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 일기 1 >
아주 오래전 일이다.
남편과 칼국수를 먹으러 식당에 갔을 때의 일이다. 칼국수를 2인분 주문한 뒤 잠시 가만히 앉아 있는데, 남편이 옆자리에 있던 신문을 하나 집어 들었다. 사실 나는 그 옆에 신문들이 놓여 있었는지도 몰랐다. 슬쩍 보니 각종 신문사 별로 신문들이 나란히 줄지어 있었다. 아마도 음식점 사장님의 속 깊은 배려였을 것이다. 그런 배려를 저버리기 싫었는지(ㅋ) 남편은 신문 하나를 집어 들어 활짝 펴고 읽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큰 신문지를 다 펴고 읽다 보니 남편과 나 사이에 마치 베를린 장벽이라도 놓여 있는 것처럼 순간 남편의 모습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분명 신문지 너머에는 남편이 있는데 신문 장막으로 인해 남편이 내 눈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전지의 반 크기만 한 큰 신문을 활짝 펴고 마치 나와 당신 사이에는 신문 장막이 가로막혀 도저히 가까워지려야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을 포고하는 듯했다(적어도 내 눈에는 ㅜㅜㅜ). 순간 너무 당혹스러웠다. 뻘쭘했다. 민망스럽기까지 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하기 위해 머리를 휭~ 돌렸다. 그런데 순간 나도 모르게 내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활자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신문지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남편은 남편 눈에 보이는 쪽 활자를, 나는 내 눈에 보이는 쪽 활자를 아무 말 없이 읽고 있는 두 사람… 지금 생각해 보아도 정말 웃긴 일인데,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던 것 같다(아마도 ㅋ). 신문지의 활자들이 검은색이라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생각나지 않는 그 무의미한 행동을 통해 아마도 나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던 것일 게다. 그 뻘쭘함이, 민망함이 빨리 없어지기만을 기다리며... 칼국수가 빨리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신문의 기사가 무엇이었는지, 어떤 이야기들이었는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읽고 싶어서 읽은 것이 아니라 그 민망한 상황을 어떻게 해서라도 빨리 피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으니... 그나마 주문한 칼국수가 빨리 나와서 다행이었지만 ㅜ.
얼마 후, 나는 남편에게 서운했던 그날의 감정들을 조곤조곤 이야기해 주었다. “나랑 단둘이 있을 때는 내 눈 마주치며 내 말에 귀 좀 기울어 줘!” “그랬어? 미안해! 난 정말 몰랐어... 미안해!”라는 남편의 말에 그때 그 서운했던 감정은 어느 정도 사라졌다. 그리고 남편은 지금까지 음식을 먹을 때 내게 집중해 주려고 노력 중이다 ㅎ.
며칠 전 식당에 가서 그와 비슷한 광경을 보면서 갑자기 하나님 생각이 났다. 나와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하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랑 눈 맞추며 살자!”라고 하시며 내게서 시선(視線)을 떼지 않고 계시는데 그것조차도 인지하지 못하고 사는 나의 모습이 보였다. 죄송했다.
시선(視線)의 시(視)는 단순히 ‘보다’의 의미를 넘어서 ‘대우하다, 돌보다’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표준국어대사전).
내가 내 자녀를 볼 때, 단순히 그냥 물리적으로 보는 것을 떠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대우하다, 돌보다’라는 심정으로 바라볼 때가 대부분인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부족한 나를 그런 시선(視線)으로 바라보실 거라는 생각에 마음 따뜻하다. 분주한 내 일로, 내 환경으로, 내 건강으로, 내 물질로 인해 주님의 시선(視線)을 외면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오로지 내게 시선(視線)을 맞추며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지켜준다.” “너를 보호해 줄 것이다.”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살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16)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한일서 4:9~10)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한일서 4장 1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