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피아절에가다 May 13. 2024

사랑을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닐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그녀는 그런 안정감에서 서글픈 행복을 끌어냈다"

17쪽



폴과 로제, 둘은 사랑일까?


폴과 로제. 로제와 폴. 두 남녀 주인공의 이름이다. 이름에도 성별이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이름으로 성별을 얼추 가늠할 수 있으니 이름에 성별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회적 통념을 이 소설은 거스르고 있는 것일까. 소설의 도입 부분에서부터 혼란스럽다. 폴이 남자, 로제가 여자라고 생각했던 이름에 대한 내 고정관념이 시작부터 무참히 깨지는 순간을 만난다. 글을 쓰는 지금도 여전히 뇌에 지각변동을 맞은 듯 혼란스럽지만, 작가의 의도가 숨은 것인지 혹은 프랑스에서는 남녀 이름을 혼용해서 쓰기도 하는지 소설 시작부터 물음표가 떠다녔다.


폴과 로제는 꽤 오랜 기간 만남을 유지하고 있는 소위 오래된 커플이다. 5년 이상 만나고 있으니 내가 나를 아는 만큼 상대방 또한 나를 그만큼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축적된 시간은 서로가 서로를 알게 할 뿐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맞춰지게 한다. 나에게 맞는 너, 너에게 맞는 나를 서로 조율하게 하는 힘은 함께 하는 시간에서 나오므로. 그리고 그 시간의 근원은 두 사람의 사랑에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은 깨지지 않고 두 사람을 시간의 흐름에 내맡길 수 있게 된다.


그 사랑의 종착역이 어딜까. 어디쯤이 사랑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을까. 시작이 있으니 끝이 있다는 것은 자명한 진리 아닌가. 사랑이라는 것도 그 끝은 두 가지 일뿐. 사랑을 이어가는 것 아니면 사랑을 마치는 것. 가정을 이뤄 평생 함께 하는 것은 사랑을 이어가는 것일까 아니면 사랑을 마치는 것일까. 결혼 제도 안에서 두 사람은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고 스스로를 기만하고 사랑이라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소설의 두 남녀 폴과 로제는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지는 않지만 오랜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 사랑의 끝은 또 다른 사랑의 시작임을 인지하면서.


하지만 로제는 오랜 연인 폴을 놔두고 자주 다른 여자와 가벼운 잠자리를 가진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대체할 수 없는 사랑은 폴이라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간간이 외도를 한다. 오랜 사랑을 이어갈 수 있는 나름의 방법처럼. 폴은 그런 로제의 방법을 아는 듯하면서도 그 사랑을 이어간다. 자주 공허하고 고독하다. 오랜 사랑을 잘 이어갈 수 있기 위해서 그녀는 고통스러운 고독을 선택한다.


"어쩌면 자신이 그들의 사랑을 위해 육 년 전부터 기울여 온 노력, 그 고통스럽고 끊임없는 노력이 행복보다 더 소중해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었고, 바로 자존심이 그녀 안에서 시련을 양식으로 삼아,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로제를 자신의 주인으로 선택하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로제는 그녀에게서 언제나 빠져나갔다. 이 애매한 싸움이야말로 그녀의 존재 이유였다."(147쪽)


사랑의 역학 관계라고 해야 할까. 오랜 사랑의 비대칭적이고 비정상적인 역학 관계. 사랑이 오래 지속될수록 사랑은 형태도 형식도 형질도 변모되고 변질된다. 사랑의 시작이 어렴풋할 정도로 희미해진다. 둘의 관계를 지속하게 하는 오랜 시간의 근원인 사랑이 처음의 사랑과 달라져 있다. 그럼에도 너를 배제한 내 삶을 상상할 수 없다는 오랜 시간이 만든 현실이 우리의 사랑은 변하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다는 착각을 서로에게 주입하고, 상대방이 내 삶의 주인처럼 존재 이유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폴과 시몽, 둘은 사랑이었을까?


그러던 어느 날, 폴은 시몽이라는 젊은 남자를 만난다.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 새로운 사랑. 39세의 폴과 25세의 시몽. 무려 14살 차이가 나는 어린 시몽의 구애를 폴은 매번 거부한다. 젊고 생기 넘치고 호리호리한 시몽의 외모는 오히려 폴에게 호기심과 사랑의 경계 사이에서 방황하게 한다. '왜 굳이 나를... '이라는 의심과 저항이 로제와의 오래된 사랑의 권태와 공허감과 뒤섞이면서.


"그는 약간 겁을 먹은 것처럼 보였다. 폴은 그런 그에게 막연한 동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21쪽)


폴과 시몽의 첫 대면. 폴은 시몽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감정은 같은 감정을 알아보는 것일까. 시몽의 묘하게 희미한 태도에 폴은 자신의 모습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을 하고 있음에도 삶이 외롭고 고독한 자신의 모습 같은.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자기 자신의 흔적을 잃어버렸고 결코 그것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가 아직도 갖고 있기는 할까?.... 어쩌면 그녀는 로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여기는 것뿐인지도 몰랐다."(60쪽)


이 소설의 제목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말줄임표로 끝난다. 소설 속에서 이 문장은 시몽이 폴에게 하는 질문이다. 작가는 말줄임표임을 강조했다고 한다. 질문이 아닌 말 줄임. 프랑스인들은 보통 브람스라는 음악가에게 호의적이지 않기에 브람스를 좋아하냐는 질문은 어떤 울림이 있는 의도적인 질문이라고 한다. 시몽이 폴에게 브람스 곡을 연주하는 연주회에 같이 가자고 부탁하는 장면은 분명 이 소설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보인다. 그 질문으로 인해 폴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한 남자에게만, 그 남자와의 관계에만 갇혀 있던 삶에서 벗어나 자아를 회복하는 것,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로제와의 사랑이 실은 자신이 로제가 아닌 사랑 자체를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회의를 품게 되기도 하고. 그러면서 새로운 사랑인 시몽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사랑을 사랑하더라도…


시몽과 사랑을 시작하지만, 폴은 여전히 사랑을 잊지 못한다. 시몽과 사랑을 하지만 이 사랑도 뭔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전 사랑의 대체제로 작용하는 것인지, 내가 주는 사랑이 어린 남자에게 보살핌이나 돌봄의 영역에서 머무르는 것은 아닌지, 이 사랑 또한 외롭고 모호하다. 이전 사랑의 끝맺음의 수단으로 새로운 사랑의 시작은 생각만큼 행복하지 않다.


"익숙한 그의 체취와 담배 냄새를 들이마시자 구원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울러 길을 잃은 기분도."(156쪽)


폴과 로제는 재회한다. 익숙한 냄새에 심지어 구원을 받은 듯하다. 그리고 다시 길을 잃은 기분도 느낀다. 이 징글징글한 케케묵은 사랑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다. 익숙함이 안정감을 주고 편안함을 준다. 낯선 사랑에 잠시 한눈을 팔았지만, 권태에 가까운 익숙함이 오히려 편안한 상태를 제공한다. 밤마다 외로움에 고독했던 그때를 망각하고서.


재회하기로 한 그날 저녁, 로제의 전화로 이 소설은 끝난다.


"미안해. 일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해야 해. 좀 늦을 것 같은데....."




이전 27화 '바로 지금이 전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