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일'의 시작 : 여자
저희 부부는 작은 한의원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의대를 졸업하고 제가 먼저 남편에게 동업을 제안했습니다. 뭐가 됐든 자영업을 꿈꿨던 시절이었습니다. 월급쟁이에게 미래가 있을까, 우리는 종종 그런 화제를 안주 삼곤 했습니다. 미친 서울의 집값을 감당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들이랑 맛있는 거 먹고 싶을 때 먹으면서 살고 싶다. 소박해 보이기도 대단해 보이기도 하는 삶의 목표를 두서없이 늘어놓던 저녁이면 아, 우리는 결국 우리 일을 하게 되겠구나, 막연하게 생각했지요.
결혼하고 둘 다 직장에 다녔던 평범한 시절도 잠깐 있었습니다. 제가 먼저 개원을 선언한 뒤 자발적 백수가 되었는데 마침 그즈음에 회사에 잘 다니던 남편이 자꾸만 "이거 어때?" 하며 사업 아이템을 들고 오더군요. 그 아이디어들이 제 눈엔 다 그저 그래서, "할 거면 차라리 나랑 같이 하자!"라고 당차게 오퍼를 날렸습니다. 남편이 "콜!!"을 외친 그날이 우리의 역사를 뒤흔들어놓을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었습니다.
한의사인 저와 대기업 재무팀에서 오래 일한 재무통 남편은 소위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 커플이라 약간만 흐린 눈을 하면 성공한 스타트업의 IT 기술자과 전문경영인의 조합 같기도 했습니다. 처음 함께 일하겠다는 발상을 떠올렸을 때 '우린 멋지다!'는 자신감에 취했었던 것도 같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동행은 시작되었습니다. 결혼은 미친 짓이고 동업은 더 미친 짓이라는데 우리는 그 둘을 함께 하고 있으니 대체 얼마나 미친 짓이었던 걸까요?
아무리 친하고 가까운 사람이라도 함께 일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동업을 결정했던 해는 연애 10년 끝에 결혼한 지도 5년을 넘긴 시기였습니다. 도합 15년이면 상대를 알만큼 알았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나요? 저도 그랬습니다. 워낙에 서로 접점이 없는 성격이라 트러블이 예상되지 않는 바는 아니었지만 잘 알기에 우회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서로의 단점만큼 장점도 빠삭했고 각자가 못 가진 것을 가졌기 때문에 같이 일하면 기가 막힌 시너지가 나올 거라고 예상했지요.
일도 인간관계라 연애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콩깍지 제대로 씐 연애 초기에는 서로의 단점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처음에는 서로에게 눈이 멀어 같이 일하기만 하면 모든 게 잘될 거라 믿었습니다. 삐져나온 코털은 소탈해 보이고 욱하는 성격마저 박력 있어 보이던 시기가 언젠가는 (생각보다 빨리) 끝나듯이 짧은 허니문이 가져온 설렘과 자뻑(?)이 지나고 나자 우리는 수시로 싸우고 부딪쳐 폭발했습니다. 직원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원장님과 대표님이 방에서 곧잘 싸운다'는 소문이 돌았다는 얘긴 나중에야 전해 들었지요.
우리가 좀 더 합리적이었다면 (그래서 이 모든 고난과 역경을 예상했다면) 함께 하는 이 작은 사업은 아예 시작조차 못했을 지 모릅니다. 연애든 결혼이든 동업이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든 하지 않든 후회가 남을 거라면 저는 늘 하고 후회하는 쪽을 택합니다. 남편은 같이 일하면서 제게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많이 하지만 '어렵게 생각한다고 뭐 크게 다를 것도 없다'는 게 제 지론이기도 합니다.
그 힘든 길을 굳이 가게 만드는 신의 장난이 있기에 어떤 역사들은 또 쓰이는 겁니다. 지겹게 싸웠어도 함께 일하기로 한 결정을 후회하느냐고 묻는다면 제 대답은 여전히 "No!" 입니다.
