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불명의 편지
어렸을 때 내 방에 미미인형 있었던 거 기억나지? 근데 미미인형이 출생 배경과 머리색, 스토리 비하인드에 따라서 가격이 막 천차만별이었잖아. 그때 내가 갖고 있는 미미인형이 세 개였는데, 전부 제일 비싼 미미인형의 반값에 산 인형이었던 것도 기억나지? 제일 비싼 미미인형은 가져본 적 없고, 그렇다고 제일 싼 피부가 검은 미미인형도 아니고... 피부가 하얗고 눈이 새파란 미미인형 중에서 제일 싸거나 5천 원쯤 비싼, 어린 시절의 나를 꼭 닮아 보잘 것 없는 출생 배경을 가진 미미인형들.
근데 나 초등학교 2학년 때 우리 할머니 친척 중에서 도곡동에 집이 몇 채나 있고 프랜차이즈 식당 운영한다는 부자 할머니 있었잖아. 빨간색 명품 브로치 자주 하시고 비싼 밍크코트 입고. 우리 집 놀러 올 때마다 나한테 용돈 주시고 내 이야기도 잘 들어주셔서 내가 참 좋아했는데. 아무튼 추석에 그 할머니네 집에 친척들이랑 다 같이 놀러 갔는데 우리더러 너네 명절 선물 하나씩 사준다고 친척애들 다 데리고 문방구 갔었잖아. 뭐든 사고 싶은 거 하나씩 고르라고, 돈 생각하지 말고 비싼 거 골라도 되니까 평소에 너무 갖고 싶었는데 못 샀던 거 하나씩 사라고 했잖아. 그때는 대형마트가 지금처럼 골목상권 여기저기 비집고 들어와 점령하던 때가 아니라서 문방구가 유일한 우리의 보물창고였고. 그때 나는 아직 뭐가 있는지도 제대로 못 봤는데 남자애들은 문방구 들어가자마자 로봇 장난감 하나씩 골라서 손에 들고 있는 거야. 큰 삼촌댁 아들이 들고 있는 게 8만 원짜리 3단 변신 로봇이었지 아마. 지금도 8만 원이면 장난감 치고는 비싼편인데 쌍쌍바 하나에 100원 하던 그 시절에는 어땠겠어... 그런 걸 고민도 안 하고 덥석 들고 신나 가지고 계산대에 척 올려놓고 있대. 다른 애들도 다들 5만원이 넘는 비싼 장난감 골랐던걸로 기억해. 이제 나만 고르면 계산이 끝나는데, 나도 사실 문방구에서 제일 비싼 미미인형 갖고 싶었거든? 가격도 안 잊어버려. 5만 5천 원짜리 왕자와 공주 세트! 막 옷도 화려하고 예쁘고 장신구도 많고 가방도 있고 왕관도 쓰고 있어. 게다가 왕자 인형도 있으니 둘이 한 쌍이야. 얼마나 보기 좋아. 왕자랑 공주를 한 번에 차지하면 내가 왕국을 건설하게 되는 건데 그게 얼마나 갖고 싶었겠어. 5만 5천 원짜리 미미인형은 엄마가 나 생일선물로도 못 사줄 텐데. 그런데 옆에 2만 원짜리 내가 평소에 사던 거하고 비슷한 평범한 미미인형 하나가 있었거든. 그래서 내가 그 2만 원짜리랑 5만 5천 원짜리 인형 상자를 눈앞에 두고는 뭘 고를지 엄청나게 고민을 했었잖아.
