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인생 아홉 달. 자장자장 우리 아기

제발 자라 자장자장

by 시애

# 1. 발단



오래전부터 금지된 비기를 보유하고 있다. 이름하여 ‘젖물잠’.



모든 육아서에서 젖을 물려 아기를 재우는 걸 소리 높여 만류하고 있다. 아기는 꼭 바닥에 등을 대고 잠들도록 해야 합니다. 네, 그게 이론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현실에서는 입 벌린 채 고개 꺾고 자다가도 눕히면 깹니다. 육신과 의식을 이완시켜 스르륵 잠드는 건 사실 고급 스킬이다. 잠 못 들어 괴롭던 새벽, 다들 있잖아요? 게다가 아기는 졸리면 목청껏 울기 시작한다. 오열하면서 잠들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기의 울음을 달래고, 긴장을 풀어주고, 기분 좋게 잠들게 하는 모든 것을 순식간에 할 수 있는 히어로가 엄마의 젖꼭지다. 졸린 아기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으면 젖을 물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 2. 전개



고개를 흔들며 젖을 찾아 무는 아기를 보고 있으면 새삼 내가 포유류라는 실감이 났다. 그래, 우리는 포유류인데, 젖은 대체 어떻게 끊는 걸까.



인터넷에는 단유약, 단유 마사지 광고와 더불어 갖가지 단유법들이 적혀 있었다. 이제부터 배고픈 곰돌이한테 젖을 주자며 끊기, 젖꼭지에 밴드를 붙이고 엄마 젖이 아파서 못 준다고 하기, 빨강 파랑 검정 매직으로 젖가슴에 무서운 도깨비를 그려서 아기가 싫어하게 만들기 같은 방법을 읽고 있자니, 아기 대신 내가 다 서러울 지경이었다. 엄마가 곰돌이한테만 젖을 주고 나는 안 주다니, 엄마가 아프다니, 심지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엄마 젖이 괴이하게 변하다니! 응애응애응애응애흥애! 모든 후기 속에서 아기들은 울다 지쳐 잠들 때까지 며칠씩 울부짖고 있었다.



아, 배고프고 졸린 아기가 그렇게 울면 난 못 견디고 주고 말 것 같아. 못 끊을 것 같아. 상상 속의 우리 아기도 이미 사자후를 토해내며 포효하고 있다.





# 3. 위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일생에 한 번은 엄마 젖을 끊어야 한다.



9개월에서 10개월로 넘어가는 달이 우리 아기의 그때였다. 보름 동안 젖 먹이는 양을 조금씩 줄였다. 마침내 열여섯 번째 날, 아기 앞에 앉아 비장한 표정으로 양쪽 젖꼭지에 레몬즙을 몇 방울씩 발랐다. 오늘부터 단유야. 비록 어젯밤에도 자다 깨서 숨넘어가게 우는 바람에 결국 더 먹여 재웠지만, 오늘부터는 진짜진짜진짜야.



애정하는 먹거리를 보고 헤헤 웃던 아기가 날름 오른쪽 젖꼭지 맛을 보더니, 입을 뗐다. 곧이어 호두알만 한 양손으로 젖꼭지 위 레몬즙을 정성껏 닦아내고 다시 젖을 먹기 시작했다(엄마 1차 웃음 고비). 안 되겠다 싶어 왼쪽 젖꼭지에 레몬즙을 더 뿌려 내밀었다. 젖꼭지를 텁 물더니, 아기가 표정으로 말했다. 와, 이거, 맛이 갔네(엄마 2차 웃음 고비). 눈짓, 손짓, 표정을 다 동원하여 진지하게 설명했다.

"이거 이제 으으으으으으야. 아이고, 맛없어. 으으으."

아기가 경청했다. 으으으으으으. 다시는 젖을 찾지 않았다.






# 4. 절정



오래전부터 금지된 비기를 새로이 구사하게 되었다. 이름하여 ‘인간 요람’.



젖을 문 채 나른한 포만감으로 스르륵 잠들지 못하게 되자 아기는 당황했다. 피곤한데 잘 수가 없다! 흥애! 생애 처음으로 서너 시간씩 연속으로 못 자고 깨어있는 모습을 보며 나도 어쩔 줄 몰랐다. 잠드는 법을 새로 연습해야 한다. 모든 육아서에서 소리 높여 외친다. 아기는 바닥에 등을 대고 재워야 합니다. 네, 그게 말처럼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현실에서는 극한의 졸림으로 얼굴이 벌게져서 우는 아기를 혼자 바닥에 눕혀둘 수 있을 리가요.



목이 쉬도록 우는 아기를 품에 안고 일정 박자로 흔들며 끊임없이 노래를 불렀다. 자장자장 우리 아기 잠 좀 자라 자장자장. 무릇 기우제와 자장가는 목적을 이룰 때까지 계속되는 법이지요. 칭얼칭얼 거리던 아기가 지루하도록 평화로운 반복에 지쳐 홍냐홍냐 잠들었다. 예전에 노래방에서 몇 시간씩 훈련한 노래용 체력과 벨리댄스 강사님께 배운 골반 흔들기가 육아에 쓰일 줄이야. 역시 인생의 모든 점들은 미래와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고, 세상에 하찮은 일은 없다.






# 5. 결말



졸린 아기는 어쩐지 뒤통수가 뜨끈뜨끈해진다. 따끈한 아기를 안고 있으면 내가 정온동물이라는 게 문득 사랑스럽다.



쉬이 잠들지 못하고 눈을 비비며 종알종알 불평하다 아기 말문이 터졌다. 누가 들어도 선명하게 “엄마!”를 외치기 시작했다. 뜨끈해진 아기가 엄마를 연호하며 양팔을 번쩍 들고 눈물을 뚝뚝 흘리면 안아주지 않을 도리가 없다. 언젠가는 바닥에 등을 대고 혼자 잠드는 날도 오겠지.



아직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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