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가장 시대착오전 이야기, 나는 아직 담배를 핀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미움받을 각오로 시작하는 이야기다. 안그래도 비좁았던 이 이야기의 자리는 '코로나' 이후 타인과의 거리 속에 묻혀 발내밀 틈 조차 잃어버린 이야기다. 마스크로 무장하는 시절, 한모금의 여유 따윌 말하는 상황파악 못하는 이야기이고, 동시에 염치없는 이야기기도 하다. 그러니까 3밀과 함께 저 멀리 시대 뒤편으로 저물어가고 있는 이야기. 코로나가 시작되고 수 백일. 나는 아직도 담배를 핀다.
아주 오래 전, 내가 일하던 회사에선 거의 모두가 담배를 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나를 제외하고 모두가 담배를 폈다. 시절이 이미 스무 해 전이니, 실내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흡연을 하는 사람들은 그 하나의 공통점 만으로 시간을 재듯 하루 몇 번 무리를 지어 밖으로 나섰고, 술자리에서 갑자기 누구와 누구가 사라지면, 그건 밖에서의 흡연을 위한 공석이었다. 첫 회사에서 4년 여를 지내며, 나는 흡연하는 사람들과 흡연을 하지 않으며 살았다. 왜 그랬는지는, 연기의 유혹에 왜 넘어가지 않았는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어릴 적 아빠는 술도, 담배도 멀리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담배에 손을 댄 건 도쿄로 넘어와, 혼자사는 작은 1lk 방에서 그저 알고있는 브랜드라 골랐던 말보로 레드의 한 가치. 일본에선 사실 진열대에 적힌 번호를 말하면 되는데, 난 아마 '마루보로레도'란 말을, 꽤 힘들게 뱉어냈던 것 같다. 참고로 일본에서 말보로 레드는 '마루레도'라 부른다. 나는 그 시간이 좋았던 걸까. 담배를 피는 것도 ,한 모금의 나른함이 내 몸에 퍼져가는 순간도 아닌, 편의점에 가 '마루보로 레드'라 말하는 시간이. 담배는 내게 혼자'의 기억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 나는 말보로 레드를 피지 않는다.
고작 담배에 거창한 주저리라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담배엔 그 사람의 어떤 일상이 묻는다. 오래 전 멋모르고 뻐끔하던 시절 담배는 그저 어쩌다 고른 말보로거나 세븐스타거나 좀 멋져보인다는 이유로 아메리칸 스피릿이었지만, 옷을 고르는 첫처럼, 헤어 스타일을 고민하는 것처럼, 그리고 커피의 취향이 변하는 것처럼, 담배에도 취향과 선택, 그리고 기호의 세월이 흐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국내에만 50여 종, 일본이나 미국, 다른 나라를 포함하면 수 백, 천 가지의 담배가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 학교에 다닐 무렵 한 학년 선배는 맨솔만 고집하곤 했는데, 어떤 이는 냄새를 피하기 위해 담배를 찾기도 한다. 난 패키지가 예뻐 '아메스피'를 샀다 좀처럼 잘 '빨리지 않는' 느낌에 이어가지 못했지만, 지금도 이세야 유스케가, 쿠보즈카 요스케가 그 담배를 손에 쥐고있는 걸 보면, 돌연 다시 1천원이나 비싼 그 담배를 다시 사기도 한다. 어차피 한국의 아메리칸 스피릿은 금연을 경고하는 혐오스런 사진이 붙어있지만. 그만큼 바보같은, 혹은 모순적인. 그렇게 인간다운. 일본의 담배 회사 JT는 수십년 째 '사람의 시간을 생각하다'란 카피로 광고를 하고있는데, 분명 담배엔 시간을 소비하는 자기만의 묘한 감촉같은 게 있다. 결국 남는 건 니코틴 뿐이라 하더라도.
담배가 사라졌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근래 내가 피던 '세븐스타'의 6mm, 화이트는 좀처럼 찾기가 힘든 품종이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집 앞 세븐이레븐이라면 늘 구할 수 있었는데 얼마 전부터 매번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없어요'라고 똑같이 말했다. 불매운동의 여파인걸까. 세븐스타. 오래 전 한참 센 것만 찾다 블랙 패키지의 12mm에 불을 붙이던 세븐스타, 한국에 돌아와 대용으로 사곤했던 말보로 레드를 지나, 5백원이 싸다는 이유로 한동안 애용했던 캬멜, 그리고 얼추 자리를 잡았다 느꼈던 6mm의 하얀색 세븐스타. 세상에 담배는 많지만, 집앞 편의점만 해도 세븐스타를 대체해줄 건 차고도 넘치지만, 세월이 곁들여진 무언가의 빈자리는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다. 나는 담배가 아닌 세븐스타, 그리고 그 순간을 샀던걸까. 아니 무엇보다 애초 난 왜 세븐스타를 피기 시잭했을까. 어쩌면 그건 '난 왜 커졍의 향수를 부리기 시작했을까'와 같은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내가 담배를 끊는다면 그건 더이상 담배에서 느꼈던 나와 한 가치 사이의 '썸띵,' 별 거 아닌 특별함을 잃은 좀 시시하고 슬픈 날일 것이다.
흡연의 권리같은 이야기를 하고싶은 맘은 별로 없다. 지금도 밖에만 나가면 거리에 꽁초가 나뒹굴고, 흡연 구역의 공통된 풍경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하지만 일본에선 꾸준히 금연과 함께 흡연의 '매너'를 이야기하고, 얼마 전 JT가 코로나를 이야기하며 공개한 캠페인 영상엔 흡연을 옹호하는 사람, 원하지 않는 연기를 맞고싶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서로 '핍니당(スイマス党)'과 '안핍니당(スワン党)'으로 나뉘어 설전을 벌인다. 유치한 말장난만큼 단순한 영상인데 '사회적 거리'를 사이에 두고 흡연자와 흡연하지 않는 자의 자리가 나란히 공존한다. 단순히 담배의 문제가 아닌, 그를 매개로 한 나와 너의 문제. 개인적으로 한국의 흡연 매너가 '별로'인건, 혼자 피는 문화가 익숙치 않은, 늘 무리지어 나가서 피는 습관, 그런 오랜 관습 때문이라 생각하는데, '개인'이 더 다수인 일본에선 휴대용 재떨이를 소지하는 흡연자가 절반을 넘는다. 참고로 난 무인양품의 철제 재떨이를 파우치에 넣어 휴대하고 다닌다. 그리고 그 재떨이는 딱 한 사람만큼의 용량이다. 여전히 침을 뱉고, 꽁초를 버리고,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불을 켜는 이곳이지만, 담배를 1인칭의 '썸띵'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세상엔 어쩌면 좀 더 맑은 대화가 오가지 모른다. 어쩌면, 어쩌면 더 맑은 연기를 풍길지 모른다. 담배 한 가치의 무게는 고작 0.7g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