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배의 노하우 Feb 13. 2018

유려한 선과 우아한 색의 마리 로랑생

아름다움의 진화

자화상_거칠고 어두움의 탈피

 

그녀의 자화상을 보면 그녀의 초기 화풍이 자리잡아 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1904년과 1905년에 각각 그린 그녀의 자화상을 모면, 거친 듯 하면서도 쌍꺼풀이 짙은 눈과 도톰한 입술이 유독 도드라져 있다. 이 시기의 실제 로랑생의 사진을 보면 가장 실제적인 표현을 한 것이기도 하고, 혹은 본인이 무의식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이 강조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렇게 두꺼운  쌍꺼풀과 도톰한 입술은 후에 로랑생의 가장 독특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1908년에 들어오면서 그녀의 자화상은 새로운 형태로 자리 잡아간다. 거친 붓의 질감은 사라지고, 대신 뚜렷하고 부드러운 곡선으로 정리가 된다. 이러한 부드러운 선의 표현은 그녀의 대표작들의 부드럽고 유려한 곡선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여전히 그녀의 쌍꺼풀은 도드라지고, 입술은 두터우며, 코는 커다랗고 뭉툭하다. 눈썹은 당시의 유행을 반영한 듯 얇게 정리되어 있다. 그 이전의자화상들과의 극명한 차이는 더 이상 거칠고 어둡지 않다는 것이다. 선이 정리되었듯, 배경도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보다 사람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었다. 이러한 그녀의 표현은 계속해서 진화하여 부드러운 선과 화려하고 따뜻한 색의 조화로 이어지게 된다.  

 


시인의 가족, 부채_선의 시작


시인의 가족

 한동안 그녀의 작품들은 아직은 어두움을 간직한 듯 하지만, 그 표현에 있어서는 더욱 부드러워졌고, 사용하는 색은 조금씩 밝아져 갔다.1909년작인 ‘시인의 가족’ 시인이었던 사비아 레디(Sadia Levy)의 가족을 그린, 로랑생의 몇 안되는 군상화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은 로랑생의 선의 활용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작품처럼 보여진다. 여인의 목에서 내려와 어깨로 연결되는 선은 옷을 기준으로 갈라져 아래로는 가슴을 지나 아이의 머리 위에 가벼이 얹은 손과 자연스레 만나게 되고, 위로는 배경의 선과 합쳐져 왼쪽의 남자의 머리로 연결이 되며, 남자의 머리 뒤의 배경으로 마무리된다. 여인의 왼쪽 어깨는 아이의 뒤를 감싸주며 그 선은 또 다시 배경의 곡선과 일체감을 이루는 듯 보인다. 그리고 자화상을 통해 강조되었던 얇은 눈썹과 선명한 입술은 여인에게서 유사하게 표현이 되었으며, 아이의 커다란 눈망울은 나중에 일러스트까지 연결되는 독특하지만 깊이 있는 눈을 표현하는 시작점이 된다. 

 

부채

1911년작인 ‘부채’ 에 이르러서는 어느 정도 완성된 선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쪽으로 굵게 꼬아 넘긴 머리와 목에서 시작해서 어깨를 넘어 가슴까지 연결되는 선의 연결은 간결하지만 대담한 표현이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각이 있게 표현된 부분은 소품으로 사용된 부채와 로랑생의 코와는 대비되는 날카로운 콧망울 뿐이다. 그림 속의 쌍꺼풀은 여전히 짙고 입술은 꽉 다문 것을 강조라도 하듯이 입술 사이의 갈라진 부분을 얇은 선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아직은 로랑생의 화려하고 따뜻한 색은 아직 나오지않았다.



첼로와 두 자매_분홍과 푸른색의 대비


첼로와 두 자매

 이후 1913-14년 작인 ‘첼로와 두 자매’라는 작품부터는 본격적으로 로랑생 하면 떠오르는 파스텔톤의 분홍색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비록 제목은 두 자매 이지만 실제 파란색의 스카프를 두르고 있는 인물은 당시 로랑생과 교제하고 있던 탕크마르 폰 뮌하우젠으로 추정이 된다. 로랑생은 한동안 남성은 푸른색, 여성은 분홍색이라는 프레임을 고정했었다. 이 작품 역시 그렇게 표현이되었으나, 그 색의 표현이 너무나 부드러워 여성으로 명명하는데 전혀 거부감이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분홍색의 치마를 입은 여성은 이전의 작품에서와 같이 굵게 웨이브진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통해 여성임을 명확히 알 수 있지만, 남성의 경우는 귀 뒤로 넘어간 머리를 볼 수 없어서 그 성별을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또한, 여성의 경우 그 팔과 다리를 얇고도길게 표현했으며, 특히나 손가락은 요 근래 순정만화의 주인공처럼 가녀리게 표현이 되었다. 두 인물의 얼굴은 쌍꺼풀이 진 눈매와 길게 내려와 각진 콧망울, 꼭 다물었지만 옅은 분홍색에 선명하게 갈라진 입술까지 마치 쌍둥이라도 되는 양 무척이나 꼭 닮았다. 그리고 분홍색의 여성이 남성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음으로, 남성에 부속하는 존재가 아닌 당당한 독립적 존재로서의 여성성이 부각되었다. 이전의 작품들에서 나타났던 한없이 부드럽지만 과감했던 곡선은 얇고 가녀리지만 세련되게 정리가 되었다.



