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고백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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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손가락 걸고

지켜지지 못한 약속

by 이숙재 Jan 0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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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에 전화벨이 울렸다.

불길한 예감에 얼른 전화를 받았다.

“저… 이○○ 할머니가 숨을 안 쉬세요!”

“저… 심폐소생술 할까요?”

“……”

엄마가 숨을 안 쉰다고 한다.

순간 어떤 것이 옳은 지 그른 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니요… 그냥 편안히 가게 해 주세요…”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사실 형제들과 이런 상황이 오면 그냥 편하게 가시도록 하자고 이미 약속을 한 터였다. 과연 어떤 것이 옳은 지 잘 모르겠지만 그동안 병으로 인해 힘겹게 사는 엄마를 보면서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어떤 때는  ‘천국이 그렇게 좋다는데... 저렇게 고통스럽게 사는 것보다는...’라는 못된 생각까지도 할 때가 있었다. 엄마랑 영원히 살 수만 있다면 이것저것 다 해보겠지만 인간의 생명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 이상 엄마를 고통 속에 있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결국 그런 날이 오고야 말았다.


병원에서부터 우리 형제 모두는 엄마의 죽음을 계속 준비하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들에게 늘 “이제 얼마 못 사실 거예요. 가실 곳 준비해 두시는 게 나을 거예요.”, “심장과 폐가 점점 굳어가고 있어요. 아마도 심장마비로 돌아가실 확률이 높아요.”라는 말을 심심찮게 들어오던 터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빨리 그날이 오고 말았다. 의사 선생님들이 말한 대로 엄마의 사인은 심장바비였다. 소설에서나 볼 듯한 광경이 결국 우리에게도 펼쳐졌다.


우선, 큰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남편과 재빠르게 요양원으로 향했다.

걸어서 10분 거리이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했다.


엄마는 아주 고요하게 누워 있었다.

“엄마!”하고 부르고 싶었지만 엄마의 이상하리만치 하얀 얼굴을 보자 순간 낯설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엄마의 곱고 하얀 이마에 손을 대 보았다.

대리석처럼 차가운 촉감이 내 혈관을 타고 온몸에 전해졌다.

엄마 뺨에 내 뺨을 갖다 대 보았다.

분명 엄마는 엄만데 엄마가 아닌 것 같았다.

너무나도 곱게, 너무나도 평온하게 누워 있는 우리 엄마.

당장이라도 일어나서 “왔어!”하고 반가워할 것 같은데 엄마는 그냥 곱게, 그냥 평온하게 웃으며 누워만 있다.

어제 오후 병원에 갔다 오면서 새끼손가락 걸고 “모레 밥 먹으러 가요!”라고 약속까지 했는데…

어제까지 따뜻하고 보드랍던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순간 ‘여기가 어디지?’하고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마냥 낯설고 어색했다.


옆에서 간호사가 내 등을 쓰다듬으며 “좋은 곳에 가셨을 거예요. 그동안 정말 아주 잘하셨어요.”라고 하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래, 우리 엄마 지금쯤 천국에 가 계실 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눈물을 가슴속으로 집어삼켰다.


‘엄마! 지금 하늘나라 가 계시죠!’

‘엄마! 이제는 안 아파서 좋겠다! 그죠!’

‘엄마! 그동안 너무 힘들었죠!’

‘엄마! 그동안 너무 애쓰셨어요!’

‘엄마! 천국에서는 아버지랑 싸우지 말고 잘 지내요!’

‘엄마! 미안해요!’

‘엄마! 다시 만나요!’

엄마의 차디찬 이마를 쓰다듬으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늘 기도했다.

자는 듯이 하늘나라 가고 싶다고…

기도 대로 엄마는 정말 자다가 아무도 모르게 하늘나라로 갔다.

임종을 못 본 자식으로 안타까운 마음도 있지만, 엄마의 기도 대로 엄마의 바람 대로 주무시다가 간 엄마,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의사 선생님들은 얼마 못 사실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얼마 전부터 상태가 좋아지는 걸 보면서 몇 년은 너끈히 더 사실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어제 오후만 하더라도 토요일에는 같이 외식을 하러 나갈 줄 알았는데... 인생이라는 것이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 돌아가시기 전날, 구급차 안에서 “고맙다!”, “네가 있어 좋다!”, “난 행복한 사람이다!”, “사랑해!”라고 수없이 많은 말들을 내게 건네주고 엄마는 하늘나라로 긴 여행을 떠났다. 본인이 갈 날을 미리 알았는지 그동안 하지 못하고 가슴 깊이 꽁꽁 묻어 두었던 이야기들을 술술술 풀어내며 막내딸인 내게 유언 아닌 유언을 남기고 간 엄마. 엄마의 손등을 문지르며 따스한 온기를 나누었던 그 순간, 그 느낌 그대로 아직 내 가슴에 그대로 남아 있는데...


엄마의 차디찬 볼에 내 볼을 갖다 대며 속삭였다.

‘엄마, 사랑해요!’

‘엄마! 다시 만나요!’


아쉬움과 후회도 남지만, 한편으론 엄마가 이제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아도 된다는, 고통스러운 삶을 더 이상 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스스로 위로를 해본다. 천국에서는 아픔도 슬픔도 없다고 하니 그걸로 됐다. 엄마가 아프지만 않다면... 엄마가 행복하기만 하다면...






* 표지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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