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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최 Oct 07. 2024

이건 계획에 없었는데

'부부일'의 시작 - 남자

나는 지금을 사는 데 익숙하지 않다. 내 머릿속은 항상 미래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하다. 현재가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을 정도다. 어쩌면 나의 현재는 머나먼 미래를 위한 교두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행복의 반대편으로 가는 특급열차에 올라타 있으니 말이다. 가끔은 착각하기도 한다. 미래를 바라보는 나는 현재의 나니까 어찌 보면 나는 현실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은 에셔의 판화처럼 끝없는 아이러니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이내 착시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름의 개똥철학을 내세워 봐야 내 어리석음이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미래를 바라보는 것은 나의 오랜 습관이다. 불만으로 가득했던 소년의 유일한 탈출구였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 나는 누구나 한 번쯤 힐끔 쳐다볼 만큼 예쁘장했다. 키도 큰 편이어서 어딜 가나 눈에 띄었다. 게다가 공부까지 잘했으니 나의 유년기는 걸그룹 센터에 버금가는 화려한 시기였다. 하지만 나를 둘러싼 환경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중견기업 회장의 운전기사였다. 어머니는 자신의 똑똑함을 감추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 시대의 여자였다. 부모님은 가난했지만 정직하게 살아가셨다. 나는 그 떳떳함이 좋았다. 하지만 '좋다'가 '만족한다'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정형편이라는 계급장을 뗀 '나'와 운전기사의 아들인 '나' 사이에 이질감이 느껴졌다. 화려함과 초라함 사이를 오가며 이질감은 점차 이물감으로 바뀌었다. 나는 운전기사의 아들로서의 나를 도려내기로 했다. 현실을 바꾸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내가 상상하는 미래에서는 가능했다.


          나는 내가 상상하는 미래에 생명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단계별로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설정했다. 계획을 세우는 일은 즐거웠다. 목표를 달성한 나를 상상하는 일은 더욱 즐거웠다. 상상의 조각들을 맞추어가다 보면 어느덧 내가 꿈꾸는 나의 모습이 되어 갔다. 이 순간만큼은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을 떠나 미래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황홀한 순간은 잠시일 뿐 이내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그러면 나는 또 계획을 세웠다. 이렇게 계획을 세우는 것은 어느덧 나의 정체성이 되어 버렸다.  


          반면 아내는 지금을 사는 사람이다. 자칫 자기 관리가 안 된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아내는 어지간해서는 앞 날을 걱정하지도, 미래를 준비하지도 않는다. 한 번 방향이 정해지면 현재에 충실할 뿐이다. 시간표도 없다. 아이가 생기고 어느 정도 루틴이 생겼지만 이전에는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났다. 그리고 자주 멍을 때렸다. 30분 단위의 시간표를 수시로 고치며 뿌듯해하는 내가 아내를 게으르다고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어쨌든 아내는 계획이 없을 때 행복하다. 한 영화에서 "내일만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라고 하던데, 아내는 지금을 사는 놈이니 세상 무서울 게 없을 것이다.


          우리는 동업을 하게 되었다. 계획을 세우는 것이 정체성인 나와 무계획이 계획인 아내가 함께 일하게 된 것이다. 나는 다니던 회사가 생각한 선로에서 점차 벗어나면서 창업을 꿈꾸게 되었다. 어느 날 아내가 시답지 않은 사업 아이템을 자꾸 들이미는 나에게 "할 거면 차라리 나랑 같이 하자!"며 오퍼를 날렸다. 내가 "콜!"을 외치며 우리의 새로운 관계는 시작되었다.


          아내와 함께 일하는 것은 계획에 없던 일이다. 어찌 보면 계획에 없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아내에게 무게 중심이 넘어와 있음을 의미했다. 창업 아이템은 한의원이었다. 아내는 글로 밥 벌어먹어 본 적 있는 한의사였고, 나는 대기업 재무팀에서 보고서나 쓰던 아무개였다. 물론 나답게 계획은 거창했다. 자영업인 한의원을 수년 내에 사업화시키는 게 목표였다. 그렇다면 주연은 나였다. 하지만 세상은 역시 만만치 않았다. 7년이 지난 지금도 우린 함께 자영업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조연이 되고 싶은 주연과 주연이 되고 싶은 조연이 함께 일을 해 오고 있다. 집순이를 지향하는 아내는 새로운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대는 것에서 존재감을 찾는 나는 모니터만 바라보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스트레스와 스트레스가 만나면 결과는 뻔하다. 그렇다. 우리는 거의 매일 다퉜다. 자신의 달라진 역할에 적응하느라 상대방의 변화한 모습에 순응하느라 숱하게 싸웠다.   


          역할의 혼동은 일터에서만이 아니었다. 한의원을 준비하면서 아이를 갖게 되었고 한의원을 시작하면서 아이를 낳았다. 아내가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얼마 쉬지도 못한 채 다시 출근을 하고. 이 고된 과정에서 나는 힘들어하는 아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대신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가정에서도 나는 조연이었던 것이다. 


          세월이 약이었을까? 이제는 어느 정도 새로운 배역에 익숙해진 듯하다. 그리고 가끔은 서로에게서 지난날 상대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아내는 어느 정도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가끔은 계획도 세운다. 나는 시간표를 지키지 못한 나에 대해 한층 너그러워졌고 가끔은 멍도 때린다. 이렇게 우리는 닮아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계획을 세운다. 사람은 여간해서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다면 아마 아내도 그럴 것이다. 지금이야 절박한 마음에 타고난 능력으로 맞지 않는 배역을 소화하고 있지만 그녀도 곧 지칠 것이다. 이번 계획의 목표는 소박(?)하다. 아내가 시들어버리기 전에, 내가 답답해서 미쳐 버리기 전에 우리를 각자에게 익숙한 자리로 돌려놓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좀 다를 것이다. 혼자 세운 계획은 행복의 반대편으로 나를 이끌어 왔을지도 모르지만, 아내와 함께 타고 있는 특급열차는 행복발(發)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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