왜 고민했냐고? 비싼 인형이 당연히 훨씬 갖고 싶었지. 갖고 싶은걸로만 치자면 5만 5천 원짜리 인형 진작에 골랐겠지. 근데 나, 경제활동은 안 해봤어도 돈 버는 게 정말 힘들다는 건 내 방문 바깥에서 꽂히던 어른들의 날선 대화를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5만 5천 원이라는 거금을 허무하게 써버리는 게 너무 죄송스러웠던 거야. 근데 어른들이 그 할머니 엄청 부자라 했으니 이 정도는 골라도 되지 않나 싶어서 계속 고민하고 있는데, 할머니가 넌 왜 못 고르니? 하고 와서는 내가 두 개 갖고 고민하는 거랑 고민하는 이유까지 금방 알아차리고는 비싼 인형 덥석 집어 들어 이거 사라 이게 예쁘다 하고 계산하려고 했잖아. 근데 내가 아, 아니에요. 저 이게 좋아요. 하고 화내듯 후다닥 달려가 할머니 손에 든 5만 5천 원짜리 인형 뺏어서 쇼윈도에 다시 올려두고 2만 원짜리 인형을 계산대에 올려놨었지. 그럼 내 선택에 후회가 없어야 되는데, 나 집에 가는 내내 엄청 후회했잖아. 지금이라도 5만 5천 원짜리로 바꾼다고 할까하고 차가 출발하기 직전까지 고민했잖아. 그래도 겨우 마음 달래고 괜찮아. 미미인형 새로 산 게 어디야. 예쁜 옷 사서 입혀줘야지. 하는데 앞에서 우리 집 가려고 승용차 타고 있던 그 부잣집 할머니가 내 속도 모르고 내가 철들었다고 참 착하다고 뒷좌석에 앉은 우리 할머니더러 칭찬하는 걸 듣고는 왈칵 눈물이 나던걸. 어른들한테 우는 거 들키는 건 왜 또 그리 수치스러웠던지, 입술 꾹 깨물고 눈 새빨개질 때까지 참았잖아. 나 왜 착하다는 말을 들어야 하지? 왜 내 친척은 8만 원짜리 로봇 골랐는데 나는 5만 5천 원 짜리도 못 고르지? 그러면서 엄청 서러웠는데 한 마디도 안하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입 꾹 닫고 있었던 게 기억나네. 그러고 집에 도착해서는 방문 닫고 들어가 미미인형 꺼내 가지고 몸통이랑 머리통 분리하면서 화풀이 했잖아. 인형이 무슨 죄라고.
내가 그런 애였어. 가질 수 없는 건 욕심도 내지 않는 아이. 정작 가진 것에는 만족하지 못하는 아이. 욕심을 내면 벌을 받을 것 같았어. 할머니는 내가 철이 들었다고 했지만, 실은 난 철이 든 게 아니라 겁많고 소심했던거야. 나이 먹으면 내가 갖고 싶은 거 다 갖고, 사고 싶은 거 다 사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며 살 거라는 다짐조차 못했어. 그런 목표지향적인 태도보다 체념을 먼저 배웠거든. 문제는 내 인생 전반을 살아가는 태도가 쭉 그러했다는 것이지. 뭔가 갖고 싶어질 때는 그게 내 것인지 아닌지를 먼저 생각했고, 조금이라도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싶음 빠르게 포기했어. 내 안에 모종의 패배의식을 심어 무럭무럭 키웠던 거지. 친구도, 애인도, 직장도, 심지어 가방이나 옷마저도 나는 좋아서 하는 선택이 아닌 감당할 수 있는 선택을 했어. 내가 좋으면 사고,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면 만나보면 되잖아. 그 단순한 삶의 방식을 좀처럼 적용하지 못해 뭐든지 시작조차 어려웠던 게 나란 말이야. 그래서 나 단순하게 사는 사람들이 제일 부러웠잖아. 그렇다고 내 인생이 너무 지나치게 단순해지는 건 또 싫었고. 그러면 답답하고 지루해서 못 견딜 것 같았으니까. 결국 뭔가를 좀처럼 선택하지도 못하고, 시작하지도 못하고, 겨우 시작하거나 이뤄내 가진 뭔가를 두고는 이게 정말 내 것이 맞냐며 스스로를 지칠 때까지 몰아세우고, 그러다 내팽개치고. 그게 나였어. 모든 날과 매 순간에 어떤 확신도 없었던 망가진 영혼. 왜 그렇게 되었던 걸까? 언제부터 망가지기 시작했던 걸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사람이 자꾸 세월을 역행해. 현재를 살아야 하는데, 과거로 가. 그래서 과거를 더듬지? 그럼 화가 나. 그냥 화가 나. 근데 누구에게 화내야 할지 모르겠어서 누구를 탓하지도 못해. 설령 누굴 탓하더라도 결국엔 내 잘못이야. 아님 내 부모 잘못이야. 그럼 탓해봐야 뭘 하겠어. 다들 서툴고 힘들었던 거지, 나쁜 건 아니었거든. 그러니 이제 와 누굴 탓하겠냐고.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사는 건 고통이다. 남들도 다 이렇게 힘들게 산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냥 살았거든. 근데 SNS를 보면 왜 이렇게 행복한 사람들이 많이 보이니? 다들 얼굴에 근심 한 포기 자라날 틈도 없어. 그냥 마냥 편안하고 즐거워 보여. 막 웃음이 가득해. 그러면 그들을 보는 것과 그들의 존재 자체로 나에겐 상처가 되는 거야. 다행히 SNS에는 차단이나 숨기기 기능이 있잖아. 그래서 차단해. 숨겨. 그럼 안보이니까 좀 괜찮아. 이런 내가 한심하더라도,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그렇게 해야 했어. 그리고 설령 남들이 봤을 때 한심하더라도 나만큼은 나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워하고 싶었거든. 그러려면 내가 만든 세계와 나의 우주 안에서 내가 가장 잘난 사람이고 무결한 인간이어야 했어. 그래서 불편함을 유발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없는 셈 치고 내 삶에 집중하자고 매번 다짐을 하곤 했어.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의 목표가 그거였거든. 내 삶에 집중하고, 하루하루 나를 더욱 사랑하기. 지금도 그래. 나는 내가 너무 자랑스러워서 나를 생각할 때 기쁨으로 넘쳤으면 좋겠어. 이런 마음은 태어날 때부터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고 하루하루 진취적이며 적극적인 삶의 방식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해를 못 하겠지? 그들은 너에게 편지를 쓰는 지금 이 순간의 내 기분, 안간힘으로 나를 사랑하고 보듬고자 애쓰는 지금의 이 기분도 모를 거야. 마찬가지로, 나도 그들을 이해하지 못해. 그러니 어쩌겠어. 어느 정도는 어울리더라도, 마음속으로 저들과 나는 다르다며 선을 긋고 거리를 두며 나를 보호하는 것이 나의 최선이었지.
