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도 너무 덥다.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반찬 한두 가지 만들다보면 숨이 턱턱 막힌다. 요리를 하다말고 선풍기를 강으로 해놓고 잠시 창밖을 바라보며 열기를 식혀 본다. 문득 빵공장 앞에 땀범벅이 된 채 기진맥진해 앉아 있던 직원이 떠올랐다.
여름 어느 날, 직원들 점심 식사 교대를 위해 가게로 가는데 소나무 그늘 아래 셔츠가 흠뻑 젖은 채 넋을 놓고 앉아있는 사람이 있다. 자세히 보니 며칠 전 새로 온 직원이다.
“아니 왜 그렇게 옷이 젖었어요?”
불쌍한 강아지 같은 얼굴로 바라보던 그는 날 어떻게 생각했을까?
빵빵하게 에어컨을 가동하는 매장에만 있던 나는 한 여름 빵공장의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 잘 몰랐다. 가스레인지 하나 켠 것만으로도 이렇게 더운데 오븐 전체에 불을 켜고 빵을 만드는 공장의 열기는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추운 겨울에는 난방기 없이도 따뜻하지만 여름에는 생지옥이 따로 없다.
무더운 여름에는 빵을 파는 것도 쉽지 않다. 빵에 곰팡이도 잘 나고 금방 맛이 간다. 당일 만든 빵이라도 보관을 잘못하면 다음 날 바로 상하기 때문에 고객들이 빵을 들고 와 항의하는 일이 많았다.
무엇보다 골치가 아팠던 것은 나방과 하루살이 같은 불청객들이다. 가게가 안양천 근처이고 나무가 많다보니 매미뿐만 아니라 벌레들이 많았다. 게다가 한밤중에 대낮처럼 불을 밝히고 영업을 하니 물 만난 고기처럼 하루살이들이 떼로 몰려왔다.
이름은 잘 모르지만 큰 개미에 날개가 달린 곤충이 나를 가장 힘들게 했다. 마치 재난 영화에서 본 듯한 장면이 펼쳐졌다. 대낮에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던 것이 밤에 불만 켜놓으면 갑자기 몰려와서는 그 넓은 유리창을 새까맣게 뒤덮는 것이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을 보면 앞이 캄캄하고 소름이 끼쳤다. 아무리 약을 뿌리고 빗자루로 털어내 보지만 이내 한 가득 달라붙었다.
게다가 손님이 문만 열면 와르르 가게 안으로 날아들어 빵에 앉아 버리는 통에 포장을 했다 해도 손님들은 빵을 고르다 말고 나가버렸다. 문 밖에 전기벌레 퇴치기를 2 대나 달고 전기 파리채까지 들고 있어도 속수무책이었다. 서울에서 그렇게 벌레 퇴치기까지 달아둔 빵집이 있을까? 지나가던 사람들은 “찍찍”하며 죽는 벌레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마치 더러운 오물 보듯 우리 가게 옆을 지나갔다. 나도 그 소리가 얼마나 크고 짜릿한지 몸이 움찔거렸다.
벌레하면 바퀴벌레도 빼놓을 수 없다. 깨끗하게 단장하고 개점을 했던 가게는 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바퀴벌레의 천국이 되었다. 아무리 청소를 해도 밀가루 등 먹거리가 많으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보기에도 징그러운 놈들이 곳곳에서 나타나는 바람에 한동안 골머리를 앓았다.
몇 달 후 세스코라는 업체를 알아내 맡기고 나니 귀신처럼 사라져 버렸다. 바퀴벌레 때문에 큰 곤욕을 치렀던 후라 다달이 내는 회비가 아깝기는커녕 고마워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또 하나의 불청객은 바로 쥐다. 어릴 때 쥐를 본 적이 있긴 하지만 아파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쥐가 가게에 나타났다. 찍찍이며 쥐약을 여기저기 놓고 잡으면 또 생기고 잡으면 또 생겨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보통 쥐는 환한 시간에는 어디엔가 숨어있어 볼 수가 없는데 쥐약을 먹은 쥐는 마치 술에 취한 듯 사람들 앞으로 기어 나온다. 하루는 막 빵 값을 계산하고 있는데 한 놈이 어슬렁어슬렁 계산대 앞으로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혹시라도 손님이 볼 세라 그녀의 앞을 막아보지만 그날따라 손님은 이야기보따리를 길게 늘어놓았다.
무엇을 먹었는지 살도 통통하게 오른 녀석은 날 쳐다보며 비웃는 것만 같았다. 혹시라도 손님이 볼까싶어 진땀이 흘렀다. 너무 징그러웠지만 발로 슬쩍 밀어 빵 진열대 아래로 밀어 넣으면 다시 나오고, 또 넣으면 다시 나왔다. 다행히 손님은 눈치를 채지 못하고 돌아갔다.
다시 기어 나온 녀석을 보자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라 찍찍이로 감싸고는 저 멀리에 있는 쓰레기통까지 가서는 냅다 집어던졌다. 많이 아팠는지 찍찍하며 울어대는 소리가 내 뒷덜미를 잡았으나 정신없이 뛰었다. 가게에 돌아와서도 마구 쿵쾅거리는 나의 심장은 쉽게 가라않지 않았고 힘이 풀려버린 다리 때문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어야 했다. 그 후로도 며칠 동안은 나를 원망스럽게 쳐다보던 그 녀석의 눈망울과 아우성치며 울던 소리가 귓가에 맴돌아 많이 힘들었다.
하루는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가게를 지키고 있는데 우당탕탕 가게를 휘젓고 다니는 놈이 있었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빗자루를 들고 추격전을 벌였으나 결국 잡지 못하고 포기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털도 빳빳하고 꼬리가 긴 것이 쥐가 아니라 청솔모 였던 것 같다. 어디에서 살다가 우리 가게까지 들어왔을까? 그 후로 보이지 않은 것을 보면 그 녀석은 혼비백산해서 멀리 도망간 것 같다.
방충망에 날아 든 매미가 귀가 따갑도록 울어 댄다. 7년이나 땅 속에서 살다가 겨우 2주일 동안 세상에 나왔다가 생을 마감한단다. 과연 아파트 땅 아래에는 얼마나 많은 매미가 살고 있는 걸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그들을 예쁘게 봐줄 수 있을 것 같다. 날개 달린 개미의 이름은 뭘까? 오늘은 그토록 싫어했던 하루살이들을 만나러 안양천으로 저녁 산책이나 나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