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 MZ 들은 이런가?
오랜만에 가진 회식이다.
내가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20여 명의 내 부서원들과 가졌던 지난해 늦가을 이후로 처음이다.
이번엔 전체가 아닌, 일부 구성원들과 가진 자리였다.
10명도 채 안 되는 우리끼리의 술과 저녁은 그야말로 즐겁기 그지없었다.
셋, 넷 나눠 앉아 고기를 굽고 늦은 오후부터 허기졌던 배를 채우고, 잔을 채우며 먹고 마셨다.
남이(가명. 남. 32세)는 여자친구가 없다.
하얗다 못해 허였고, 마른 체형을 가진 친구다.
연애를 하고 싶은데, 고민이다.
소개팅에 회의감이 든 지 오래이고, 운동으로 다져진(?) 건강한 정신 & 건강한 신체의 여성이 이상형이라고 한다.
남이야, 일단 그런 여자는 너를 안 좋아해.
이게 내 첫 번째 팩폭의 조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찾겠다면, 이라는 전제로 ‘ 여자들이 느끼는 매력적인 남자 ’에 대해 내가 겪은 경험과 학습된 유형(?)을 얄궂게 조언했다.
이내 우리는 잔을 들고, 부딪히며, 때려 마신다.
이때 갑자기 원(가명. 남. 26세) 친구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내가 웬만한 상황에서는 흔들리지 않는다.
여기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상황을 겪었겠는가.
사람을 쉽게 믿지 않고,
어떤 상황에도 의연할 수 있는 여유는 그냥 생긴 것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 당시 내가 너무 당황스러워서 전후 상황과 맥락이 정확하게 설명되기 힘들지만, 곱씹어 돌이켜보자면 이렇다.
저 XX 님, 좋아해요.
XX 님이 10살만 어렸으면, 저 고백했을 거예요.
1• 2 • 3 …
약 3초간의 내 머릿속이 휘저어졌다.
‘ 웃자고 한 얘기인 것 같은데, 어떻게 받아쳐야 자연스러우면서도, 나의 위치와 이미지를 지키는 걸까.’
라고.
응 나도 너 좋아해.
근데 갑자기 들이대고 이래. 야 너 빨리 더 마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는 저 입을 다물지 않았다.
진짜 처음 봤을 때,
이상형,
what if … 만약이라고 설명되는 여러 가지 그 친구만의 설정들이 계속되었다.
눈썹을 치켜뜨며 자신만만하게 끊임없이 쏟아냈다.
내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다.
‘ 저런 미친놈을 봤나 …’
결국 나는 내 현재 나이까지 까발렸다.
“우리 회사에 내 나이 아는 사람 거의 없거든!? 내가 오늘 너희들에게만 말한다.”
라고 마치 커밍아웃하듯 앞으로 다가올 이순을 준비해야 하는 나의 현재를 알고 ‘ 정신 차리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처음엔 술 마시고 선을 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기엔 이미 우리 애들은 ‘ 말술’ 세계에서도 어나더 레벨의 수준의 주량을 자랑(?)한다.
또한 희롱의 수준 역시 될 수 없었다.
감히(?) 나를 희롱하는 남자 혹은 직장 상사는 지금껏 없었다.
내가 뿜어내는 이미지와 제스처, 말투 이로서 만들어진 나의 [상]이 그러하다.
나는 나를 잘 알고, 확신한다.
저 대화들이 이뤄지는 동안 그 친구의 눈빛, 표정, 제스처 역시 특정하게 부정적인 단어로 규정되는 행동이 아니었다.
그래서 들었던 두 번째 생각,
MZ 들은 저런가?
나의 감정을 솔직한 수준을 넘어 경솔하고 선 없이 나대는 표현이 자연스러운 건가?
이렇게 1차를 마무리하고,
2차로 넘어갔다.
다행히 근처에 욱이의 친구가 영업하는 곳이 있다 하여 그쪽으로 모두 이동했다.
가는 길에, 걸으며 나는 창이(남. 34세 가명)와 조금 진지한 이야기를 했다.
그동안 미뤄뒀던 그 친구와 면담 종류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그 친구와 나는 잠시 좀 더 이야기하고 들어가자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원이가 올라왔다.
빨리 들어가자고 보챈다.
“그래. 추우니까 얘들아, 들어가자.”
라고 나는 말했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길, 또 원이는 나를 업고 들어가겠다고 한다.
