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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ldred Sep 26. 2019

팀장님이 언니는 아니잖아요

"우리 팀장은 진짜 하나만 했으면 좋겠어. 언니, 팀장, 여성리더, 친구... 너무 많은 롤을 가지고 싶어 해."


좋은 선배란 어떤 선배일까.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술이나 밥도 잘 사 주는 언니, 누나가 좋은 선배일까. 중요한 업무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세상 누구보다 카리스마 있게 판단하고 이끌어가는 믿음직한 리더가 좋은 선배일까. 아니면 후배의 실수를 너그럽게 이해해주고 책임져주는 사람이 좋은 선배일까. 이 모든 역할을 무리 없이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정말 좋은 선배인 걸까.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의견을 강요하지 않는 선배가 좋은 선배라고 생각했었다. 무조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그런 선배 말이다. 그동안 봐왔던, 내가 좋아했던 선배들의 모습이 그러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처음 내가 선배가 되고 팀장이 되었을 때 그렸던 모습도 그랬다. 그야말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다.


그들보다 경험이 많을 뿐, 내가 늘 옳으리란 법은 없었다. 내가 정리하고 밀어붙인 생각이 틀릴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 어디에나 있었다. 특히나 광고에 정답이란 게 어디 있나. 그래서인지 가끔씩 망설였던 것 같다. 스스로 완벽하게 확신을 가질 때까지 후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들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과연 그게 옳았던 걸까.


물론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는 중요하다. 그것이 실제 업무에 반영이 되지 않을지언정,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그 의견이 존중받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알아가는 기회니까. 그런데 너무 많은 이야기는 때로 혼란을 일으키는 것 같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그렇다.


광고주 때문에 한참 스트레스받을 때 '어차피 바깥에서 만나면 평범한 아저씨, 아줌마들인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나와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밖에서 만나면 그저 술 좋아하는 키 큰 누나, 체력 좋은 언니 정도 아니겠는가. 그러니 그렇게 정을 줄 필요도, 지나치게 이해하거나 배려해줄 이유도 없었다. 그저 함께 일하는 동안 책임감 있게 주어진 업무만 잘 해결하면 되는 거였다. 좋은 선배에 대한 고민 같은 건 집어치우고 말이다.


말이 참 쉽다.


솔직히 회사 안에선 일 잘하고 엄격한 팀장이고 싶고, 회사 밖에선 친근하고 허당끼 넘치는 언니나 누나이고 싶다. 결국 다 하고 싶다는 소리다. 하지만 모두가 알 듯이 그런 선배란, 유니콘처럼 알고는 있지만 본 적은 없는 존재다. 바란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욕심이기도 하다. 게다가 모든 역할을 다 해내는 선배를 하려다간 자칫 이도 저도 아닌 이상한 사람이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싶다가도, 그래 봐야 회사 사람인데 뭘 이렇게까지 생각하나 싶다. 사람이 이렇게 우유부단할 수가 없다.


안 좋은 선배란 싸가지없는 선배도 아니고 돈 없는 선배도 아니고 실력 없는 선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럼 좋은 선배란 어떤 선배일까. 분명 안 좋은 선배에 대한 이야기는 차고 넘칠 만큼 많은데, 좋은 선배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좋은 선배에 대한 기준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걸까. 좋은 선배 같은 건 어쩌면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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