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잘 가고 싶어서 인사에 동참했습니다.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는 것을 확인하고 시선은 다시 바닥으로 고정한 채 횡단보도를 건넜다.
인도에 오르며 고개를 드니 버스정류장엔 이미 내가 타야 하는 버스가 와있었다.
'다음 버스까지 또 10분을 기다려야겠구나.' 뛸지 걸을지 결정하지 못한 나는 이미 다음 버스를 기다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의 마음과는 반대로, 더 이상 탈 사람은 없는 듯한 버스는 가지 않고 정류장에 정차해 있었다.
'날 기다리는 것이 틀림없다!'
기사님의 호의를 헛되게 하고 싶지 않아, 살이 쪄 아픈 무릎을 바삐 움직이며 오래간만에 전력 질주했다.
"감사합니다."
평소에는 인사하고 싶지만 왠지 부끄러워 나만 들리는 목소리로 '안녕하세요'를 속삭이며 버스에 오르곤 했는데, 오늘은 그래선 안 되겠다 싶어 큰 소리로 기사님께 인사했고 기사님은 답례로 고개를 끄덕여주셨다.
버스 안은 가을이었다. 빨간색과 주황색을 필두로 하얀색, 노란색, 녹색, 파란색, 보라색, 회색, 검은색 등 다양한 색으로 눈이 아플 정도였다. 이 버스의 출발점과 종착점이 '동화사'인 것을 감안하면 산이나 절에 다녀오는 등산객들임이 분명했다.
군데군데 비어있는 자리 중 하차문 바로 앞에 있는 더블석 복도 쪽 자리에 앉았다.
"저거 콩나물 담아두는 항아리 아냐?"
내 옆자리 주황색 등산복을 입은 중년 아주머니가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줄 세워놓은 항아리들을 보며 말했다.
"맞네, 맞아. 난 저기에 콩나물 담아서 머리에 이고 다녔는데."
바로 뒤 빨간 등산복을 입은 아주머니가 대답했다.
"머리에 이고 집에 가서 보면 콩나물이 반밖에 없어. 다 떨어져서 아하하하"
빨간 등산복을 입은 아주머니 옆의 또 빨간 등산복 아주머니가 말을 이었다.
'아, 세 분이 일행이시구나.'
세 분은 틀림없이 일행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려던 순간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에 담긴 콩나물은 왜 그렇게 싱싱해 보이던지..."
그 뒤로도 콩나물 항아리에 대한 이야기는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갔다.
"난 여기서 내려. 다들 안 내려?"
내가 지하철 환승을 하기 위해 하차벨을 누르자, 앞 쪽에서 노란색 등산복을 입은 아주머니가 하차문 쪽으로 걸어오며 누군가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난 다다음 역에 내려."
세네 명의 아주머니가 동시다발적으로 대답하느라 정확하게 듣진 못했지만, 노란색 등산복 아주머니만 이번 역에 내리는 듯했다.
"그래 그럼, 난 이번 역에 내려. 다들 잘 가~"
"그래 잘 가~"
"즐거웠어, 조심해서 잘 가~"
"잘 가~"
"잘 가라~"
갑자기 버스 안에 있는 등산복을 입은 모든 사람들이 잘 가라고 인사하기 시작했다.
"날 좋으면 또 보자고."
"내일 날씨 좋다는데?"
"비가 안와야 좋은 날이지."
"일기예보만 보고 있어야 하는가? 푸하하하하"
한바탕 수다가 벌어진 와중에 버스가 정류장에 멈춰 섰고, 다시 인사가 시작되었다.
"나 간다~ 잘들 가여."
"잘 가~"
"잘 가~"
"잘 가라~"
또다시 시작된 인사들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하차문 앞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안녕히 가세요.'
아무도 듣지 못할 작은 목소리로 인사도 했다.
버스 안에서는 일행이 아니더라도 함께 대화를 나눈다.
하는 일 없이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라는 좁은 공간에선 상대방의 말이 크게 들리고, 혹시 나에게 하는 말인가? 싶어 뒤를 돌아본 적이 몇 번 있다.
버스 안은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닐지라도 대화에 동참하는 것이 비교적 관대 해지는 공간이다.
그렇게 몰랐던 사이에서 서로에게 '잘 가'라는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등산복을 입었던 모두가 한 일행이었는지 일부만 일행이었는지 아니면 개개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행이 아니더라도 무심코 건넨 말을 혼잣말이 되지 않게 해 줘서 버스 안에는 외로운 사람이 없었다.
나에게 건넨 것이 아닌 인사를 내가 받는다고 해서 내키지 않아 하는 사람도 없었다.
외롭지 않아 마음이 가득 해지는 '15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