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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절에가다 Apr 25. 2024

'바로 지금이 전부'

<어른 공부> 양순자

결국 우리 모두는 사형수야.

<어른 공부> 23쪽



어른이 되기 위한 공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다. 매해 숫자가 하나씩 더해지는 자신의 나이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다름없다. 인생에서 어느 시기부터인지 나이가 든다는 것은 늙는다는 것이고 늙음은 노화와 다름없는 말처럼 느껴진다. 늙는 것을 모두가 거부하는 시대. 늙음은 청춘과 반대어처럼 느껴지고 모두가 청춘이고 싶어 한다. 시들어가고 있는 꽃을 서서히 시들게 만들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기술에 의해 가능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다시 곱씹어 생각해 보면, 내 나이의 숫자가 점차 커진다고 해서 내가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야말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므로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어른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나이를 먹지 않아도 어른이라 할 수 있고, 나이를 먹어도 어른이 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 책의 저자 양순자님은 말한다. 어른 공부를 해야 한다고. 어른이 되는 공부를 평생에 걸쳐 해야 한다고. 나이가 들었다고 모두가 어른은 아니라고.


이 책은 30년간 사형수를 상담하며 어른이 되는 공부를 한 필자가 어른이 되지 못한 우리들에게 건네는 가슴 따뜻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암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향년 73세로 숨을 거둔 인생 선배인 양순자님은 다행스럽게도 쓰신 몇 권의 책 속에서 살아 숨 쉬며 우리를 어른으로 이끈다. 특히나 이 책 <어른 공부>에서는 우리 옆에서 조곤조곤 말씀을 건네는 듯한 문장으로 읽는 이의 마음속 깊이 문장들이 들어와 자리한다. '인생 공부는 하루하루 내가 걸어가는 발자취의 연속이야. 삐뚤어지게 걸으면 발자국이 삐뚤어지게 박히지. 바르게 걸으면 바르게 박히고.'라는 따스한 조언들이 책 속에 가득하다.


어른이 되기 위한 공부에서 이 공부의 목표가 되는 '어른'은 어떤 모습일까. 필자는 말한다. 나빠지는 눈 대신에 '마음의 눈'을 갖게 되고, 복잡다난한 세상사에 흔들림 없이 초연해지고, 오늘 살아 숨 쉬는 하루하루를 감사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사람이 어른의 모습은 아닐까 하고. '마음의 눈'은 지혜나 분별력이라고 할 수 있고, 이것은 지식과 달리 자신이 경험하는 만큼 쌓이는 것이라 말한다. 이런 일 저런 일도 모두 다 그럴 수 있다로 수용하고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 차이라는 사실을 경험으로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 아닐까.




'부모라는 토양'


어른 공부에서 빠지지 않을 부분이 부모와 자식 관계에 대한 공부일지도 모른다. 자식이 없다면 내 부모와 나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도 어른 되는 과정에 필요해 보인다. 저자 양순자님은 이 책을 쓸 당시 40대인 두 딸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 들려준다. '자식은 부모라는 토양이 중요해'라며 부모의 훌륭한 말보다 뜨거운 가슴을 강조한다. 아이가 힘들어할 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건 그 어떤 말보다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뜨거운 가슴이면 된다고. 부모는 '언제나 네 편'이라는 든든함을 몸으로 알려줄 수 있게 아이를 무조건 품에 안아주면 된다고. 말이 아닌 마음.


역설적이지만 저자는 또한 '자식에게 해방되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자식을 무조건 품에 안아주면서도 나 스스로 자식에게 해방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즉 자식에게 해방된다는 말은 부모 자신의 삶을 뜨겁게 사는 것이고, 그것은 다름 아닌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 '하라 하라'가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고, '돼라 돼라'가 아니라 내가 되는 것이다. '참 나'를 찾아가는 것이 부모가 본이 되는 길이기도 하고 그것은 어른이 되는 길이기도 하다. 결국 '나는 누구인가'를 매 순간 인지하고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 어른이 되는 길이기도 하다. 그 과정 안에 부모로서의 역할, 혹은 자식으로서의 역할 혹은 두 가지 모두의 역할이 존재하면서. 나는 어떤 부모인가. 나는 어떤 자식인가. 나는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 나는 어떤 자식이 될 것인가.




결국 우리 모두는 사형수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냐고?...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이 매일 일어나지. 그러니 항상 겸허한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거야. 고통과 아픔도 영원하지 않고, 행복과 즐거움도 영원하지 않아." (181쪽)


사형제도가 폐지되기 전 저자는 30년간 사형수들을 상담하는 일을 해왔다. 자신의 죽음이 확정된 상태, 하지만 죽음의 시기는 미정인 상태, 그 불안감을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형수들의 삶을 옆에서 고스란히 지켜본다. 내일이 그날일 수도 있고, 당장 지금이 그날일 수도 있다. 내 삶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알지 못한다. 살아 숨 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의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을까. 그들이 저지른 죗값을 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올지 모르는 죽음을 앞둔 한 존재의 심연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의 마음이 책 속에 묻어 있다.


지금 이 순간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사람과 지금 이 순간 죽을지라도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고 아름답게 여겨지도록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은 분명 다를 것이다. 사형수가 아니더라도, 이와 같은 마음가짐의 차이는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삶의 모습을 다르게 한다.


저자는 말한다. "결국 우리 모두는 사형수다"라고. 우리 인간은 죽음을 앞둔 사형수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죽음은 필연이나 그 운명의 시기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숨 쉬고 있는 우리는 모두 사형수와 마찬가지다. 삶과 죽음은 손을 맞잡고 있고, 그래서 우리는 죽음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오늘 숨 쉬고 있지만 내일 숨 쉬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제 숨 쉬었지만 오늘 숨 쉬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이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는 듯 살아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느낄 겨를 없이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며 살아가고 있다. 언제나 불행한 현재 그리고 언젠가는 행복만 있을 미래. 지금 이 순간 불행한 나 그리고 언젠가는 행복에 겨울 나.


 '바로 지금이 언제나 전부다' (209쪽) 라는 말이 맴돈다. 바로 지금은 내일을 위해 희생만 해야 하는 지금 이 순간이 아니다. 온전한 전부가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미루지 말자. 오늘도 행복하고 내일도 행복한 일을 찾아 하루하루 겸허하게 살아가자. 온전하게 행복한 지금을 살아간다면 죽음이 눈앞에 다가와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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