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궁프로젝트: 복약안내서의 말]을 시작하며
'달과궁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한 것이 2017년이었습니다. 여자의 '달'과 '궁', 매달 이어지는 월경과 월경이 일어나는 자궁, 그리고 그를 둘러싼 몸 전반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시작했던 저의 작은 프로젝트는 브런치에서 시작해 위클리 매거진과 브런치북을 거쳐 <서른다섯, 내 몸부터 챙깁시다>(푸른숲, 2019)라는 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출간 이후 브런치에 연재는 뜸했지만 진료를 통해 제게 이 프로젝트는 현재진행형이었습니다. 오히려 브런치에 연재했던 시절보다 몇 배는 더 많은 글을 썼어요. 다만 브런치에 쓴 글이 모두에게 공유하는 글이었다면, 이후로 썼던 수많은 글은 모두 단 한 사람을 위한 글이었습니다. 복약안내서라는 형태로요.
저의 복약안내서에는 '하루 두 번, 식후 30분에 복용하세요' 말고도 수많은 내용이 담깁니다. 현재의 증상에 대한 분석, 체질에 대한 진단, 향후 치료의 방향과 순서, 그동안 필요한 생활의 관리, 그리고 치료가 끝난 이후의 예후판단까지 한 사람의 치료에 필요한 모든 내용을 파악하여 공유하지요. 일주일에 적어도 스무 건 이상, A4 한 페이지에서 길게는 세 페이지 분량에 이르는 단 한 사람을 위한 '건강 상태 보고서'인 셈입니다.
그렇게 써 온 복약안내서는 이제 천여 편이 훌쩍 넘습니다.
한 사람의 몸을 들여다보고 진단과 치료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 온 시간들, 그 시간을 가감 없이 치료의 당사자에게 공유하고 설명하고자 했던 노력, 노력이 거듭되면서 반복해서 확인하고 체화한 지식과 정보들... 이 모든 것이 모일만큼 오랫동안 여러 환자분들을 만나 단 한 사람을 위한 글을 지속적으로 쓰면서 느낀 점들이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어제의 몸과 오늘의 몸 사이, 질환과 증상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들이 관찰자인 저의 시공간을 뛰어넘어 씨줄과 날줄로 짜여가는 신기한 경험들을 하게 됩니다. 그 흔적들이 제 하드 안의 복약안내서 폴더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중 가장 또렷한 경험은 개인의 몸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보편적으로 필요한 건강의 이야기들이 정리되더라는 겁니다. 봉준호 감독이 2020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며 소감으로 인용했던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의 어록처럼, 저도 한번 이렇게 말해볼까 합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
사람의 몸은 모두 다르다는 것, 서로 다른 지점들의 상당 부분은 체질로서 타고난다는 것, 체질만큼 강력한 개성은 개인이 겪어 온몸의 역사를 반영한다는 것, 무엇보다 다른 와중에서도 본질적으로 통하는 지점들이 있었던 겁니다.
새벽까지 아무도 시키지 않은 야근을 하며 수십 장의 페이퍼를 쓰는 혼자만의 마감, 다크서클을 비비며 언젠가는 이 이야기들을 모아서 다시 한번 쓰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연령대의 폭은 넓습니다. 질환의 범위도 다양합니다. 몸의 증상만큼이나 마음의 문제도 많습니다. 처해있는 환경도, 스트레스의 정도도, 라이프 스타일도 모두 다릅니다. 그러나 단지 개인의 문제라고 넘길 수 없는 관계성이 포착될 때가 있습니다. 분명 전혀 다른 환경의 전혀 다른 사람인데도 비슷한 증상으로 고통받고, 상당히 유사한 질환이지만 치료의 방식은 전혀 다르기도 합니다.
처음의 연재가 개론이었다면 실제 진료의 경험으로부터 뽑아낸 이다음의 이야기들은 각론, 실전 편에 가까울 겁니다. 개인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 모두가 내 몸에 관해 관심을 갖기를 , '나'라는 단 한 사람의 VIP를 모시는 주치의가 된 심정으로 스스로의 '달과궁'을 살피기를 바랍니다.
복약안내서의 말에는 환자를 대하는 저의 태도가 어쩔 수 없이 묻어있습니다. 제게 오는 분들이 저와 무관한 제삼자가 아니라 나의 어머니, 나의 언니, 나의 친구들과 그들의 딸, 그리고 어쩌면 제 자신의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진료하기 때문에 저는 그들에게 건네는 제 글이 쉽고 다정했으면 합니다. 어쩌면 이건 지극히 개인주의자에 가까운 제가 제 일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도 제가 전하는 말들이 다정하게 가 닿았으면 합니다.
달과궁 프로젝트 실전편 <복약안내서의 말>, 시작합니다.
2023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