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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배의 노하우 Sep 25. 2017

장례식 이야기_첫번째

외할아버지의 장례식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첫 번째 장례식은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당시는 국민학교였지만, 9살때였다. 누군가의 죽음, 탄생 보다는 나와 친구에게 집중할 때였고, 저녁 9시면 엄마아빠 옆에서 이불을 덮어쓰고 전설의 고향을 보며 막연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아주 조금씩 느끼고 있을 때쯤이었다. 당시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과학과 종교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었기에, 그냥 몸이 죽는 것보다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런 생각들은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이 우선이었다. 내가 죽으면 이런 생각들은 모두 그냥 사라지는 것일까? 어딘가에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전설의 고향을 보면 몸은 죽어도 귀신이나 시체가 되어 남아있는데, 도통 이런 귀신이나 시체에 생각이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아마 이러한 죽음에 대한 생각이 나의 첫 번째 형이상학적 고민이었을 수도 있겠다. 죽음이라는 것이 막연한 허상과 같이 여겨지고 있을 때, 갑작스레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다. 돌아가셨다는 연락이었는지 임종이 가까워졌다는 연락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 연락을 받고 엄마와 아빠는 급히 시골로 내려가셨다. 내 기억 속에 외할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는 뚜렷이 남아있지 않다. 당시 내 주변에 누가 돌아가신 적을 인지한 적은 없었고, 그게 슬픔이 된다는 것도 좀처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 기억 속에는 엄마랑 아빠가 당시 외갓집이 있던 충남 부여로 내려가시고, 나는 두 살 터울인 누나와 둘이 서울에 남아서 아마 처음으로 엄마랑 아빠가 없이 둘이서만 집에서 잠을 잤었다. 당시에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엄마가 얼마나 슬퍼하셨는지 아빠가 어떤 식으로 엄마를 위로해 주셨는지에 대한 기억은 남아 있지 않다. 내 기억에 남아있는 건 장례식이 한참 지난 후에 이모들에게 들은 장례식 당시에 있었던 기묘한 이야기들이다.

 당시 우리가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엄마의 형제들은 대전에서 살고 있었다. 그 중 엄마의 바로 손아래 동생인 큰삼촌이 상주였고, 큰삼촌은 가족들과 함께 장례식에 가셨다. 큰삼촌에게는 딸 하나, 아들 하나가 있었고, 둘 다 나보다는 몇 살씩 어렸었다. 그 중에도 남자아이는 고작 4, 5살 정도였을 것이다. 외갓집은 시골에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논산과 부여의 어디쯤이었고 십자리라는 지명만 기억이 난다. 어렸을 적에 엄마와 둘이 외갓집에 갔던 기억으로는 논산인지 부여인지에서 택시를 타고 십자리에선가 내려 한참을 걸어가야만 했었다. 당시의 시골마을들이 다 그랬겠지만, 외갓집은 인적이 꽤나 드문 곳에 있었다. 외갓집은 당연히 현대식 건물이 아닌, 사극 속에 보여지는 커다란 나무로 된 문이 있었고, 그 문 바로 옆으로 사랑채가 있었고, 툇마루처럼 되어 있는 곳에 걸터앉아 쉬곤 했었다. 마당에는 당시에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던 열심히 펌프질을 해야 물이 나오는 옛날식 펌프가 있었고, 높다란 장대에 길게 빨래줄이 늘어져 있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실 즈음 외할아버지는 사랑채에 누워계셨고, 모든 가족들은 사랑채에 모여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아이들에게는 많은 신경을 써 주기가 어려웠고, 당시 막내였던 사촌동생은 툇마루에 누워서 잠을 자고 있었다고 한다. 어둠이 내리고 모두가 임종을 기다리고 있을 무렵, 갑자기 툇마루에 있던 사촌동생이 소리를 질러 나가보니, 사촌동생이 빨랫줄을 가리키며 손짓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불이 빨랫줄을 휘감으며 돌고 있다고 했단다. 이모와 외숙모는 사촌동생이 잠이 덜 깨서 그런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 했는데, 사촌동생이 갑자기 자기 오줌이 들어있는 통을, 어려서 요강대신에 조그마한 통에 그냥 오줌을 누고 옆에 두었던 듯 한, 들고는 벌컥벌컥 마셨다고 한다. 그리고는 기절하듯이 쓰러져서 다들 깜짝 놀랐다고 한다. 다행히 사촌 동생은 특별한 이상 없이 곧 정신을 차렸지만, 빨랫줄을 보고 불을 보았다고 한 이야기나 자기 오줌통을 마신 것은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당시에 막내이모와 막냇삼촌은 결혼을 하기 전이었다. 모두가 사랑채에 모여 임종을 기다리고 있을 무렵, 갑자기 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밤늦은 시간이고 외갓집이 워낙 외진 곳에 위치해 있어 올 사람도 없었거니와, 조금 전에 사촌동생 일도 있고 해서 뒤숭숭한 상황에서 다들 누구지 싶어했다. 하지만 외할아버지가 임종을 앞에 두고 있어, 혹시나 잠시라도 자리를 비웠을 때 임종이 올까 싶어 나가보기를 꺼려했고, 서열 상 가장 낮았던 막내이모가 나가 보게 되었다. 막내 이모는 사랑채 바로 옆에 있는 대문으로 향했고, 밖을 향해 “누구세요?” 라고 물었더니, 밖에서 어떤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여기가 ㅇㅇㅇ 씨 댁이 맞습니까?” 라고 외할아버지를 찾았다고 한다. 막내이모는 외할아버지를 찾아온 손님인가 싶어 커다란 나무 대문을 빼곡히 열어 보았더니 어떤 남자가 까만 옷을 입고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고 한다. 순간 이모는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어, 집을 잘못 찾았다고 그런 사람 여기 없다 하고 문을 닫았다고 한다. 당시 외갓집 대문은 양쪽으로 아주 두터운 나무를 미닫이로 열고 닫고, 중앙을 커다란 빗장으로 거는 옛날식 문이었다. 이모는 문을 꼭 닫고 찝찝한 마음으로 돌아서는데, 조금 전 문틈으로 보았던 그 남자가 사랑채 앞에 서 있었고, 이모를 무심하게 한 번 쳐다보고는 사랑채로 쑤욱 하고 들어갔다고 한다. 그 순간 사랑채 안에서는 갑자기 곡소리가 들렸고,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딱히 미신을 철떡 같이 믿거나 하지는 않지만 어렸을 때 이모한테 들었던 이 이야기는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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