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 미술관, 한반도 섬
양구의 봉화산까지 간 것은 블로거들이 올린 운해 사진 때문이었다. 폭포의 장노출 사진처럼 산봉우리 사이로 흘러가는 구름은 정말 예술이었다. 일출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흘러가는 구름 사진 하나 멋지게 찍고 싶어 허리와 무릎이 아파 평지도 오래 걷기 힘들다는 사실도 잊은 채 집을 나섰다.
새벽 등반을 위해 전날 미리 춘천에 와서 자고 새벽 4시 반에 숙소에서 나왔다. 추울까 봐 옷을 몇 개나 껴입었지만 얼굴에 스치는 새벽 공기는 마치 가는 바늘로 찌르기라도 하듯 따가웠다. 게다가 전날 내린 눈은 녹다 다시 얼어붙어 완전 빙판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달린 지 한 시간쯤 지났을 때 희미한 불빛 아래 썰렁한 주차장이 보였다. 벌써 대여섯 대의 자동차가 와 있다.
마음이 급해졌다. 해가 뜨고 나면 운해는 바로 사라져 버린단다. 해발 800 미터나 된다고 하니 무릎과 허리에는 보호대와 파스로 도배를 하고 아이젠에 스틱까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마지막 몇 군데를 빼고는 지그재그로 난 길은 그다지 험하지 않고 완만한 오솔길 같다.
뒤따라오는 몇 팀의 일행들을 올려 보내고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벤치에 앉아 있을 때 중년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홀로 콧노래를 부르며 빠르게 뒤따라 오더니 우리와 함께 휴식을 취했다. 아침잠이 없다는 그는 새벽에 눈만 뜨면 운동삼아 이 산을 오른단다.
"이 산의 운해가 그렇게 멋있다면서요?"
"운해요? 그건 가을에 와야 볼 수 있죠. 요즘은 운해 보기 힘들어요"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 내가 양구까지 와서 새벽 산행을 하는 것은 단지 일출을 보기 위해서 온 게 아닌데......
"운해가 낄 것 같으면 이 정도 올라오면 벌써 보여요. 가을에 다시 오세요."
혼자 투덜대고 있을 때 뛰다시피 산을 내려가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반팔 차림이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이 정도 산은 아침에 조깅하는 수준인가 보다.
차츰 여명이 보이기 시작하자 플래시가 필요 없었다. 마지막 힘을 다해 정상에 올라보니 어느새 십여 명 넘게 해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봉화산은 정상석이 항아리라더니 정말 한가운데에 항아리 하나가 덩그러니 있다.
서쪽의 파라호와 동쪽의 소양호가 굽이굽이 흐르는 가운데 산 아래 마을은 장난감마을 같다. 좌우 어디를 보아도 전망 하나는 정말 끝내준다. 하지만 여유 있게 풍경을 바라볼 시간이 없다. 곧 해가 뜰 것이기 때문이다.
산 아래에서 힘차게 올라오고 있는 해는 어두운 하늘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다들 말없이 동쪽 방향만 쳐다보며 연신 셔터를 눌러대고 있다. 해 뜨는 순간을 보는 것은 처음도 아니건만 늘 가슴이 두근 거린다.
드디어 산등성이 사이로 빼꼼히 얼굴을 내밀더니 이내 온 세상이 환해졌다. 온통 밤만 지속대는 지구의 북쪽 사람들은 매일 보는 이 광경이 얼마나 부러울까?
커다란 파도가 연상되듯 낮은 산봉우리 사이로 넘실대는 멋진 운해는 보지 못했지만 봉화산의 일출은 멋있었다. 기온 차가 많은 9,10월 다시 도전해 보련다.
양구는 화가 박수근의 고향이다. 선생의 생가터에는 그를 기리는 미술관이 있는데 탄생 110주년을 맞아 소장품 특별전이 3월 9일까지 열리고 있다. 독창적인 기법으로 가난한 농가의 정경과 서민들의 일상적이고 평범한 생활을 주로 그렸다고 한다.
박수근 기념 전시관, 현대 미술관, 어린이 미술관, 박수근 파빌리온, 박수근 라키비움까지 총 5개의 전시관으로 나눠져 있어 건물을 옮겨가며 본다. 외부를 산책하며 만나는 멋진 조형물과 건축물을 감상하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파로호 상류(163만 평방미터)에 습지를 조성하고 호수 한가운데에는 한반도 모습을 한 인공 섬을 만들어 놓았다. 한반도 형태는 볼 수 없었고 무성한 갈대를 보며 겨울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주위의 높은 산에 올라가면 한반도 모습이 보이려나?
어디에나 있는 출렁다리가 파로호 위에도 있다. 2022년에 개통되었다는 상무룡 출렁다리는 주변의 산과 호수와 아주 잘 어울리지만 겨울이어서인지 아니면 조금 외진 지역이어서 인지 방문객이 딸랑 우리 밖에 없었다.
용소빙장 빙벽에는 빙벽 타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멋진 얼음 사이를 올라가는 사람들은 하얀 빙벽 위에 핀 꽃이 되었다.
꼭 운해를 볼 수 없더라도 정상 뷰만은 엄지 척하지 않을 수 없는 봉화산도 올라보고 얼음이 녹기 전에 빙벽의 모습도 보고 흔들리는 갈대길을 사랑하는 이와 걸어보면 좋을 것 같다. 이번 주말 양구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