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인생 일곱 달. 잊지 않기로 함

나의 걱정보다 너는 강하다는 걸

by 시애

무사히 분만 수술실에 들어간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양수가 적어 예정일보다 빨리 세상에 태어난 아기는 잠깐, 울지 않았다. 그 ‘잠깐’ 동안 나는 뇌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수많은 걱정과 커다란 불안을 생성할 수 있는지를 알았다. 잠시 모두를 걱정시켰던 아기는 곧 호흡이 괜찮아져서 며칠 후 대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퇴원할 수 있었다. 추후 추가 정밀검사 예약 안내장과 함께.



확인이 필요한 항목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엉덩이 딤플, 또 하나는 심장 조직의 구멍.






‘딤플(dimple)’이란 꼬리뼈 부근이 보조개처럼 옴폭 파여 있는 것이다. 동그랗던 수정란이 커가면서 점점 길고 납작하게 바뀌는데 이때 마지막에 아무는 부분이 잘 메꾸어지지 않으면 폭 들어간 형태로 흔적이 남는다(둥근 찰흙 덩어리를 납작하게 만든다고 상상해 보시라). 신생아의 5~10%가 딤플을 갖고 태어나는데, 그중 1~5%가 보행 장애나 배변 장애, 심하면 척수나 척추 질환이 생길 수 있단다. 척추의 신경판 부분이 완전히 닫히지 않고 남은 것이라 신경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 말인즉슨 여차하면 신경 관련 수술을 해야 한단 말이지. 신경이라 신경이 쓰였다. 게다가 신생아의 5~10% 중에서 1~5%라 원래 다니던 대학병원에서는 실제 수술 사례가 거의 없었다. 애초에 요즘 신생아 자체가 적잖아요.



생후 3개월이 되는 날, 재빨리 초음파 사진을 찍었다. 일주일 후, 대학병원에 검사 결과를 보러 갔더니, 여러 가능성에 대한 장황한 설명 끝에 다른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보아야 한다고 했다. 여기가 대학병원인데, 다른 곳을 또 가라고요?



5주 후, 아기는 태어나서 가장 먼 곳까지 진료를 보러 왔다. 모니터에 뜬 초음파 사진을 보시던 의사 선생님이 그냥 가라고 하셨다. 네?

“아니, 바쁜데 이런 걸 일일이 보내고 말이야. !@#$#%$^&…….”

알아듣기 힘든 용어에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자, 짧은 딤플 강의 시작. 결론은 여기 올 필요 없는데 왔으니 이제 가라.

“감사합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내시처럼 연신 허리를 굽히며 뒷걸음질로 진료실을 나왔다. 고마워. 건강해줘서.






심장에 난 구멍의 크기 또한 확인해야 했다. 심실중격결손, 아기 심장의 좌심실과 우심실 사이의 벽에 작은 구멍이 있다. 신생아 심장 질환 중 가장 흔한 경우로, 많은 경우에 성장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구멍이 메워진단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휴우, 몇 달씩 추적 관찰을 하며 노심초사하다가 결국 심장 수술을 받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검사 예약일까지 ‘심실중격결손’이 명치 가까운 곳에 더부룩하게 걸려 있었다.


아기 생애 첫 금식을 해야 한다. 배고프다고 발버둥 치며 우는 아기를 안고, 울면 더 배고프니 울지 말라며 나도 같이 울었다. 마취약 부작용이 어쩌구 하는 동의서를 보니 더 울고 싶어졌다.

“어머니, 약이 좀 매워요. 많이 울 수도 있는데, 놀라지 마세요.”

아니, 약이 어떻게 매울 수가 있지? 고추 같은 식물의 추출물이 들어갔나? 스코빌 지수 그런 게 있는 건가? 먹는 거라 기뻐서 약을 꿀꺽꿀꺽 삼킨 아기가 더 크게 몸부림치며 울었다. 망할 매운 마취제! 김치도 아니고 약이 어째서 매운 거야! 흐음. 아닌가. 파스 향 같은 매움인 건가. 그... 그거면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했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겨자'와 비슷한 맛이라고 한다. 진짜로 매운 거였어!). 조금이라도 빨리 검사를 받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혼신의 연속 자장가로 아기를 재웠다. 배고프다고 울부짖느라 자지도 못해 지친 아기는 저항 없이 잠이 들었다.



당연히, 자면서도 몸부림을 친다. 움직임과 관계없이 초음파 사진은 잘만 찍혔다. 이럴 거면 왜 힘들게 마취한 건지 황당했으나 구멍이 잘 막혔다는 진단을 듣고 불평할 마음이 녹아내렸다. 잘 막았네. 잘 컸네. 수고했어, 우리 아기.






돌아보면 엄마가 무익한 걱정만 하는 동안에도 아기는 알차게 크고 있었다. 엉덩이 딤플과 심실 구멍을 알아서 잘 딱 깔끔하게 센스 있게 막은 것처럼. 어느새 저 혼자 일어나 앉고, 장난감도 야무지게 잡는다. 밤에는 배고픈 걸 참으며 아침까지 자려고 애쓴다. 절로 그렇게 되었다. 어렸을 적 횡단보도의 하얀 선만 밟고 싶었던 게, 규칙을 정해 보도블록을 걷고 싶었던 게 균형감각과 신체 협응 능력을 기르기 위해 무의식이 만들어 낸 욕구라는 걸 어디서 읽은 기억이 난다. 아기의 어딘가에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게 해주는 ‘그렇게 하고 싶은 기분’이 숨어 있는 모양이다. 경이롭게도.



교사로 살던 시절, 기억에 남지 않는 담임이 되는 게 매년 목표였다. 아이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펼치는 데 방해나 되지 말자. 적어도 일생일대의 나쁜 기억으로 남는 어른은 되지 말자. 나의 일은 그저 판을 펼쳐 주고, 뒷정리를 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저들끼리 열심히 살아내고 새 학년이 되었다.



요즘은 아직 앉는 게 서툰 아기 뒤를 지키며 생각한다. 이게 평생 내 역할이겠구나. 갑자기 넘어가도 너무 크게 다치지는 않게 뒤에 있어 주기. 엄마가 기다리는 동안 ‘그렇게 하고 싶은 기분’이 아기를 성장시켜 주겠지. 나는 훼방이나 놓지 말자. 판을 펼쳐 주고, 뒷정리를 하고, 거기에 사회적 규칙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아기는 어른이 될 것이다.



안다. 어떤 다짐을 해봐도 괜히 잠들지 못할 밤과 필시 노심초사할 낮이 내 앞에 수없이 기다리고 있음을. 동화책에 나오는 '아픈 내 이마에 물수건을 바꿔 얹어주며 밤을 지새우는 우리 엄마' 역할이 이젠 내 차례니까. 솜털 하나까지 아까운 내 새끼가 혹시 아픈 건 아닌가, 치이는 건 아닌가, 말 못 하고 속 끓이는 건 아닌가, 세상의 걱정이란 걱정은 다 끌어다 하고 말겠지. 그러나 잊지 않기로 한다. 우리 반 꼬마들의 일기에 매일 등장하던 ‘참 재미있었다’처럼 매일 ‘아기, 사랑해.’로 끝맺고 싶은 날들 또한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오늘도, 그러하다. 아기,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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