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인생 열한 달. 낳는 마음

나의 가장 찬란한 순애

by 시애

‘엄마, 동생 갖고 싶어요.’

지나가다가 인구교육 정책 연구학교로 지정된 초등학교의 현수막을 보고 빵 터졌던 기억이 난다. 아이고, 저 학교 선생님들의 노고를 어찌 하나. ‘연구학교’니까 연구계획서에 따라 해당연도에 특별한 교육을 해서 성과를 보고해야 하는데.

“저출생 대책 연구학교는 뭘 해야 해? 1박 2일 캠프를 여나?”

부모님들만 오붓하게 지내는 밤이 늘어나면 동생이 생길까요... 아니면 방과후학교를 대폭 확대하여 사교육비를 획기적으로 줄이면 될까? 저녁까지 학교에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면 될까? 초등학교가 무언가 해서 인구를 늘리는 성과를 낼 수 있는 걸까. 과연.






2023년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0.72명이었다고 한다. ‘합계출산율’이란 여성 한 명이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의 수다. (매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이 한 명을 낳는 데 여자 한 명과 남자 한 명이 필요하므로 합계출산율이 두 명이 넘어야 현재 인구수가 유지될 텐데, 한 세대를 건너면 태어나는 아이가 이전 세대의 절반도 안 된다는 말이다. 미국 뉴욕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는 이렇게 평했다.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했던 때보다 한국 인구가 더 빠르게 줄고 있어요.



대한민국에서 아이 한 명을 고등학생까지 키우는 데 들어가는 양육비가 3억 6500만 원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를 보았다. 대학등록금과 취업 준비 기간에 드는 돈과 결혼 자금은 포함도 안 된 금액이다. 양육비만 문제일까. 맞벌이를 해야 아파트 대출금을 갚을 수 있는데, 아이를 낳으면 맞벌이가 불가능한 기간이 생긴다. 조부모님의 도움이 없는 경우에는 아이를 맡아줄 사람을 물색해서 상당한 돈을 지불하거나 부모 중 한 명이 직장을 오래 쉬어야 한다. 누가 돌보지 않아도 괜찮은 나이가 되면 본격적으로 사교육비를 걱정해야 한다. 들인 돈만큼 자녀의 성공이 보장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자식에게 손 벌리는 시대가 아니니 나의 노후 자금도 마련해 놓아야 하는데, 대체 무슨 돈으로. 숨 가쁘게 동동거려야 할 시간들이 벌써 눈앞에 선하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나라, 이미 너무 더럽혀진 행성에서 아이를 낳는 것도 미안하고 불안하다. 이런 세상에서 반드시 아이를 낳아서 기르라고 누가 강요할 수 있을까. 혼인률과 출산율이 내려가고, 딩크족이 생기는 상황이 충분히 이해된다. ‘내 아이’가 사치품이 되어버린 시대.





아이를 낳지 않을 이유가 이렇게나 많은 시대에 아기를 낳는 마음, 그것도 성공률이 높다는 산부인과를 수소문해 자연 주기법과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을 두루 거치며 아기를 기다리는 마음이란. 낳지 않는 선택만큼 낳는 선택을 하는 이유도 각자 다양하겠지.



나는, 아마도, 웃으려고 아기를 낳은 게 아닌가 싶다. 나에게 모성애란 아기 때문에 밤을 새워도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어주는 것이다. 너를 태어나게 하겠다고 내가 선택했으니까. 내게 찾아와 꼬물대는 생명이 고맙고 귀했다. 모자란 나를 믿고 세상에 나오는 이 아이에게 나는 진짜 엄마가 되어주어야 하겠구나. 아직 징그럽도록 어리숙하지만, 아기 앞에서만은 단단한 어른인 척하려 애쓴다. 내가 질퍽질퍽거리면 아기가 딛고 일어설 곳이 없으므로.



엄장한 책임감으로 시작했으나 요즘에는 가만히 아기를 안고 있으면 미래의 행복을 키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기가 지금보다 조금 더 크면 함께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한없이 떠오른다. 엄마랑 같이 보고 듣고 다니고 만나보자. 낳기로 선택한 나, 태어나기로 결심한 너. 모든 순간들이 우리가 맞았다는 대답을 해줄 거야. 참 좋을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아니, 지금도 (비록 몸은 고장 난 TV처럼 지지지직 우웅우웅하지만) 좋다. 요즘 아기는 까독까독 캬르륵 자주 웃는다. 천장에 있는 연기감지기가 그렇게 웃긴 걸 처음 알았다. 블라인드와 전등 스위치와 보일러 조절기를 보고도 웃는다. '삐뽀삐뽀'와 '삐까삐까' 소리는 뭐가 그리 웃길까. 웃는 아기를 보며 나도 웃는다. 세상이 너를 환영한다는 걸 말로 전달하지 못해 마주 보며 웃어준다.






맞다. 순진하게 웃음이나 행복 타령을 할 수 있는 건, 솔직히 금전적인 여유와 편하게 휴직할 수 있는 직장과 가까이 사는 엄마와 함께 육아하는 남편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인 상황을 상상하면 아찔하다. 내 삶의 무게에 눌려서 기꺼이 아이를 책임질 마음을 먹을 수도, 아이를 마냥 귀여워할 수도 없었겠지.



그러니 나의 짧은 식견으로는, 동생 갖고 싶다는 플래카드 말고, 먼저 청년들이 행복해질 정책에 세금을 써야 하지 않겠냐고. 내 아이를 낳아 여름의 수박 맛을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을 먹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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