가구가 딸린 렌트하우스_초록의 시작


가구가 딸린 렌트하우스

 로랑생의 초기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 중 하나는 ‘가구가 딸린 렌트하우스’ 이다. 가구가 딸린 집의 열린 창문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군상에 로랑생은 많은 흥미를 느끼고 동시에 영감을 받았다. 그림에서 두 개의 열린 창문을 통해보이는 두 여인의 모습은 로랑생의 인물 묘사의 특징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왼쪽 창문에 고고하게 챙이 큰 모자를 쓰고 있는 여인은 로랑생의 페르소나처럼 파스텔톤의 분홍색 스카프를 걸친 채 우아하게 창 밖을 내려다보고 있다. 어깨에서 떨어지는 선은 한없이 부드러우며, 발코니에 살포시 얹은 손은 가녀리지만 살짝 꺾여 있는 손목에서 절제를 느낄 수 있다. 오른편의 창문에서는 가슴을 드러낸 채 머리를 매만지고 있는 여성이 보인다. 이 여성의 머리는 언제나처럼 한쪽으로 길게 넘겨진 채 늘어트려져 있고, 맞은 편에는 여성의 파트너인 듯한 남성이 여성의 옷가지를 들고 여성을 배려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각각의 창문을 통해 보여지는 모습은 독립된 공간임에도 로랑생의 분홍과 푸른색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왼쪽의 발코니에 서 있는 여성에게는 스카프와 모자로 각각의 색을 입혔고, 오른쪽의 여성에게는 커튼과 남성이 들고 있는 옷에서 나타난다. 이 작품에서 도드란 진 색은 분홍색이나 푸른색 보다는 오히려 싱그럽게 올라오고 있는 듯한 초록색이다. 어두운 톤의 벽 색깔 덕분에 더욱 생동감을 얹은 듯이 보이며, 위쪽에 새겨진 MAISON MEUBLEE 라는 글자와 구조의 균형감을 제공하기도 한다. 



우아한 무도회 또는 시골에서의 춤_선과 색의 정점


우아한 무도회 또는 시골에서의 춤

 로랑생의 초록은 ‘우아한 무도회 또는 시골에서의 춤’ 이라는 작품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1913년 로랑생의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져준 작품 중 하나인 이 작품은 초록이 주가 되며, 분홍과 푸른색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역시 선이다.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여성과 춤을 추고있는 여성들의 어깨에서 손끝까지 그리고 올려 세우고 있는 발끝까지 한없이 부드럽지만 힘을 잃지는 않았다. 허벅지에서 종아리로 내려가는 선이 조금 투박한 느낌이라면 선의 꺾임으로 표현되어 X 자를 그리는 듯 한 발목은 유려함의 정점을 보여준다. 발레를 하듯 꼿꼿이 세운 발등과 여기서부터 타고 오르는 선은 이 당시의 작품들에서만 볼 수 있는 아주 우아한 표현기법이다. 춤을 추는 여성이 입고 있는 원피스는 쉬폰 소재인냥 하늘거림이 그대로 느껴지고 바람에 날리는 끝단에서는 곡선이 아닌 직선과 이로 인해 생긴 각을 살려 주었다. 



책 읽는 여자_선의 미니멀리즘


책 읽는 여자

 이 즈음 로랑생의 인물 표현은 짙은 쌍꺼풀과 앙 다문 입술, 그리고어깨에서 발끝까지 유려하게 떨어지는 선이었는데, 1913년작 ‘책 읽는 여자’ 에서는 이러한 습관을 벗어나 새로우면서도 신비한 매력을 가진 여성을 표현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도드라진 것은 여성이 책을 읽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있기 때문에 쌍꺼풀이 짙게 표현되지 않은것이다. 아래로 향한 눈은 책에 시선이 꽂힌 듯이 보이기 보다는 책을 펴놓고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듯한 느낌을 준다. 어깨부터 떨어지던 선명하고 부드러운 선은 사라지고 배경과 혼합된 희미한 선으로 대체가 되었다. 입술은 여전히 앙 다물고 있지만, 이전의 작품들처럼 도드라져 보이지는 않으며, 입술의 분홍색과 탁자 위의 푸른 그릇을 제외하고는 최대한 색의 표현이 자제되었다. 대신 한쪽으로 쓸어 넘긴 듯한 검은 머리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오는 짙은 선 하나로 요즘의 단발머리를 보는듯한 단정함과 포인트를 적절히 살려주었다.

 

 로랑생의 작품들은 색과 선의 향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동작, 하나의 표정들 모두가 살아있는 듯한 절묘한 느낌을 함께 가지고 있다. 후기로 넘어갈수록 더욱 철학적이고 표현이 다양해지고, 많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지만, 앞선 본 초기 작품들은 사랑스러움과 우아함을 그 시기의 그 느낌 그대로 충분히 아름다움을 전달해 준다. 




작품 사진들은 도록에서 직접 촬영했습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이 가신다면 주변 분들께도 공유해 주시기 바라며, 개인적인 문의나 의견 등은 parris1024@gmail.com 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이전 08화 내 친구 이야기_첫번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