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셔츠 패션, 애매모호한 정체성을 가진 장르, 속셈이 뭐냐 …
내일(오늘) 은 뭐 입지?
라고 혼잣말을 한다.
저렇게 많은 내 옷들 눈앞에 두고도 또 한 번 무기력해진다.
입을 것이 없다고 말이다.
역시 옷장은 풍요 속의 빈곤이다.
최근 캐주얼웨어가 흥미진진하다.
캐주얼웨어는 마땅히 갖춰야 할 매력이 있다.
무심한 ‘것’들끼리 무심한 듯 걸쳐져 올라오는 수려한 아우라이다.
‘잘 갖춰진 듯하면서도 헝클어진 취향’이 나에겐 멋을 넘어 섹시한 최면으로 다가왔다.
그런 거, 있잖아.
남성의 크고 거친 질감의 옷을 여자가 아무렇지 않게 툭툭 받아들인 묵직한 실루엣 말이다.
여성의 곡선 위에 올린 옷의 셰입이 우연히 잘 받아들여졌을 때 독특한 시각적 이미지를 창출한다.
남성의 티셔츠는 뻣뻣하고 억세다.
특히 목 늘어남 없이 입겠다고 목둘레부터 잡아둔 강도가 실루엣까지 여유를 주지 않는다.
정말 너에게 묻고 싶다.
그래.
옛날에는(?) 그렇수 있어.
그래도 지금, 이제는 … 이렇게 뻣뻣하다 못해 빡빡한 티셔츠 계속 입을 거야?
(너는 안다. 티셔츠를 만져보면 안다. 이 빡빡함이 뭔지)
조금 여유를 주는 거,
흔히 예전 스트리트 캐주얼웨어에서 이러한 소재를 주로 사용했다.
특히 스케이트보드를 서브컬처로 둔 브랜드들이 많이 그러했다.
맥락과 제품이 들어맞는다. 그럴 수 있다.
나는 ‘패션’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뻣뻣하고 견고한 티셔츠의 물성을 내려놓는다.
(여성복이나 컬렉션브랜드에서 주로 많이 사용하는) 실켓 가공이나 염색 가공 등을 활용한 티셔츠와의 차이를 즐긴다.
이것 역시 제품을 만져보면 안다.
눈으로 봐도 알 수 있다.
떠올려본다.
다가오는 봄(혹은 여름의)의 어느 날,
그가 (면 50수 정도의 ?) 얄찍하고 흐드러진 티셔츠를 입고 작은 보폭의 움직임일 만들며 걸어온다. 막연한 상상은 속수무책이다.
‘얇고 흐드러진 반팔 티셔츠’의 어울림을 꼽자면, 아마도 티모시 살라메겠지.
유연하고 부드러운 소재의 선택은 남성성을 뒤집어 섹시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우리는 티모시가 아니고, 될 수도 없다.
대개 티셔츠를 선택할 때 너의 선택지는 단조로운 맥락이다.
‘이 컬러가 나에게 어울리니 안 어울리니’라는 단순성보다, 좀 더 세련된 고민 제안한다.
세련된 고민은 디테일을 만든다.
결국 멋과 맛의 한 끝은 ‘디테일’ 이니까.
옷을 잘 입는 사람의 가장 큰 매력은 디테일을 이해하고 태도(제스처)로 표현하는 점이다.
캐주얼웨어의 가장 큰 매력은 ‘애매모호한 정체성’ 이다.
오묘하게 스며드는 무심한 듯 섹슈얼한 속셈은 무엇인지.
남성이 입는 캐주얼웨어와 여성이 입는 캐주얼웨어.
어떤 선택을 해야 맛깔스운 연출을 낼 수 있는 것일까?
어떤 브랜드 & 어떤 제품?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브랜드마다 사이즈 사양이 급진적으로(?) 다르다.
저마다 선택하는 소재의 질감과 질량 역시 다르다. 이 선택에 따라 발색되는 색감이 다르다.
