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해. 빨리 할 필요도 없어."
15년 만이었다. 오랜만에 잡은 바늘이 낯설고 불편했다. 워낙 손재주가 없는 탓에 모양이 예쁘게 나오지 않을까 시작부터 두려웠다. 아빠에게 유일하게 물려받지 못한 게 손재주였다. 테이블 하나도 뚝딱 만들어내는 아빠와는 달리, 고등학교 가정 시간에 누구나 쉽게 하는 버선 조차도 앞코를 뻥 뚫었던 나였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퇴근하기 몇 시간 전, 우리 팀 아트가 나에게 할 이야기가 있노라며 시간을 내달라고 했다. 아, 올 게 왔구나. 작년부터 여기저기서 오퍼를 받고 있고 흔들리고 있음을 솔직하게 고백했던 아이였다. 그럴 수 있는 연차였고, 그럴 만한 상황이었다. 올 초 3개월 휴직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도, 언젠가는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평생 이 회사에 뼈를 묻을 것도 아니고, 더 큰 회사로 가서 능력을 펼칠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 잘 보내주자고도 마음먹었다. 그런데 막상 현실이 되니 착잡했다. 사람을 또 어디서 구하지?
새로 가는 회사의 CD가 자신이 기대했던 것보다 높은 연봉을 맞춰줬다고 했다. 게다가 올해 촬영을 몇 건이나 했냐 물으며 내 밑에 2~3년 있으면 그보다 더 많은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줄 테니 자기만 믿으라고 했단다. 이 아이는 도대체 나한테 그런 얘기까지 굳이 왜 한 걸까. 나중에서야 아차 싶었는지 말실수한 것 같다고 죄송하다고 했다.
가을바람에 채 씻기지도 않을 마음을 들고 퇴근하는 길, 뭘로 마음을 달랠까 고민하고 있는데 S에게서 연락이 왔다.
"언니도 뜨개질하러 같이 안 가실래요?"
S는 요즘 쁘띠 목도리를 만들고 있었다. 같은 걸로 할까 하다가 목도리는 평소에 하지 않으니까 담요를 만들어보겠노라 했다. 망고 실과 대바늘로 하는 거니까 쉽게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가장 좋아하는 빨간색 실을 고르고 선생님이 만들어준 서른네 개의 코를 끼웠다 실을 돌렸다를 반복했다. 역시 생각을 없애주는 데는 단순 노동이 정답이었다.
처음엔 논현동에, 술집과 음식점이 즐비한 영동시장 근처에 웬 뜨개질 집인가 싶었다. 어울리지 않는 위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참을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다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친구도 여기 자주 왔었어. 소식 듣고 나서 처음엔 안 믿었다니까? 나라도 연락 자주 할 걸, 얘기 좀 더 들어줄 걸 하는 생각 들더라고."
선생님은 최근에 있었던 안타까운 일에 대해 이야기하며 어쩐지 미안해하셨다. 그래, 누군가에게는 시끌벅적한 세상과는 달리 조용하게 숨 쉴만한 작은 공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게 뜨개질 집이었을 것이고.
내 삶이 뜨개질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 만들어 놓은 가이드를 따라 오랜 시간 반복하기만 하면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삶, 빨리 서두르거나 경쟁하지 않아도 꾸준히 하기만 하면 언젠가는 끝에 도달하고, 행여나 중간에 실수를 하더라도 고칠 방법이 있는 그런 삶 말이다.
다음번엔 코스터를 만들까, 과감하게 옷을 만들까. 뜨개질을 하는 동안에 하는 고민이라고는 겨우 이게 다라니. 지금 내가 가진 고민의 크기도 이 정도면 좋으련만. 정신없이 하다 보니 어느새 실 한 덩어리를 다 썼다. 이제 두 번째 실을 이을 차례다.
일단 해보자. 계속하다 보면 또 다른 결과가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