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인생 석 달.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이럴 줄은 알았으나 이렇게까지

by 시애

Q. 아기가 분유 수유 중 똥을 쌌다면 당신은 가장 먼저 무엇을 할 것인가?

① 분유를 계속 먹인다.

② 먹이던 걸 중단하고 기저귀를 갈기 전 트림부터 시킨다.

③ 즉시 기저귀를 확인하고 갈아준다.



이틀 혹은 사흘에 한 번 마주하는 딜레마다. 아기는 먹으면서 동시에 싸는 경우가 많거든요. 아기가 젖병을 문 채 멍한 눈으로 허공을 보며 혼자만의 싸움을 시작하면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한다. 아, 시작했구나. 곧 아기가 입꼬리에만 힘이 들어간 묘한 표정을 짓게 되면, 선택해야 한다. 더 먹일 것인가, 트림시킬 것인가, 기저귀를 갈 것인가.



아마 아기마다 다를 것이다. 우리 아기는 배가 아픈 순간만 지나가면 똥 싼 기저귀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똥을 다 싸고 나면 편안해 보인다. 대신 먹다 끊기는 걸 몹시 싫어한다. 젖병이 한 번 입에서 떨어지고 나면 칼같이 식사 끝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분유를 더 먹이는 쪽을 선택하지만, 배가 점점 아파와서 결국 “응애!”하고 우는 순간에 젖병이 입술에서 떨어지고, 더 먹이는 걸 포기한 채 어쩔 수 없이 물컥물컥 코를 찌르는 똥기저귀를 벗기면, 그새 아기 입가에는 게워낸 분유가 흐르고 있는 슬픈 결말. 트림도 쉽게 하지 않는 아기라 재빨리 트림을 시킨 후에 기저귀를 갈면 되겠다는 선택지도 없다. 오호통재라.






더욱 오호통재한 사실은 무엇을 먼저 하기로 선택하든 아기를 먹이고 싼 걸 치우고 기저귀를 갈고 트림을 시킨 후에 잠시 놀아주고 재우다 보면 금시에 밤이 와 있다는 것. 정확히 말하자면 하루는 길고 긴데,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시간은 없다는 것.



아기의 요구를 재깍재깍 들어주려면 나의 요구는 저 멀리 안드로메다쯤 던져 버려야 한다. 이를테면, 12시쯤 배가 고파 점심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칭찬을 퍼부으며 분유를 먹이고, 온 집안을 산책하며 트림을 시키고, 아는 동요를 죄다 동원해 놀아준 후에 졸린 아기의 숨소리가 ‘ㅅ’에서 ‘ㅎ’으로 바뀔 때 전력으로 고요하게 침대에 눕힌다. 1시 반쯤 내 식사를 차리기 시작한다. 냉장고 안에서 꺼낸 걸 전자레인지에 데워 한 숟가락 먹... 이런! 아기가 깨서 공중에 팔을 휘젓고 있다. 산책부터 다시 시작하여 먹이고 정중동의 경지로 아기를 무사히 재우고 벌려놨던 걸 치운 후에 정신을 수습해 식탁에 다시 앉으면 3시 반. 어안이 벙벙하다.



순식간에 삶이 뒤바뀌었다. 이럴 줄은 알았으나 이렇게까지. 나와 남편을 비롯해 친정 식구들에다 친정에서 키우는 강아지까지 아기가 우선인 쪽으로 생활의 무게추가 기울어져 버렸다.



그나마 친정에서 5분 거리로 이사한 게 신의 한 수 정도가 아니라 억 수 수준이랄까. 억수로 다행이다. 덕분에 냉장고에 호다닥 꺼내먹을 수 있는 반찬들이 매일 라인업을 달리하며 들어차 있다. 그조차 아니었으면 3시 반이 아니라 5시 반쯤 빵 같은 걸 씹으면서 이게 맞나 어안이 벙벙했겠지.



식사뿐이겠어. 잠은 날마다 모자라고, 단장할 시간은 매일 없고, 두 달 넘게 미용실에 못 가서 앞머리가 눈을 찌르고, 최근 외출은 아기 예방접종 주사 맞히러 병원에 다녀온 게 전부. 어제도 예방접종 때문에 38.7℃까지 열이 오른 아기를 안고 의자에 앉은 채로 아침을 맞았다. 움직일 때마다 무릎에서 나뭇가지 꺾이는 소리가 난다. 쉽지 않다.






휴. 어쩔 수 없지. 귀여우니까. 보드라운 너에게로 와르르 쏟아져버리는 마음을 호미로도, 가래로도 막을 수가 없으니까. 오늘도 아기는 아기여워. 잇몸울음마저도 매력 있어. 내가 반하겠어.



순도 높은 귀여움을 순두부처럼 몽글몽글 모아서 빚어낸 듯한 아기를 마주하고 있으면, 커다랗고 추상적인 걸 생각하지 않아도 그저 좋다. 눈짓 하나, 몸짓 하나에 구체적으로 행복한 날들. 이제 나는 이전처럼 하루의 끝에서 의미와 무의미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는다. 아기를 돌보는 일상에는 공허와 허무가 들어찰 틈이 없으므로. 아기가 무사히 성장한 것만으로 하루의 의미는 충만하다. 민들레꽃을 피워낸 강아지똥처럼 나의 오늘은 알뜰히 아기의 거름이 되겠지. 네가 필요한 만큼 엄마의 시간을 듬뿍 선물할게. 아기에게 주는 시간은 하나도 아깝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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