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네가 산다면 가주겠다는 엄마의 말에, 가격표를 한번 더 검색해 보긴 했지만 미리 해두었던 예약을 취소하진 않았다.
요즘 본인의 일에 더욱 재미를 느끼고 있는 엄마의 퇴근시간이 부쩍 늦어졌다. 본인이 원해서 늦은 시간까지 하는 일이라지만 아침마다 피곤한 듯 부어있는 엄마의 얼굴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던 참이었다.
장어 반마리가 들어있는 일반 장어덮밥을 먹겠다고 했던 엄마가 메뉴판의 사진을 유심히 보더니 장어 한 마리가 들어간 특 장어덮밥을 먹겠다며 말을 바꿨다.
장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엄마의 말이 내심 걸렸는데, 양을 늘려 주문하는 엄마를 보며 마음이 놓였다. 정갈하게 차려진 밑반찬과 장어덮밥이 나왔고, 엄마는 '이 집 음식 잘하네.' 라며 나보다 더 빠른 속도로 숟가락을 움직였다.
창이 커서 바깥 풍경을 보는 맛도 쏠쏠했다.
참고로 우리 가족 모두는 식사 중에 대화를 잘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밥 먹을 땐 밥만 먹는 거다.' 라며 TV도 꺼버리고, 불필요한 대화도 금지했던 아빠 덕에 밥 먹을 땐 오직 밥과만 대화할 뿐이다.
올케가 결혼 전 인사 와서 처음으로 함께하는 저녁 식사에 말도 안 하고 전투적으로 밥만 먹는 우리 집 식구들을 보며 많이 당황했던 적도 있다.
그렇게 엄마와 말없이 덮밥에 집중하고 있던 중, 불현듯 엄마의 뒤쪽에 앉은 중년부부의 대화가 들려왔다.
오늘은 중년 아저씨의 생신이신 듯했고, 평소엔 얄짤없지만 생일이니 한 잔 해도 된다는 중년 아주머니의 승인이 떨어져 와인 한 병을 큰 소리로 주문하고 계셨다.
결혼한 지 25년 되었다는 아주머니의 말을 무시한 채, 계속 '우리의 23년 결혼생활동안'이라며 연설을 하시던 아저씨는 결국 아주머니에게 '25년이라고 이 인간아.'라는 격한 가르침을 받고 나서야 23년을 25년이라 정정하며 본인의 와인잔에 와인을 그득하게 따라 부었다.
그러고도 몇 마디 더 이어진 격한 가르침에도 전혀 흔들림 없는 중년 아저씨의 몸짓과 동공을 보며 대단한 정신력이라며 속으로 엄지를 치켜세웠다.
중년의 아저씨는 와인잔을 혼자 들고서 갑자기 '올해 바라는 점'을 중년 아주머니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많은 거 안 바란다. 올해! 토끼의 해 아니가! 토끼! 올해는 토끼처럼 조용조용히! 소리 지르지 말고, 알겠제? 내 그거 하나 니한테 바란다."
"소리 지르지 마래이, 알겠제? 토끼처럼 조용 조용히! 그리고 토끼처럼 조용히 살다 조용히 죽자! 알겠제? 대답해라."
강압적으로 대답을 요구하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하나도 무섭지 않았고, 오히려 다급하게 느껴졌다.
정적과 함께 몇 초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아저씨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니는 개띠니까 개처럼 멍멍! 크게 짖어줘야 안되겠나?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밥이나 먹어라."
단호하면서 박력 있는 중년 아주머니의 한 마디에 아저씨는 어떤 대꾸도 없이 와인잔을 몇 바퀴 돌리더니 냅다 원샷으로 와인을 넘길 뿐이었다.
한 편의 시트콤을 본 듯하여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아내느라 입을 틀어막았다.
엄마가 왜 그러냐며 물었지만, 나중에 차에 가서 얘기해 준다는 말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J 씨도 가끔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소리 지르지 마... 너 화나면 무서워..."
그런 J 씨에게 나는 늘 이렇게 응수한다.
"내가 소리 안 지르고 조용히 하는 얘기는 오빠가 안 듣잖아. 소리 지르고 정색해야 그제야 들어주잖아. 내 말이 틀려?"
J 씨는 나의 물음에 반박할만한 적당한 대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난 팩트만 얘기했으니까.
아직까진 내가 왜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는지 그를 이해시키려 노력하고 개선을 바라며 설명을 시도한다.
그렇지만 세월이 흐른 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처럼 설명을 해줄 수 있을 진 미지수다.
나는 중년의 아주머니의 행동들에 동의하는 바이다.
아저씨, 생신 축하드려요. 그런데 올해의 소망은 아저씨에게 달려있어요. 아셨죠? 장어 맛있게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