이미 2차 가는 길부터 자꾸 나를 업고 가겠다는 걸, 대차게 걷어찼는데, 또 저런다.
이번에 명분은 이랬다.
주인공이 늦게 들어가니까, 업혀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미친놈아! 됐어! 고만 좀 해라.”
라고 또 한 번 대차게 받아쳤다.
다시 다들 자리를 잡고 삼삼오오 모여 우리들끼리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다들 배도 채웠겠다, 다소 시끄러운 분위기 속에 애들은 진정 ‘ 말술’의 진면모를 보였다.
소주 혹은 소맥 혹은 맥주 3가지 주종이 가뿐하게 어우러졌다.
우리는 끊임없이 마셨고, 목청껏 떠들었고 깔깔댔다.
이내 담배 피우러 우르르 몰려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기를 반복하며 우리들끼리의 흥 넘치게 제껴댔다.
최근 내게 이곳의 여유를 만들고, 마음을 열어 나에게 ‘사람’이라는 걸 들이기까지 시간과 거리가 필요했었다.
그동안 ‘못 마시고, 안 마신다’ 고 이곳의 모든 사람들과 거리두기(?)를 했었다.
그렇게 단단했던 나름의 힘이 여유로 치환되는 요즘이었다.
그래서인지 술이 즐거웠고, 자연스럽게 취기의 농도가 짙어지고 있었다.
사실 나도 이때쯤 되니, 알코올이 내 몸 한 바퀴를 돌아 기분이 좋아지는 정신 어딘가에 닿아있었다.
오랜만에 알코올을 넣은 것도 한몫했다.
다시 또 담배 피우러 우르르 나갔다.
이번에는 민이(남. 36세 가명)가 다 같이 사진 찍자고 한다.
얘들아 사진 찍재! 빨리 모여! 찍자 찍자!
이때 또 한 번 저 미친 원이의 등장.
업고 사진을 찍겠다고 한다.
이제는 여기서 내가 더 부끄러워하거나, 여자여자하게 구는 것이나 물러서는 것(?) 자체가 나답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야 그래, 업어 업어
근데 나 진짜 무거울 수 있다! 나 떨어뜨리면 너 죽는다!
그렇게 자신 있게 (?) 업혔다.
그리고 우리는 다 같이 사진을 찍었다.
그 이후에도 원이는 안아달라며 떼를 썼고, 나는 엄마(?)처럼 안아주며, 제발 얼른얼른 커서 (일을) 잘 좀 해라.라는 추임새의 언어를 계속 넣었다.
그 다음날,
우리 모두는 아무런 일이 없었던 듯 그날의 일과를 보냈다.
필요한 질문을 하고, 나는 알맞은 답과 결정을 내려주고, 내가 면밀히 관리 & 감독해야 할 것들에 대해 들여다보고 잔소리하며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여전히 적지 않은 타격감이 남아있다.
나에게 회식 자리는 리더로서의 간절한 마음에서 마련된 것이었다.
그동안 구성원들의 불안하고, 단합되지 않았던 마음을 다독이고, 감정의 찌꺼기들을 덜어내고 싶었다.
이로서 보다 나은 팀워크로 한마음이 되길 바랐다.
어쩌면 그들에게 일할 때 나는,
단호하고 깐깐하고 숨 막히는 리더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어제는 맞았고, 오늘은 틀리다고 말하는 게 ‘나’라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간 나에게 일어났던 심경의 변화를 들어주려고 애썼다.
조금 물러서니,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들의 마음 역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 친구들 역시 새로운 사업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을 뽐내고 싶었고, 잘하고 싶었던 발로에서 갈등이 시작된 것이었다.
이라는 걸 꼭 전하고 싶었다.
그들 역시도 이 여유를 공감한다면, 매일 일어나는 일과 현상에서 새로운 단서가 보일 것이라는 의미였다.
나는 다음 주에 출근하면, 그 녀석과 둘이 점심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이날의 에피소드를 끄집어내어, 또렷하게 해석해 줄 것이다.
경탄의 언어를 가르쳐 깨닫고 기회로 활용하길 바라는 의도를 전할 거다.
성장과 성공을 향한 너의 앞길에 정면으로 맞서야 할 많은 것들이 있을 거고,
시간은 유한하다고.
그러므로 그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섣부른 (?) 언행을 삼가고,
언젠가 다가올 ‘ 반짝거리는 순간’을 만들어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