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무 May 01. 2024

수영장에서, 내가 죽던 날

수영하는 삶 chapter 8


* 연재를 약속드리던 중 4월을 통으로 쉬었습니다;;

수태기(수영 권태기)는 아니었습니다. 나름의 사건이 있었어요. 글로 정리하고 다시, 시작해 보렵니다.

아껴주시고 성원해주시고 후원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보태주시고 밀어주시고 염려해주시고 근심해주시고 걱정해주시고 사랑해주시고... 감사합니다 :)




터닝 포인트 turning point

어떤 상황이 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뀌게 되는 계기. 또는 그 지점.



내가 싫어지는 순간이 있다. 다짐한 것을 지키지 못하거나, 스스로 통제할 없을 만큼 갑자기 눈물이 난다거나.  아침 수영 강습 중에 자유형 150m, 배영 75m 정도를 가다가 건너편 벽 쪽에 선 채로  나는 엉엉 울고 말았다.

물속에서 맹렬히 수영을 하다 보면 체온이 급상승해도 땀은 맺힐 수 없다 보니 얼마나 땀이 나는지 알 수 없다. 아마 눈물도 비슷하겠지. 볼을 타고 계속 흘러내려도 이미 젖은 얼굴이니 티가 나지 않을 것이다. 물안경으로 가리면 더더욱 모를 일이므로 수영마치고 나왔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버티지 못하고 수업 시작 20분도 안되어 샤워실로 퇴장해 버렸다.


4월이 시작되고 우리 중급반에도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다. 결석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인데, 친정에 갈 일이 생겨 이틀 수업을 빼먹은 다음 날이었다. 초급반에서 올라왔거나 신규 수강생일 낯선 얼굴이 대여섯 보였다. 쭈뼛쭈뼛 서 있다가 강사님이 조정을 해주셔서 그분들 앞쪽에서 출발을 했다. 자유형 100m를 다녀오고 나니 역시나 호흡이 문제였고 힘에 부쳤다. 뒤에서 따라오던 분이 내 발을 터치했고, 나로 인해 출발 순서가 지연되거나 뒤죽박죽이 되어갔다. 내 출발 순서는 다시금 뒤에서 세 번째 정도 되었고 급기야 배영에서도 뒷사람이 나보다 빨라서 또다시 행렬이 꼬여버렸다. 뒷사람 둘을 모두 보내려고 벽 쪽에서 수영장 밖을 바라보며 헐떡이고 있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다.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 자부했는데, 중급에 새로 올라온 사람들보다 못한 내 실력이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뭔가 한없이 억울하기도 했다. 정말 이 정도밖에는 안 되는 것인가. 내 한계가 여기까지인가. 앞으로 몇 달이 지나도록 나는 계속 중급반 꼴찌로 남는 걸까. 스스로를 원망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수영장에서 상대방의 발을 터치한다는 것은 부득이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앞사람과의 거리를 두고 출발하며 혹여 가까워져도(내 속도가 앞사람보다 빨라도) 가급적 타인의 신체를 터치하지 않는 것이 매너라고 배웠다. 그럼에도 자유형이나 배영을 하다 보면 강습이든 자유수영에서 나도 앞사람을 터치한 적이 꽤 된다. 가능할 때에는 그분에게 가서 사과하기도 한다.

수영장에서 울던 그날, 뒷사람의 손이 내 발을 치는 그 느낌이 유독 불쾌하고 긴장됐다. 몇 번 더 반복이 되어도 개의치 않고 내 수영을 했어야 했다. 어쩌면 나는 너무 작은 것을 확대 해석하고 거기에 감정까지 담아 커다랗게 부풀리고 터트려 버린 것 같다. 한 달이 지난 지금 돌아보니 한편으론 내가 가여운 마음도 든다. 기를 쓰고 애를 쓰는 조급함이 뾰족해질수록 나를 상처 나게 할 뿐이다. 어차피 평생을 배워도 부족할 수영이라면 누그러질 필요가 있다. 일희일비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며칠 전 자주 챙겨 듣는 팟캐스트 <여둘톡(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 94화에서 '어른의 성장'을 주제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여러분도 뭔가를 해내느라 너무 바쁘고 벅찬 시간 속이겠지만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생활 속에서 사수하고 그 안에서 조금씩 성장하는 자신을 (어떤 기간은 성장을 못하더라도 좀 내버려 두고) 그냥 그것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가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아주 필요할 것 같습니다."


수영장에서 울어버리고 났더니 내가 수영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더 잘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마음은 부드러우면서 강하다. 할머니가 돼서도 이 수영을 오래오래 하고 싶은 마음. 이제부터는 날카롭게 나를 다그치지 않고, 저 멀리를 내다볼 것이다. 둥글게 재미나게 수영하고 싶다.


그날, 수영장에서 내가 죽던 날.

이전의 나는 이제 물속에 없다.

이전 08화 칭찬은 새우도 춤추게 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