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 원주민과 트레킹은 별 상관이 없다!
* 북한산둘레길
"등산하고 트레킹의 차이점이 뭐에요?"
역사트레킹 강의를 시작할 때 자주 듣는 질문 중에 하나다. 워낙 우리나라에서는 등산과 트레킹을 혼용해서 쓰는 사람이 많아서 저런 물음을 많이 하는 거 같다.
"등산은 수직적인 행위이고, 그에 비해 트레킹은 수평적인 움직임이에요. 북한산을 예를 들면 여러분이 백운대를 올라갔다면 등산을 하신 거고, 북한산 둘레길을 걷는다면 트레킹을 하신 거예요."
항상 저렇게 설명하는데 저 말이 딱 떨어지지는 않는다. 명칭은 둘레길로 불리지만 '악산' 산행을 빰칠 정도로 험준한 코스를 가진 둘레길도 많기 때문이다. 반대로 등산로라고 적혀있지만 길이 순해서 콧노래를 부르며 걷는 구간도 있다.
2007년 8월, 제주 올레길 1코스가 개통했다. 이후 지리산 둘레길, 북한산 둘레길 같은 도보여행길이 지자체나 공공단체 등에 의해 속속 등장하게 된다. 2010년을 전후로 해서 우리사회는 도보여행 열풍에 빠져든다.
그 즈음에 우리는 트레킹(trekking)이라는 그 이전에는 그 존재유무조차도 잘 몰랐던 낯선 단어를 마주하게 됐다. 낯설었지만 당시 활활 타오르고 있던 도보여행의 열풍을 따라 ‘트레킹’이라는 이름 석 자도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것도 그냥 액면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접두사까지 붙여서 사용했다. 역사트레킹, 숲길트레킹, 봄꽃트레킹 등등...
이후 '트레킹'이란 명칭은 이제 우리에게 '등산'이란 단어만큼이나 친숙해진 말이 됐다. 하지만 트레킹이란 말은 자주 입에 올려도 그 어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아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은 듯싶다. 또한 팩트가 어긋난 정보가 통용되어 개념 자체가 꼬여버리는 현상까지 보인다.
1. 남아프리카 원주민인 보어인들이 소달구지를 타고 정처없이 집단 이주한 데서 유래
2. 등반과 하이킹(hiking)의 중간 형태
3. 산의 높이를 기준으로 5,000m 이상은 등반, 그 이하는 트레킹으로 구분
위에 언급된 내용들은 백과사전에 나열된 트레킹에 대한 개념들을 정리한 것이다. 일단 마지막 ‘산의 높이를 기준으로 5,000m 이상은 등반, 그 이하는 트레킹’이라는 문구는 우리나라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백두산이 해발 2,744미터이고, 한라산이 1,950미터이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으로 확대를 해도 해발 5000미터 이상의 산을 가진 나라가 몇 곳이나 되겠는가? 해발 5천 미터라는 숫자를 보니, 숨이 턱하고 막힌다. 없던 고산증도 생기는 듯싶다.
1. 남아프리카 원주민인 보어인들이 소달구지를 타고 정처없이 집단 이주한 데서 유래
이제 찬찬히 살펴보자. 결론적으로 말하면 위에 문구는 사실관계가 잘못됐다. 팩트가 틀렸다는 것이다. 여기서 보어(bore)인들은 네덜란드에서 지금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지역으로 이주한 유럽인들을 지칭한다. 부르인이라고도 불렸던 보어인들은 남아프리카 지역의 원주민이 아니라는 뜻이다. 참고로 네덜란드어로 보어(bore)는 ‘농민’을 뜻한다.
* 팜플로냐대평원: 산티아고 순례길
‘역사트레킹 세계사개론’ 시간으로 잠깐 변신해보자. 대항해 초기시절인 1489년, 포르투갈 항해자인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희망봉이라고 불린 케이프 지역(Cape of Good Hope)을 발견한다. 이후 식민지 경영에 뛰어들었던 네덜란드가 케이프 지역을 식민지화 시켰다. 네덜란드 본국에서 동인도 회사가 있던 인도네시아까지 가려면, 중간 기착지였던 케이프 지역 확보가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식민지를 만들려면 사람이 필요했다. 당시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의 주요국들은 종교전쟁으로 인해 큰 혼란에 빠져있었다. 그런 혼돈을 피해 많은 이들이 새로운 땅으로 떠나게 됐는데 보어인들도 그 중 하나였다. 그들은 백인이었고 네덜란드어를 썼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트레킹(trekking)이라는 말도 네덜란드어 'trek(끌기, 이동)'에서 나온 것이다.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케이프 지역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끝단이다. 그곳에서 보어인들은 200여년 동안을 그럭저럭 잘 살고 있었다. 스스로를 아프리카너(Afrikaner)라고 칭하며 모국인 네덜란드하고도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1814년, 그런 보어인들에게 시련이 닥친다. 영국이 케이프 지역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이에 보어인들은 영국인들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북동쪽으로 대규모 이주를 하게 된다. ‘농민’이라고 불리던 이들이 갑자기 ‘소달구지를 타고 정처없이 집단 이주’를 하게 된 것이다. 정착민들이 하루아침에 유목민(노마드)가 된 것이다. 이를 두고 남아프리카의 역사에서는 그레이트 트렉(great trek)이라고 칭한다.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무거운 발걸음을 했던 보어인들의 ‘trek’이 트레킹(trekking)의 어원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트레킹이라는 용어를 주로 낭만적이고 경쾌한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그 어원에는 고단함이 묻어 있는 것이다.
* 보어전쟁시 남아프리카: 1899년 경, 보어전쟁 당시의 남아프리카의 상황. 맨 왼쪽 하단에 케이프타운 인근에 희망봉이 있다. 보어인들은 케이프타운에서 그레이트 트렉(great trek)을 하여 동북쪽에 오렌지자유국(orange free state)과 트란스발(transvaal)공화국을 세우게 된다.
그렇게 지금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북동쪽으로 이주를 한 보어인들은 오렌지 자유국과 트란스발 공화국이라는 국가들을 세운다. 이후 이들 보어인 국가지역에서 대규모 금광이 발견됐고, 이를 두고 보어인 국가들과 영국은 극심한 갈등을 겪게 된다. 이후 전쟁까지 발발하는데 그것이 바로 약 3년 간 진행된 보어전쟁(1899~1902년)이다.
아직도 트레킹의 어원과 관련된 설명 중에는 보어인들을 남아프리카 원주민으로 잘못 설명한 경우가 많이 보인다. 남아프리카의 원주민은 흑인인 줄루족인데도 보어인들을 원주민으로 잘못 지칭한 것이다. 그 설명대로 하자면 넬슨 만델라도 보어인이 된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때문에 온갖 박해를 받은 넬슨 만델라가 보어인이 되는 것이다. 보어인들은 아파르트헤이트를 정책을 만든 장본인들이었다.
보어인에 대한 설명이 잘못되다 보니, 나머지 사실들도 뒤죽박죽이 된 것이다. 참고로 만델라는 줄루족이 아닌 템부족 출신이다. 줄루족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다수 종족이다.
*** 다음편에는 하이킹, 트레킹, 트레일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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