또한 실루엣 역시 다르다.
(패턴 기술력 혹은 고민의 차이겠지.)
요 근래 내가 여러 가지 브랜드들의 티셔츠들을 입고 내린 결론이다.
각양각색의 ‘티셔츠 카테고리(반팔, 긴팔, 후드, 크루넥 티셔츠 등)’의 제품들을,
그것도 L 사이즈 중심으로 실컷(?) 입어보고 있는 요즘이기 때문에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옷을 입혀 보거나, 입어보거나, 구매 할 때 2가지 관점을 해석한다.
캐주얼웨어는 불편할 일이 없다.
따라서 각자 개인적인 기준의 충분한 힘을 싣는다면 실패할 이유가 없다.
사이즈의 올바른 착용감
사이즈의 뉘앙스 차이
사이즈 올바른 착용감은 L 사이즈 하면,
각 브랜드 마다 누구에게나 통용될만한 L의 기준과 사양에 충족되는 기준점이 있다. 너무 커도, 작아도 곤란하다.
물론 예외의 브랜드들도 있다.
특히 주관이 뚜렷한 브랜드들이 대개 그렇다.
다음에서 다룰 ‘입어 본 브랜드 〈 피어 오브 갓 에센셜 Fear Of God Essential 〉’ 이 대표적이다.
이 브랜드는 정말 확연히 다른 브랜드들과 사이즈 사양이 다르다.
특히 길이와 암홀 둘레의 차이가 엄청나다.
이 차이는 실루엣의 변화를 가져온다.
(자세한 내용은 본 편에서 계속…)
사이즈 뉘앙스 차이는, 취향의 차이다.
내가 L 사이즈를 입으면 확실히 크다. 하지만 이상하진 않다.
오히려 S, M을 입으면 사이즈는 맞다.
하지만 이상하다.
안 어울린다.
L 사이즈가 나에겐 제일 잘 어울린다는 말이다.
이게 뉘앙스의 차이다.
(갖가지 티셔츠 샘플 사이즈 L 를 피팅 할 때, 사이즈의 올바름은 L 사이즈의 남성 구성원을 입히고, 여성으로는 내가 입어보고 샘플의 상태 값을 확인하곤 한다. )
나는 답답해서 추위에도 불구하고 반팔 티셔츠를 입는다. 따라서 계속되는 나의 기술 내용은 반팔 티셔츠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개인이 느끼는 온도 차라는 점을 알아주길 바란다.
나는 캐주얼웨어 맨즈 브랜드 반팔 티셔츠를 구매할 때 L 사이즈를 구매한다.
구매할 때 중요하게 확인하는 정보가 있다.
총장
가슴둘레
소매길이
위 3가지는 프로포션을 결정짓는 정보라고 생각한다.
키 160cm 기준으로, 나의 전체적으로 상 & 하체 구성비를 고려했을 때, 적당한 총장, 그리고 가슴둘레의 너비에 따라 뒷판에서 앞으로 넘어오는 실루엣이 달라진다.
왜냐면, 나의 원래사이즈는 S 인데, 2 사이즈나 크게 입었기 때문에 크게 떨어지는 효과를 극적으로 나는 기대하는 것이다.
소매길이는 어느 지점에서 떨어지느냐에 따라 팔의 길이가 달라보일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게 생각한다.
〈 A 브랜드 반팔 티셔츠 • 3가지 정보 〉
총장 74cm
가슴둘레(단면) 59cm
소매길이 24cm
〈 B 브랜드 반팔 티셔츠 • 3가지 정보 〉
총장 77cm
가슴둘레(단면) 67cm
소매길이 22cm
A 브랜드와 B 브랜드의 3가지 정보의 차이를 확인해 보자.
총장은 3 cm 가 차이난다.
3cm 차이쯤이야…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 입어보면 꽤 큰 시각적 착시를 가져온다.
