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의 미학 4화
미국 대학으로의 편입이 확정되고 난 후 남는 학기를 어떻게 보낼까 하다 방문학생 자격으로 한 대학에서 기초 경제과목인 미시경제, 거시경제를 먼저 듣기로 했다. 두 과목을 한꺼번에 듣는 건 여간 쉬운 게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음에 다 도움이 되겠지.'라는 생각에 여름 학기를 여유롭게 놀지 않고, 시간과 돈을 투자하며 열심히 들었다.
다행히 좋은 성적이 나와 성적표를 들고 편입하는 학교의 학과 사무실로 향했다. 강의계획서와 성적표를 두 손에 쥐고 들어가 학점을 인정받기 위해 절차를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뭔가 잘못된 모양이다. 여름방학을 할애해가며 열심히 들었던 과목을 아름답게 인정받고 나면 앞으로의 학교 생활이 좀 더 멋질 줄 알았는데 뭔가 잘못된 모양이다.
한참을 상의를 하더니 이 두 과목을 들어도 각각 3학점이 아닌 2.7학점으로 밖에 인정이 안되다는 것이다. 또 전공과목이 아닌 교양으로 인정이 된다는. 그동안의 나의 노력은 다 어디 간 거지?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에 놀라 물어보니 미시경제, 거시경제를 먼저 들었지만 들었던 대학은 4학기제(Quarter)이고, 현재 학교는 2학기제(Semester)여서 수업시수가 달라 전체가 인정받지 못한다는 설명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어안이 벙벙했고, 이럴 줄 알았으면 실컷 놀기라도 할 것이라는 생각에 머리가 아파왔다. 그동안 제대로 삽질을 한 것이다. 처음부터 이 학점이 얼마큼 인정이 되고 어떤 과목으로 인정이 되는지 알아보았다면 아마 듣지 않고 신나게 힐링하는 여름방학을 보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서야 이곳 미국은 대학마다 다른 학기제를 사용하고, 또 이 학점을 인정받을 때 수업시수와 인정 방식이 달라 들은 과목을 인정받으려면 여간 쉽지 않다는 점을 깨달았다. 더불어 내가 2학기제 수업을 들었었다면 4학기제 대학으로 가면 그 과목은 3학점이 아닌 4.5학점을 인정받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 당시에는 이해가 가지 않아 억울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덤빈 내가 마치 불나방처럼 활보하다가 타 죽은 셈이었다.
앞으로 무언가에 시간을 들이고 노력하기 위해서라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예측되는 결과를 미리 알아보기로 했지만 사실 그것 또한 쉽지 않다. 모든 일은 내가 겪어봐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과목을 다시 듣고 책을 다시 사는 그곳에서는 익숙한 내용이라 좀 더 쉽게 따라갈 수 있었다. 삽질 만렙 스킬이 좀 더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처음엔 삽질을 한다고 생각해 후회스럽고 원망스럽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더 도움이 될 때가 있다. 그 순간을 위해 오늘도 난 수많은 삽질을 선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