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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별 May 19. 2022

무언가를 이루기엔 우린 늙지 않았다.

by 뜻밖의 여정 그 안엔 참 좋은 것들이 있었다. 

한동안 아니 수개월 동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쓰기가 싫었다. 아니 써지지가 않았다.

야구에서 투수가 걸린다는 입스에 걸린 듯 나는 글쓰기 입스에 걸린 듯했다.

마음을 잡으려고 해도 헛헛해지고 쓰면 뭐하나 싶기도 하고 마흔의 나와 마주해 열심히 살아보자 한 게 엊그제 같은데 그 이후 나의 마음은 좀처럼 정착이 되지 않았다.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데 달리는 열차에서 어디 정류장에서 서야 하는지 내려야 하는지도 모른 채

멍 때린 채 차창만 바라보고 있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초고속 열차를 탄 듯 인생의 정류장은 무한 속도로 내 달리는데 나는 그 안에서 그 빠름을 즐기지는 못하고 헛헛해만 하고 있었다.


살을 빼려고 운동을 해봐도 생각처럼 안되면

 ‘나이 들어서 그런가 봐 예전 같지가 않아’

이직 준비를 하다 계속 면접 기회도 없어 좌절감이 들면

‘이젠 서류도 안될 나인가 봐 마흔 넘으면 그런가 봐 ‘


나는 언제부턴가 자꾸 나이 탓을 하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거 같아.. 그러면 주변에 있던 친구들은 하나같이  말해준다.

맞아 맞아 나도 그래,’ ‘그러니깐 나이 드니깐 정말 너무 허무하고 그래’

 

주변에서 그런다고 동조할 필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헛헛한 마음이 그랬던 거라고 나이 들어 이런 거라고  너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는 위로를 받고 싶었던 거겠지.

물론 그 위로가 도통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이 앞에서만큼은 세월에게만큼은 괜한 위로가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해보자 해보자 할 수 있어를 외쳐대던 젊은 시절의 기백은 잊혀지고 그 시절 힘차게 그랬던 나를 그리워만 하며 나이 드는 나는 이렇게 안 되는 일이 많아지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 버리고 있다. 


그러다 얼마 전 뜻밖의 여정이라는 프로를 보게 되었다.

윤여정 배우가 보통의 배우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다시금 조명되고 소소하게 살아지는 일상을 보고 있자니 고작 마흔에 내 삶의 목표가 다 된 거 마냥 나이 때문에 안되는 것 같다며 세월을 운운하고 있는 내 모습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76세에도 자신의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그녀에게서 나는 망치로 여러 번 두드려 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자꾸만 그녀가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함께하는 사람들까지도말이다.

우리 부모님보다도 한참은 많은 나이, 그 노년의 삶 안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과 그런 그를 아끼고 지지해주는 소중한 인연들이 함께하는 그녀의 노후가 그래서 더 멋져 보였다. 혼자라면 할 수 없었다는 그녀의 말속에 어쩌면 그녀가 그만큼 해냈기에 그 좋은 사람들도 함께 해주지 않았을까?

그중에서도 나는 정자라는 분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정말 수수하기 그지없고 직업을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한국 시골에서 평범하고 수수하게 살아가는 시골 할머니 같은 모습의 그녀는 미국의 애니메이션계의 거장이며 온 상을 휩쓸고 65세의 나이에도 현업에서 일을 하고 있는 대단한 인물이었다.

감히 난 그녀의 첫인상만 보고 그 정도를 판단할 수 없었고 정말 변변찮은 그냥 평범한 한국 할머니라고 생각했던 그런 내 시야가 부끄러웠다.

결국 외모와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있는 나를 보며 다시금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그녀가 한 말이 있다.

우리가 나이 들수록 인생에 목표가 없어지잖아요 근데 여정 언니가 보여줬죠.

무언가를 이루기엔 우리가 결코 늙지 않았다는 걸요!!

70이 넘어도 무슨 일이 나한테 일어날 수 있구나!! 그런 희망을 갖게 해 준 사람이어요.

무언가를 이루기에 우리는 결코 늙지 않았어요!! “


 


나는 티브이를 보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몇 개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꾸만 지나간 시절만 그리워하고 이제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생각으로 우울함에 헤매고 있던 나에게 묵직한 메시지로 다가왔다. 

지금껏 나는 무슨 생각으로 살아온 건가 고작 마흔이라는 나이에 이십 대의 청춘이 그저 그리워 허무하리만큼 나는 앞이 아닌 뒤를 바라보고만 있었던 건데 말이다. 어쩌면 앞으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을 수도 있는데 나는 그깟 사십 년을 살아내고 버거워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아직 젊어 넌 할 수 있는 게 많단다!! 그러니깐 힘을 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65세 그녀에게도 꿈이 있다고 했다. 어린이를 위한 만화영화를 만들고 죽는 거라고 했다.  65세에도 꿈을 꾸는 그녀!!! 41세에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루하루를 아무것도 하지 않고 허무하게 보내버린 나의 모습이 너무 창피해져 버렸다.


그깟 티브이 프로 하나가 뭐라고 싶지만 그 프로를 계속 보며 저 가슴속 깊이에서 오는 뜨거움이 나도 모르게 생겨버렸다. 뜻밖의 방송 한편이 다시금 나를 용기 나게 해 버렸다. 

다시 한번 해보자. 

앞으로 삼십 년 뒤 내 인생은 아무도 모르는 거다. 

그냥 할머니로 살아가게 될지 나도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다. 

칠십이 넘어도 우리에겐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랬다!!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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