저는 우리 사업의 대표이자 핵심 역량이지만 그 자리가 종종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남편은 어디서든 주류였는데 지금은 백업을 담당하는 스스로가 답답하고 어색하다 말하곤 합니다.
딸만 넷인 집에 막내로 태어나 한 번도 메인 자리에 서 본 적이 없는 깍두기 어린 시절을 보낸 저는 뼛속까지 인프피에 덕후의 기질이 다분한 집순이입니다. 그에 반해 K-장남이자 눈에 띄게 예쁜 아기였던 남편은 태어난 순간부터 센터를 놓친 적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내며 자존감 대마왕으로 자랐습니다.
모임기피형인 저와 어떤 자리에서든 주류이자 리더의 역할에 익숙했던 남편,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은 인프피와 회식자리마저 즐거운 외향형 인간은 각자의 이유로 괴로워하며 때로는 서로의 자리를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내향인이지만 프런트맨의 역할을 해야 하는 저와 사람에게서 에너지를 얻는데 동료도 상사도 없이 혼자 일하는 데에 익숙해져야 하는 남편은 각자의 타고난 성향과는 정반대의 자리에서 함께 일하게 된 겁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쉽지만 타고난 천성을 거스르며 일하는 과정은 뼈를 잘라 맞추는 것처럼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일로 다듬어진 어떤 부분은 나의 성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겁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 아니었다면 결코 발굴되지 않았을 가장의 존재감과 리더의 책임감을 어느새 탑재하게 되고 보니 그 의미가 와닿습니다. 여전히 몇 시간씩 닥치고 굴 속에 처박히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일을 멈추지 않는 삶의 무게가 이제 그리 버겁지만은 않습니다.
남편은 저보다도 이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더 어려워 보였습니다. 그래도 요즘에는 결국 답을 찾은 듯 보입니다. 아마 이런 기회가 아니었다면 적당히 사람들 틈에서 조금 뛰어난 외향인으로 살았을 텐데, 지금은 고독과 싸우며 더 깊은 자기 발전의 시간을 만들어 나가는 중입니다. 그에게도 이 사업이 성장의 기회가 될까요? 부디 그러기를 바랍니다.
콩깍지 요정이 떠나간 자리에서 서로에게 포탄을 날려대던 전쟁의 시기를 지나, 우리는 이내 휴전의 협정을 신속하게 맺는 방법을 익혔습니다. 소모적인 언쟁은 늘 다니는 길에 덩그러니 뚫려 있는 구멍에 반복해서 빠지는 일과 같습니다. 단점을 지적하고 팩폭을 날리기보다 밟지 말아야 할 지점을 조심스럽게 우회하는 방법을 깨달은 이후로 우리는 조금 덜 싸웁니다.
저희처럼 부부가 함께 일하는 어떤 분이 우스갯소리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부부가 함께 일을 시작하면 동업을 끝내는 곳은 아마도 가정법원이 될 거라고요. 물론 농담이지만 마냥 농담만은 아니기도 합니다. 그만큼 함께 일하는 부부는 여러 모로 복잡하게 뒤얽히게 되니까요. 저희 또한 동업이 부부의 관계성을 해칠까 봐 노심초사했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 노심초사가 지나치게 가까운 관계의 안전거리를 지켜 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처음 시작할 때 우리는 '절대 그만두지 않을 동료가 있어서 든든하다'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습니다. 마치 처음 연애할 때 영원히 사랑하자고 말하는 것처럼요. 그러나 서로의 연한 부분을 도려내며 싸워댈 때면 '와, 이건 정말 안 되겠다' 싶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더 큰 어떤 것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이 관계를 끝낼 수도 있다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된 순간에 함께 할 결심도 더불어 단단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끝낼 수 있음에도 함께 하고 있다는 건 매 순간 저의 선택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이지요. 끝을 말하지 못하는 관계는 어딘가 일그러져 있다는 걸 연애할 때는 분명히 알았는데 왜 동업할 때는 잊었던 걸까요. 끝낼 때 끝내더라도 이 순간은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한다면 우리는 어쩌면 조금 더 오래 같이 일할 수 있겠지요.
그리하여 우리 부부는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