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인생 다섯 달. 나의 안부

전업 엄마 모드 ON, 24시간 영업, 연중무휴

by 시애

생애 가장 강렬했던 사냥의 기억은 독거직장인으로 살던 때였다. 여름의 끝자락, 밤바람이 어느새 선선해지고 밤에는 풀벌레가 울었다. 귀뚜라미 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음. 매우 생생하고... 게다가 너무 지나치게 우렁찬 서라운드 사운드인데! 제길. 아무래도 실내 침투다. 소리의 근원을 찾아 빗자루를 치켜들고 눈물로 대적했다. 귀뚜라미도 울고 나도 울고, 숨 막히는 대격돌 끝에 전사한 귀뚜라미 시체를 차마 치우지 못해 다시 오열하고.



결혼을 한 이후에는 집에 허락 없이 들어온 생명체를 내 손으로 내쫓을 일이 없을 거라 여겼다. 아기를 낳기 이전까지는. 지금은 도리어 전에 없던 사냥 능력이 생겼다. 태어나서 모기를 딱 세 마리 잡았는데, 세 마리 모두 아기방에 침투했다가 내 손에 최후를 맞았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비행가능한 벌레를 사냥하는 능력이 생긴 것 말고도 출산 이후 많은 게 달라졌다.



아랫배와 성기 사이, 애매한 자리에 있는 제왕절개 상처에 붙였던 수술 흉터 치료 밴드인 ‘시카 케어 밴드’를 얼마 전에 땠다. 오로는 끝났고, 생리는 아직이다. 임신 기간 동안 13kg 늘었던 몸무게는 10kg이 빠졌고, 이제 머리카락도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어깨와 허리는 원래 안 좋았는데, 거기에 손가락과 손목과 팔뚝 통증이 더해졌다. 무릎도 추가. 아기가 나날이 실해지면서 간간이 팔꿈치도 아프다. 그래도 등줄기가 뻐근하지 않은 날은 견딜 만하다.



샤워 후에 물기를 닦고 있으면 유두에서 젖이 뚝뚝 떨어진다. 다시 씻을까 그냥 닦을까 매번 고민한다. 아기가 물기만 해도 젖꼭지가 아파서 눈물부터 찔끔 나던 날과 땡땡한 젖가슴이 아파서 밤중에 깨던 날은 지나갔다. 자던 중에 젖이 흘러 앞섶을 적시고 이불까지 젖던 날도 진즉 지나갔다. 좀 더 오래 아파도 젖이 콸콸 불어났으면 좋았을걸. 분유보다 모유를 좋아하는 아기가 잠시 꼴깍꼴깍 빨다가 더 없다고 투덜투덜 옹알이를 한다. 고양이처럼 젖가슴에 꾹꾹이를 해가며 빨아보기도 한다. 엄마가 안 주는 게 아니라 아기가 다 먹었어. 먹고 싶은 만큼 못 줘서 엄마가 미안해.



얼마 없는 젖을 물리려고 옷 네 벌을 매일 돌려 입는다. 검정 깅엄 체크, 파랑 깅엄 체크, 복숭아색 타탄체크, 담청색 바탕에 퍼그 그림. 전부 단추가 달린 파자마다. 모유 수유 중이므로 여전히 먹지 못하는 게 많다. 알코올, 카페인, 날것, 매운 것, 찬 것, 지나치게 기름진 것, 각종 약. 젖을 말린다고 하여 양배추도 조심스럽다. 그래도 팥은 먹을 수 있다. 팥빵과 붕어빵과 시루떡의 세계가 다시 열렸다. 만세.



꿈에서도 아기를 안고 있다. 아기를 지키는 꿈을 자꾸 꾼다. 몽마로부터, 태풍으로부터, 정체불명의 범죄자로부터. 갑자기 돈 욕심도 생겼다. 돈이 아주 많았으면 좋겠다. 마음에 차는 쪽보다 가성비 좋은 쪽을 택하는 삶에서도 아기를 지키고 싶다.






어느 날 남편이 물었다.

“아기랑 너랑 물에 빠지면 누구를 먼저 구할까?”

“당연히 아기지.”

“그럼 아기는 엄마가 없잖아.”

“엄마가 죽은 아이는 살아도, 자식이 죽은 엄마는 살 수가 없어. 그러니까 아기지.”



무엇보다 큰 변화는 내게 수혜가 돌아오지 않아도, 내가 주인공이 아니어도 서럽지 않은 마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화려하게 반짝이는 시절은 더는 내 몫이 아니다. 하늘을 날아보겠다거나 기필코 꿈을 이루겠다는 노래를 더는 부르지 않는다. 내가 잘해서 받은 줄 알았던 인정과 애정이 애송이를 위한 어른들의 배려였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트림만 해도 잘했다고 칭찬받던 날들이 내게도 있었겠지. 할 수 있다면 커다란 반사판이 되어 아기의 얼굴을 비춰주고 싶다. 사려 깊은 선배들이 내 손에 쥐어주었던 눈부신 다정을 이제는 아기에게, 후배에게, 어린 사람들에게 건네주고 싶다.

keyword
이전 08화아기 인생 넉 달. 인생 첫 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