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참...

순리대로

by 이숙재

성경 말씀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이시니라”(잠언 16장 9절)이라는 구절이 있다.

참, 맞는 말이다.

인생이라는 것이, 참… 계획한 대로, 마음 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언제부터인가 알게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 꿈이 현모양처였다.

빨리 결혼을 해서 아옹다옹 사는 게 꿈이었다.

글쎄… 결혼을 했으니 꿈을 이룬 것일까?

현모양처는 글쎄… 늘 상대방의 말도 들어봐야 하는 관계로 여기서 접기로 ㅋ.


또 꿈 중에 하나가 화가였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 미술반에 들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입시도 미대를 목표로 달렸다. 그런데 그림 그리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생각과 가난한 집 딸이라는 현실의 벽이 너무 버거운 나머지 그만 대학 입시를 코앞에 두고 그림을 접고 말았다.


그럼, 지금처럼 글 쓰는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을까?

절대 NO! No!!!이다.

작가는 고사하고 글이라 하면 자다 가도 도망칠 정도로 내게는 너무 싫은, 너무 어려운 영역이었다. '글'하면 왠지 재미없고 고리타분할 것 같아 정말 싫었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청소년기를 그 흔한 명작이라는 책 한 권 읽지 않고 친구들과 노는 데만 정신을 팔았다. <데미안>을 읽은 것이 40대 중반이었나 싶다ㅜ.

특히 <백일장>이나 <문학의 밤> 같은 행사가 있을 때는 멀리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너무 싫었다. 우두커니 앉아 졸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 보면 온몸에 쥐가 날 정도로 저리고 아파온다. 이런 일들을 여러 번 겪고 나니 정말 <백일장>의 ‘백’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몸서리 쳐질 정도로 너무 싫었다.


그런 내가, 어려서부터 책 멀리하기를 즐겨하던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지금도 내게는 이상하리만치 아이러니하다.


대학 시절, 영문학도였던 친오빠는 인문학과 철학, 문학에 깊이 빠져 있었다. 어느 날 하루, 오빠는 일본어로 대학을 들어간 내게 번역을 해 보라고 하면서 일서로 된 인문학 서적 한 권을 툭 던져 주었다. 사실 인문학, 사회학 같은 분야는 예나 지금이나 문외한인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마치 AI처럼 그냥 일본어를 한국어로 옮길 뿐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출판사에서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나는 장르에 구분 없이 일서로 된 글들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잡지사의 원고, 연애소설, 그림동화 등등… 대학 시절, 이런 일들은 내게 쏠쏠한 용돈벌이 중에 하나가 되어 주었다. 글 쓰는 일이 약간 재미도 있긴 했지만, 그 즐거움보다는 용돈을 벌 수 있다는 즐거움이 훨씬 더 컸다.

대학 졸업 후, 잠시 출판사에서 일을 했고, 그때 쌓은 친분이 이어져 자연스럽게 그림동화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동학을 전공한 나는 출판사에서 요구하는 대로 유, 아동 전문 기획물을 기획하기도 하고, 창작 동화를 쓰기도 하고, 편역을 하기도 했다. 내가 이런 글들을 쓸 무렵, 우리나라에는 유, 아동물을 출간하는 출판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나도 그 배에 올라타고 수없이 많은 기획물과 동화책을 써 나갔다.

가난한 시절, 남편은 공부하면서 과외로, 나는 글로, 몇 푼 안 되었지만 우리 세 식구의 입에 겨우 풀칠할 정도는 되었다. 조금이라도 생활비에 도움이 되고자 그때 당시 나는 정말 엄청난 양의 글을 써대기 시작했다. 글 쓰는 것이 좋다기보다는 돈이 되기 때문에, 쌀을 살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 글을 쓰고 또 썼다. 출판사의 마감 날짜에 맞춰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글이 안 써지는 날에는 내 안에 있는 진을 쥐어짜고 쥐어짜 글을 써댔다. 어떤 날은 3, 4일을 꼬박 밤을 새워가며 글을 쓰다가 눈이 폭발하는 줄 알았다.


점점 글 쓰는 일이 고통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 안에서는 ‘그만 쓰고 싶어...’, ‘가정 경제가 좋아지기만 해 봐라... 일단, 이놈의 글 쓰는 일부터 당장 때려치워야지!’라고 외쳐대기 시작했다. 왜 내가 글을 쓰고 있는지, 재능도 없는 내가 글을 쓰고 있는지, 책 읽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내가 글을 쓰고 있는지, 한 번도 글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는 내가 글을 쓰고 있는지… 정말 알다 가도 모를 일이었다.

글 쓰는 일은 나와는 전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이가 들어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어떨 때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도는 게 고통으로 여겨지며 우울해지기까지 했다.

‘내게 주어진 이 많은 시간들을 어떻게 지내야 심심하지 않을까?’라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한동안 첼로와 피아노도 배워봤고(손가락 관절과 손목 관절, 어깨가 너무 아파 그만 중도에 포기 ㅜ), 그림도 딸에게 배워봤다(크게 재주도 없는 것 같고 그리 재미도 없는 듯해서 지금은 잠시 휴업 중 ㅋ. 언제 또 그린다고 설칠지 모르지만 ㅋ).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쓰고 있다.

아직까지는 너~무 재미있다(또 언제 싫증 날 수도 있지만 ㅋ).

그래서 심심하지 않다. 시간도 잘 가서 너~무 좋다.


결국,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가장 심심하지 않고 재미나게 놀 수 있겠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라는 질문에,

‘<글 쓰는 일>이 아닐까?’라는 대답이 떠올랐다.

‘그래, 지금까지 글을 써왔잖아!’

‘잘 쓰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짬밥이란 게 있는데...’

그렇게 해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달란트라 생각하며...

감사하다.

안 심심하다.

행복하다.

그럼, 됐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 뒤론 물 흐르듯이 자연의 순리를 따라가자는 주의다. 글을 쓰고 싶을 땐 쓰고, 안 쓰고 싶을 땐 안 쓰고… 하면 된다. 또다시 그림을 배울 수도, 피아노를 배울 수도(글쎄… 이건 내 관절의 상태를 봐야 할 듯 ㅋ) 있다. 또 아님 말고 ㅋ.


내가 살아가는 방법이다. 감사하며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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