사실 1~2cm 정도만으로도 착시가 생긴다.
때문에 다수의 브랜드들의 사이즈 별 편차 중 [총장/ 전체 길이]의 차이를 보면 3cm 미만인 경우가 다수다.
개인적으론 77cm가 다소 긴 듯 하면서도 멋스럽게 느껴졌다.
74cm 는 안정적으로 잘 떨어지는 길이다. 하지만 뭔가 아쉬운 한 점이 느껴진다. 따라서 나는 다음에 티셔츠 구매 시 총장의 기준은 무조건 74cm 보다 길어야 구매할 것이다.
소매길이는 2cm가 차이나지만, 설명이 힘들다.
각 브랜드 마다 어깨선을 기준으로 소매길이를 측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값은 각 브랜드별 어깨선 위치의 차이에 기인한다.
어깨선은 브랜드마다 다른 위치에 두고 있다.
또한 티셔츠 라는 품목 안에서 줄 수 있는 디자인 & 실루엣의 지점이기 때문에 지극히 주관적이다.
‘나의 연출’ 값 기준에 두고 헤아리자면, 입었을 때 소매 기장이 팔꿈치에 떨어지는 길이를 기준에 둔다.
그 선을 기준으로 찰랑거리는 소매통의 움직임이 그럴싸하다.
A 브랜드가 스탠다드에 가까운 사양으로 미뤄봤을 때, 약 24~25 cm 소매 길이로 추정된다.
내 몸 보다 큰 사이즈는 다양한 연출력을 표현할 수 있다.
특히 다양한 레이어드 연출에 편리하다.
그 외에 소재 정보도 확인 할 수 있다.
소재는 COTTON 100% 경우가 많긴 하다.
레이온 이나 폴리에스터가 혼용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또한 요즘에는 워싱이나 가공 방법의 정도도 다양해져 뭐가 좋고 나쁘고 가리지 힘들다.
정도에 따라서 취향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소재정보를 확인하는 이유는 세탁 정보 외에도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앞서 설명한 것 처럼, 두께감(뻣뻣함의 정도)과 떨어지는 실루엣의 미세한 차이를 소재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이 티셔츠를 입을 때 ‘나에게 어울리는 소재’인가? 는 한 번 더 들여다 볼만하다.
자신의 몸보다 큰 옷을 입었을 때 남성과 다른 몸의 형태 그리고, 티셔츠 안에 입는 속옷의 겹침 등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고려해볼만한 정보이다.
다양한 남성들의 옷을 먼저 입었던 사람으로서 나는 말한다.
특히 여성들이 남성들의 옷을 입을 수록 ‘라운드 숄더’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
어깨와 가슴을 열고 옷을 대해야 한다.
이 점 때문에 소재 선택의 필요를 언급한 것이다.
아무리 작은 가슴이라 하더라도, 어깨를 여는 순간 ‘곡선’은 살아있다.
따라서 너무 얇아도 부담스럽고, 너무 두껍고 뻣뻣해도 가슴선에 쓸리거나 걸쳐져 민망해진다. 가장 큰 요인은 속옷(면 100%) 겹치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으면 괜찮을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가만히만 있을 수 있는가.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고 부딪히다 보면, 어느 순간 옷이 이상하게 붙어(?) 있을 수 있다.
사실 모든 티셔츠를 통틀어 [티. 셔. 츠] 하나만 입고 근사해 보이긴 쉽지 않다.
그냥 티셔츠가 티셔츠이지모.
그래서 나는 그냥 티. 셔. 츠라는 이걸 조금 근사하게 입어보고자 여러 방법과 질서를 만들며 지루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나는 여기에 그동안 잘 입었던,
나의 오버사이즈 테일러드 재킷과 코트 등도 치트키로 동력을 더해주고 있다.
또한 켜켜이 잘 쌓아둔 스니커즈들과 캠퍼 친구들도 조력자들이다.
