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속는 거야.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얼마 전 모 아이돌의 스캔들이 났다. 여러 장면이 찍혔지만 그중 유난히 눈에 띄는 사진은 남자 친구의 집에서 분리수거할 물건들을 들고 나오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아주 살림을 차린 모양이라며 친구와 우스갯소리를 했다. 저렇게 헌신해봐야 헤어지고 나면 아무 소용없을 거라 했고 친구도 동의했다.
그러다 문득, 몇 년 전 Y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니 언니! 제 친구가 남자 친구가 생긴 지 얼마 안 됐거든요? 근데 한 달 전부터 계속 보쌈을 해달라고 그랬대요."
"사 먹는 거 말고 해 달라고? 왜?"
"모르겠어요. 사 먹자고 해도 싫다 그랬다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제 친구가 해줬대요."
"이 삼복더위에?"
"네!"
"남자 친구한테 족발 해달라고 노래 부르라 해. 근데 연애가 그렇더라. 그 안에 빠져있으면 잘 몰라. 만약에 나도 남자 친구가 해달라고 했으면 해 줬을 걸? 아마 돼지고기랑 소고기에서 온갖 좋은 부위란 부위는 다 찾을 거고 월계수 잎이니 된장이니 풍미를 낼 수 있는 재료들도 다 준비했을 거야."
몇 번의 연애를 하면서, 아무리 상대방에게 잘해줘 봐야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 부질없다는 걸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없는 게 사랑이라는 것 또한 깨닫게 됐다.
그럼 나는 지금 또 다른 사랑을 하고 있는 건가.
어제 브런치 메인에 뜬 글을 보면서, 내심 후배들에게 이런 나를 '당연히' 이해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너희들에게 이만큼 해주고 있으니, 응당 너희도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것이 말이든 행동이든. 문제는 기대한 만큼 마음이 돌아오지 않을 때였다. 그리고 지금이 그렇다. 아무리 잘해주고 아껴줘 봤자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일종의 현타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S 선배에게 묻고 싶어 졌다. 젊은 나이에 씨디가 처음 됐을 때 나와 같은 기분이었는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씨디로 지내면서 얼마나 많이 속고 다치고 힘들었는지, 혹시 나에게도 그런 감정이 있었는지,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당신도 그러셨는지, 그래서 지금 이 복잡하고 뒤엉킨 감정들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는지, 그렇다면 또 아무렇지 않게 그들을 다시 사랑하게 되는지 말이다.
한번 잔소리하고 나면 뒤끝 없는 내가 이번만큼은 꽤 분노가 오래간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요새 내가 유독 예민했나 싶다가도 아니, 다시 생각해도 충분히 화날만했어로 결론이 난다. 그렇지만 계속 생각은 돌고 돈다.
다 그런 거라고 했다. 알면서도 속고, 알면서도 빠지는 것. 불가항력이지만 아이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