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럴 줄 알았지!"
소설 수업을 듣는 것만큼이나 몇 년째 고민했던 일이 있었다. 바로 캘리그래피 배우기. 한때 유행처럼 번지면서 너나 할 것 없이 배우는 게 캘리그래피였다. 펜과 종이만 있으면 누구나 시작할 수 있었고 얼마 안돼 금방 멋진 결과를 낼 수 있는 좋은 취미였다. 나 역시 그 흐름을 따라가고자 했으나 그저 마음만 먹고 언젠간 하겠지 하며 미루다가 드디어 배우기로 했다.
우선은 원데이 클래스를 찾아갔다. 가로획과 세로획 긋기부터 필압을 조절하며 곡선을 그리는 법을 배웠다. 선생님이 먼저 시범을 보이고 나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그대로 그리기만 하면 됐다. 평소에도 글씨를 쓸 때 힘을 주는 편이라 쉽지 않을 거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아니, 그런데 내 손인데 왜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거지? 분명 아래로 내려올 때는 괜찮았는데 펜촉을 굴려 위로 올라갈 때마다 드드드득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잉크가 모자라나 싶어 여러 번 펜촉을 잉크에 담가봤지만 사이드 브레이크가 걸린 자동차처럼 여전히 덜컹거렸다.
"힘을 더 빼셔야 돼요."
수강생 사이를 오가며 봐주던 선생님이 잔뜩 힘이 들어간 나에게 말했다. 힘을 뺀다고 뺀 것 같은데 도대체 얼마나 빼야 하는 걸까. 몇 번의 버벅거림 끝에, 결국 내 손을 내 손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누군가의 조정에 의해 움직이는 것처럼 스르륵 팔과 손을 이동시켜야만 자연스러운 곡선이 만들어진다는 걸 깨닫게 됐다.
앞으로 캘리그래피가 쉽지는 않겠구나.
2시간의 짧은 배움을 뒤로하고 간 곳은 조주기능사 실기반이었다. 캘리그래피만큼은 아니었지만 음주인으로서 꼭 한번 배워보고 싶었던 일이었다. 간략한 이론 설명 뒤에 칵테일 조주 기법 실습이 있었는데, 바 스푼을 잡고 얼음물이 채워진 믹싱 글라스를 시계방향으로 돌리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어차피 단 시간에 익숙해지지도 않을뿐더러 실기 시험 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해서 감점이 될 일은 잘 없다고 했다. 그래? 그렇다면 해볼 만하겠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 보다. 팔꿈치는 움직이지 않아야 하고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손목의 가벼운 스냅만을 이용해서 바 스푼을 돌리는 작업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무언가를 해야 함과 동시에 무언가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오른쪽 어깨부터 팔까지 마비가 오는 것 같았다. 캘리그래피를 배울 때처럼 내 손이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될까 싶었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문제였다.
1시 방향에서 7시 방향으로 올 때는 중지의 힘으로 당기고, 7시 방향에서 다시 1시 방향으로 갈 때는 약지의 힘으로 밀어내야 했다. 당기는 건 쉬웠다. 그런데, 원래 이렇게 약지에 힘이 안 들어가는 거였나. 원하는 만큼 힘이 들어가지도, 그래서 잘 밀리지도 않으니까 다시 손목부터 팔꿈치, 어깨까지 힘이 들어갔다.
사실 요즘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내 힘이 미치치 않는 곳에서 수만 가지 일들이 엉망진창이 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함께 휘둘리면서 계속 지쳐갔다. 문제는 내가 그 안에서도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는 거였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하고 싶지도 않아졌다. 흔히들 하는 말처럼 인생에 한 번쯤은 꼭 찾아온다는 노잼병인가 싶었지만, 그보다는 허무함에 가까웠다. 이상했다.
딴에는 돌파구로 생각한 게, 좋아하는 다른 일에 힘을 쏟는 거였다. 그런 의미에서 캘리그래피와 칵테일은 나에게 좋은 배움이 아닐까 싶다. 양쪽 어깨를 바짝 올리고 두 주먹 불끈 쥐며 살아왔던 내게 힘내지 말라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라고 얘기해줄 것만 같아서 말이다.
당분간은 여전히 뻣뻣한 자세로 글씨를 쓰고 바 스푼을 엉망으로 휘젓겠지만 모든 배움이 그렇듯이, 힘내지 않는 것도 연습하다 보면 되지 않을까. 뭐, 아니면 어쩔 수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