언제부터인가, ‘내일 뭐 입지’ 보다 ‘내일은 어떤 티셔츠 입지’가 되어버렸다.
그냥 데님 팬츠에 반팔 티셔츠, 그것뿐이었다.
그래도 어쩌다 한번 쯤은 밑위가 길고, 아방가르드한 실루엣을 만드는 우븐 Woven 팬츠에 또 티셔츠를 입기도한다.
최근 면접이나, 미팅에 참석하는 일정이 왕왕 생긴다.
이럴 땐 각이 잘 잡히고, 내가 내 몸과 손에 길을 잘 들여둔 재킷을 걸치고 참석한다.
내 자리 뒤에는 저 재킷과 후드 집업이 걸려 있다.
언제든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의 자리에서 나의 포지션을 표현할 수 있는 ‘트릭 trick 용’ 한 가지,
약간의 서늘한 기운이 감돌 때 편하게 걸칠 수 있는 ‘안전용’의 또 다른 한 가지이다.
패션이라는 속성 자체가 물질주의적 세계관이다.
이 세계관을 표현하는 적절한 수단이 ‘패션’이 아닐까 싶다.
이 속에서 캐주얼웨어는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이 뒤엉켜 적당한 편안한 착용과 친숙한 멋을 만든다.
지나치지 않으면서도, 트렌드 지향적이지 않을 수 있고, 뭔지 잘 모르는 색다른 멋을 내뿜는다.
호기심이 가기 때문에 오묘하게 끌리는 힘이 있다.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그녀]
아름다운 용모와 밝은 미소, 상냥하고 여린 태도.
동시에 당차고, 독립적인 정신과 분석적인 언변.
때론 냉혹하고 차갑고(잔인할 정도) 거만한 분위기의 그녀.
[그]
여성스러운 남성, 부드러운 태도와 심미안과 여유.
급진적인 대담한 활동과 역동적인 움직임의 활기.
예측불가능한 그의 사고방식은 자신감이 넘친다. 종잡을 수 없다.
이처럼 ‘우리’ 안에는 양성적인 매력이 내재되어 있다. 다만, 그것을 끄집어내거나 표현하는 정도와 방법의 차이일뿐이다.
매력의 개연성을 심리학에서는 ‘리비도(억압된 욕망)’ 도 기인한다라고 학설적인 설명을 자세히 하고 있다.
리비도란,
사람들은 대부분 동성을 좋아하는 마음을 갖지만 사회적 제약 때문에 충동을 억압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무의식 저편에 억압된 마음이 있다.
이 마음은 ‘양성적인 매력’을 가진 누군가를 통해 알 수 없는 야릇한 감정을 느낀다는 짧은 해설을 덧붙인다.
매력은 이성의 호기심과 관심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성은 미지의 세계와 같다. 모르기 때문에 설레고 성가시기 때문에 ‘매력적’인 것이다.
저마다 이성이 심쿵하는 시각적 효과가 있다.
이러한 효과를 위해 우리는 패션이라는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다.
각자 이성에게 효과가 있는 수단과 방법들이 있다.
몸매가 드러나는 무언가를 입었을 때?
혹은 가슴골이 드러나는?
내가 남자라면?
나는 좀 다를 것 같다.
반전이 없다.
상상하는 재미도 없다.
내가 느꼈던 매개체 역시 티셔츠였다.
지금의 내 남편이 입던 얇고 후들거렸던 흰색 반팔 티셔츠.
그때 그의 뒷모습, 양쪽 견갑골에 걸쳐졌던 티셔츠의 흘러내림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된다.
편안하게 막(?) 입어도 좋을 법한 옷이지만,
잘 계산(?)했을 때 속셈을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패션의 장르 역시 캐주얼웨어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이것들이 이토록 오랜시간 이 시장에서 변화무쌍한 형태로 살아남고 있나 싶다.
애매모호하게,
속셈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의 유혹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
─ 가브리엘 콜레트 (Gabrielle Colet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