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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이미 우리를 떠나가고 있었네"

6월 6일의 제잘제잘

by coldred

제잘제잘은 '제대로 잘 만든 말을 제대로 잘 전하고 싶은 마음'이 담긴 뉴스레터입니다. 간판, 광고, 책, 영화는 물론 전단지, 밈, 명언 등 일상 속에서 보고 듣는 모든 문장을 수집하고 그 문장이 건드린 감정과 이야기를 함께 나눕니다. 때로는 광고처럼 때로는 일기처럼, 말 많은 시대에 쉽게 잊히지 않고 오래도록 곁에 머무는 문장을 전합니다.


김동률의 ‘뒷모습’이라는 노래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사랑은 이미 우리를 떠나가고 있었네. 당신이 나의 곁에서 떠나버리기 전부터.


가사 한 줄 한 줄이 시작부터 끝까지 슬픕니다. 특히 반도네온 연주 소리 때문인지, 더 처연하게 느껴지더라구요. 굳이 ‘사랑의 유효기간’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아도 우리는 압니다. 상대방의 감정이 서서히 식어가는 걸, 관계가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다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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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5년 만에 다시 만난 사람, 이제는 어른이니까 이번엔 결혼까지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사람. 그와 함께 강릉에 여행을 갔던 일이 기억납니다.


사실 저는 해산물을 잘 못 먹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좋아하니 횟집도 종종 갔죠. 그날도 어렵게 예약한 유명한 횟집에 갔습니다. 식당 안을 둘러보다가 머리가 희끗해진 노부부가 나란히 식사 중인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뭉클했습니다. 그래서 말했죠.


"우리도 나이 들어서 이런데 자주 오자."


그는 대답 대신 웃기만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순간 알았던 것 같아요. 그가 그리는 미래 속에 나는 없다는 걸요. 사소한 일들이 차곡차곡 쌓이다 결국 우리는 싸우고 헤어졌습니다. 이별이 하루아침에 찾아오는 건 아니라는 걸 그때 확실히 알게 되었죠.


그렇게 헤어진 지도 벌써 2년이 흘렀습니다. 여전히 꿈에서 만나고 길을 걷다가도 문득 떠오르지만, 그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그걸로 충분했다고, 그걸로 끝이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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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죠. 바로 이민기, 김민희 주연의 <연애의 온도>입니다. 어떤 기회로 이 영화를 보게 됐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재회한 커플이 잘 될 확률이 고작 3%라는 걸 알면서도 다시 시작했던 두 사람이 결국 비 오는 날 언성을 높이며 싸우던 장면은 유독 생각이 납니다. 한번 금이 갔던 관계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지나치게 조심했던 거죠. 솔직하지 못했던 부분도 있구요.


2년을 넘게 사귀었던 사람이었는데, 다시 만난 그 사람은 가끔씩 낯설었습니다. 이런 모습이 있었나? 싶었달까요. 굉장히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어쩌면 그런 모습을 좋아했는지도 모르겠어요) 30대 후반의 그 사람은 그저 하루에 충실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교수가 되기 위해 준비하던 대학원도 석사까지만 하고 그만뒀다고 했습니다. 그 일로 정말 믿고 따르던 교수님과 사이가 틀어졌다고 했습니다. 교수가 될 거라는 보장도, 된다고 해서 잘 될 거라는 확신도 없어서 그만뒀다고 했죠. 문득 이 글을 쓰면서, 그때의 저는 그에게 왜 더 자세하게 물어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조심스러웠던 걸 수도 있고 내가 모르는 그의 이면, 불안이라던가 걱정이라던가 하는 것들을 외면한 걸 수도 있겠다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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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처럼 그는 셔터맨이 되겠다고 했어요. 그러면 저는 그러기 위해서 '내가 빨리 임원이 되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얼마를 벌 수 있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었죠. 맞장구를 친 거죠. 한 번씩 제가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는 '팀장님이시잖아요. 임원 하셔야죠.'라며 버티고 견뎌야 한다고 했어요. 가끔은 어이없어하며 웃었고, 가끔은 속상해했습니다.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요. 결국 그룹장이 됐고 적지 않은 연봉을 받으며, 어쩌면 그를 셔터맨까지는 아니었어도 마음 편하게 직장을 다니게 해 줄 수도 있었을지 모르는데. 어쨌거나, 이제는 헤어져버렸죠.


노래 2절엔 이런 가사도 나옵니다.


사랑은 이미 우리를 잊어버리려 하네. 당신이 그 기억들을 전부 잊기도 전에.


그와의 기억을 완전히 잊을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분명한 건, 그 기억들도 언젠가는 조금씩 희미해질 거란 사실입니다. 기억이 잊으려고 애쓴다고 잊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살아내다 보면 다른 걱정들에 묻히고 다른 풍경들에 덮여 자연스럽게 흐려지는 거겠죠. 그러다 문득 어디선가 들려온 노래 한 소절, 지나친 거리의 간판 하나에 다시 선명해지기도 하고요. 그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며 살기로 했습니다. 괜찮겠죠.


<오늘의 문장>

사랑은 이미 우리를 떠나가고 있었네.
당신이 나의 곁에서 떠나버리기 전부터.

– 김동률, <뒷모습>


<오늘의 질문>

1. 이별을 직감했던 순간이 있었나요? 그때 당신은 어떤 마음이었나요?

2. 지금도 가끔 떠오르는, 쉽게 희미해지지 않는 기억이 있나요?

3.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것 같은 사람이 있나요?


<오늘의 추천>

김동률 -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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