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저런 열정이 부러워."
신사동 바에서 27살의 여자를 만났다. 큰 눈의 예쁜 얼굴을 가진 그녀는 이야기를 할 줄도, 들을 줄도 알았다. 연극영화학 전공이라던 그녀는 사실 배우를 준비했었노라 털어놓았다. 3년 계약이었으나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도장을 찍은 탓에 제대로 된 활동도 하지 못하고 끝났다고 했다. 지금은 아카데미를 다니며 쇼호스트나 크리에이터가 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했다. 친구와 나의 리액션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환한 표정으로 자신이 공부하고 있는 자료들을 꺼내보였다. 여러 장의 A4와 노트에 빼곡하게 적힌 그녀의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나도 예전엔 저런 열정이 있었는데..."
평소처럼 푹 잠들지 못하고 깼던 어느 밤, 문득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카피라이터가 되어 겨우 110만 원 월급을 받고도, 야근과 철야에 찌들어 하혈을 몇 번이나 겪고도, 새벽녘 침대에 몸을 던지며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겠구나라는 생각을 수없이 하면서도, 위염과 두통을 달고 살아도, 낮에서 밤까지 평일에서 주말까지 내가 이 일에 매달리는 이유가 고작 '좋아서'라니.
이상하게 그 새벽녘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다시 생각해봐도 이 보다 명확한 이유는 없었다. 내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좋아하니까 견디고 좋아하니까 이겨내고 좋아하니까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 밖에서 '워크 라이프 밸런스'라는 이야기를 할 때도 나는 동의하지 못했다. 어쩐지 자신들의 상황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단어로만 느껴질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많은 것이 변하듯이 이 단어조차 변질이 되곤 했는데, 워라밸이라는 그럴싸한 단어를 앞세워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들을 종종 목격하게 된 것이다. 더 이상 치열하게 살지 말고 이젠 그만 좀 쉬자거나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의 글이 너무 많아졌다. 그래서인지 워라밸 같은 건 생각지도 못하고 나처럼 일에 미쳐 살거나 매달려 사는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쯤으로 여겨지는 것만 같았다.
열심히 사는 게 뭐 어때서?
그런데 내가 정말 열심히 살았던 걸까? 수고했으니 이제 그만 쉬어도 된다는 말에 반발심까지 생겨날 만큼? 생각해보면 일 밖의 삶은 또 달랐던 것 같다. 열심히 '일했다'라고 할 수는 있었지만 열심히 '살았'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일이 내 인생의 대부분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전부는 아닌데, 그 일이 일상과 일생을 책임져주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그랬을까.
이런 생각은 최근의 사건으로 더 흔들리고 말았다. 지난 10년 동안 아등바등거리며 워커홀릭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웃어왔는데, 하루아침에 이렇게 자리를 잃어버릴 거라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졌다. 용쓰고 애쓰고 쓸 수 있는 건 다 쓰며 살아왔던 것 같은데 그에 대한 결말이 고작 이런 허무함이라면 나도 그냥 '적당히' 살 걸.
그래, 도대체 왜 열심히 일해야 하지?
타의에 의해 갑자기 열심히 일하지 않게 되었지만 -열심히 일할 수 없게 되었지만- 차라리 잘 됐다 싶다. 계속해서 열심히 더 열심히를 외쳐왔다면 언젠가 과부하가 걸려 터져도 무언가 터지고 말았을 것이었다. 게다가 어차피 '대충 DNA'는 애초에 내 몸에 없어서 다시 회사에 들어가게 되면, 이전처럼 또 열심히 '일하게 될 것'을 안다. 그러니 당분간 쉬길 잘했다 싶다.
이제는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열심히 사는 법을 알아가 보려고 한다. 저녁이 있는 삶과 취미가 있는 삶, 일 대신 사람이 있는 삶도 조금은 꿈꿔보려고 한다. 먼 미래의 계획처럼 두고두고 생각해왔던 일을 하나씩 도전해보고 시작해보려고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좋아하는 일에게 이렇게 내팽개쳐지면, 그때는 두 번 다시 회복하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계속 열심히 일하고 싶고 열심히 살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