.



자신감을 충전하여 100일 촬영도 직접 하기로. 심지어 두 번이나 찍었다.



첫 번째는 탄생 100일째 되는 날. 촬영용 소품을 인터넷에서 빌렸다. 커다란 라탄바구니에 망사천과 조화를 장식하고 드레스 입은 아기를 눕혔다. 사회적 웃음을 지을 수 있게 된 시점이라 아기가 방긋방긋 웃어주었다. 아, 예뻐라.



두 번째는 제왕절개 전 원래의 출산예정일에서 100일째 되는 날. 아마도 아기가 수정되었을 날이고, 뱃속에서부터 아기와 함께한 지 딱 일 년째 되는 날이다. 임신 기간 265일에 100일을 합치면 365일이 되니까. 지역 육아지원센터에서 백일상을 빌려 아기용 의자와 음식들을 놓았다. 아직 혼자 빳빳하게 앉지를 못해 남편이 백일상 뒤에 숨어서 머리를 잡아주고 사진을 찍었다. 아기둥절한 표정으로 어설프게 앉아 있는 모습도 사랑스럽네. 부디 무탈하게 자라게 해 주세요. 조상신님,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님, 옥황상제님, 삼신할머니, 제우스님, 가이아님, 이시스님... 알고 있는 모든 신에게 빌었다.






내 눈에는 온갖 장르의 네가 다 예쁘기만 한데, 역시 나중에 아기가 크면 근사한 백일 사진이나 돌 사진이 없어서 섭섭해하려나. 샤방샤방한 스튜디오 사진 대신 엄마는 네게 이야기를 남겨줄게. 그때의 네 앞에는 아빠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있었어. 딸랑이와 인형을 흔들며 너를 향해 마주 웃고 있었어. 네 사진으로 엄마가 만든 스티커와 띠부띠부씰을 어른들이 서로 갖고 싶어 했어. 너무 귀해서 어디 붙이지도 못하고 간직하고 있었어. 100일 동안 고마웠어, 우리 아기. 앞으로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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