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초급반에서 제일 처음 배우는 영법은 누구나 익히 아는 자유형이다. 그다음은 엎드렸던 배를 뒤집어 누워서 가는 배영.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따라가다가 완전히 새로운 다리 동작과 팔 동작을 익혀야 하는 평영을 시작할 때 살짝 괴로워진다. 선생님이 아무리 발을 잡고 자세 교정을 해주어도 앞으로 안 나가지니 조바심이 났다. 될 때까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평영에 매달리고 났더니 어느 순간은 하루종일 평영만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중급반에 들어온 뒤로 접영을 처음 배우기 시작했고 자유형, 배영, 평영을 계속 다듬고 있는 중이다. 특히 배영은 지난 초급반에서 강사가 바뀌고 센터가 보수 공사로 휴관을 하는 공백기가 맞물려 완벽하게 배울 기회가 부족했다. 그래서 배영을 할 때는 중급반 다른 수강생들에 비해 지금도 많이 뒤처진다. 선생님이 여러 동작을 고쳐 주셨지만 여전히 코로 입으로 물도 많이 들어가고 자신감도 떨어진다. 하지만 평영만큼은 최대한 많이 훈련했다 자신 있어했는데... 아뿔싸! 그동안 나는 잘못된 자세로 평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팔동작이며 머리를 물밖으로 올리는 타이밍 등 몸에 익힌 것들이 쉽게 고쳐질 리 없다. 최근 들어 선생님께 연달아 지적을 받으면서 속이 상하기도 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자꾸 주눅이 들어 꼬깃꼬깃해졌다.
며칠 전 3월 마지막 수업 날, 오리발을 낀 채로 내 앞사람이 출발하길 기다리며 서 있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천천히 하신다고 생각하세요. 안 되는 거 자꾸 걱정해서 스트레스받지 마시고, 천천히 하시다 보면 다~ 됩니다."
마치 내 속마음을 읽은 듯한 뜻밖의 격려 한 마디가 차디찬 물속을 따끈한 온천처럼 변화시켰다. 구겨져 있던 내 모든 것이 부드럽게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날 수업을 절반 정도 남기고 중급반과 상급반 인원을 섞은 뒤 두 개의 레일에서 계영 시합 비슷한 것을 했다. 레일별로 인원을 또 나누어 이쪽에서 한 명이 자유형 25m를 가면 반대쪽 벽에 기다리던 사람이 이어서 25m를, 그렇게 한 레일에서 십여 명이 최대한 스피드를 올려 옆 레일과 경쟁하는 것이었다. 내 차례가 다가오는 순간, 출발 직전의 그 폭발할 듯한 긴장과 떨림. 마치 수영 선수가 된 것만 같았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난 건지 거의 미친 듯이 어깨를 돌렸다. 무호흡까지는 아니어도 호흡 횟수를 평소보다 훨씬 줄여서 경기(?)에 임했다. 레이스 마지막 주자들에게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까지 쳐주었다. 지금까지 이런 경험은 해 본 적이 없어 무척 신기하면서도 재미있었다.
각자의 반으로 다시 돌아와 수업을 마무리하는 화이팅 인사를 하기 전, 선생님이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펼쳐 보이셨다. 거의 무호흡으로 갔다며 아주 잘했다고 활짝 웃어 주셨다. 몽글몽글 풀어진 내 마음이 벅차오르는 기쁨으로 넘실거렸다. 비록 지금 아주 작은 새우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나는 이 바다에서 고래의 춤을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