근데 정말 나 빼고 다들 행복할까? 그게 맞을까? 넌 어떻게 생각해? 내 존재의 일부를 떼어내 만든 다정한 친구야, 한번 대답해 보렴. 나는 너와 나를 분리하여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쓰며 나를 위로하지. 근데 누군가에겐 너란 존재의 형상이 공포의 대상이나 불쾌한 땀냄새 같은 걸 수도 있잖아. 그런 사람들은 나처럼 이렇게 너를 드러낼 수 있을까? 아니, 너의 존재 자체를 알고는 있을까? 다들 그늘 하나씩은 안고 살아가. 그림자 말이야. 나는 그림자가 그 사람의 비밀을 말해준다고 생각해. 해가 가장 쨍한 자리에선 누구에게도 비밀은 없어. 다 탄로 나. 그래서 나는 어차피 탄로 날 바에야, 내 그림자는 이렇게 생겼소. 나는 이런 사람이오. 하고 드러내고 싶어. 그 과정에서 내 내면이 치유되고 마음은 한결 가벼워질 거라 믿어. 하지만 누구나 너처럼 너를 드러내지는 못할 거라고. 그들은 뭘로 내상을 치유하지? 운동? 연애? 요리? 무엇으로도 가능할테지만 그것만으로 정말 충분한 걸까.
오랜만에 이런 편지를 쓴 이유가 뭔지 궁금하겠지? 솔직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래. 있지, 나는 앞으로도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보고 싶지 않은 것을 숨기고 차단하며 살아갈 것 같거든. 근데 이왕이면 나 누구도 부럽지 않은 내가 되고 싶어. 그런 내가 되기 위해 앞으로도 너의 존재를 숨기지 않으려고. 나는 앤디 워홀이나 존 레넌처럼 살아가고 싶어. 아... 물론... 오해는 하지마. 그들처럼 단명하고 싶다는 이야긴 아닌거 알지?
오늘 내 폰을 봤는데 지난주 스크린 타임이 8% 증가했고, 하루 평균 기록이 11시간이라고 알려주더라. 그 11시간의 대부분을 내가 SNS에 갇혀 지냈더라고. 그리고 그 시간 중 일부는 나보다 행복하고 나보다 잘났고 나보다 부유한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하는 데 썼지 뭐야.
나는 요즘에 잠이 좀 늘었어. 피로를 잘 느껴. 근데 아침에 일이 있어서 나갈 때를 제외하고는 자고 싶은 만큼 충분히 자며 꽤 만족스러운 수면을 즐기고 있어. 일어나면 하루 동안 해야 할 일의 리스트를 정리하고, 간단한 요리를 해 먹고 일을 시작해. 그러다 기분이 좀 처지거나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으면 산책을 나가. 개한테도 사람한테도 산책은 좋은 것 같아. 한낮의 햇살을 쬐고, 바람을 맞으며 걷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거든. 나 2년 후에 집을 나와서 혼자 살 계획인데, 그때도 지금처럼 프리랜서로 삶을 이어갈 수 있다면 꼭 개를 키울 거야. 지금은 혼자 다니지만 그때는 개와 함께 산책을 다니겠지. 집에 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 늘 함께 있고 산책도 자주 다닐 수 있어서 개에게도 나에게도 좋을 거야. 개를 키울 생각을 하면 난 기분이 이렇게 금방 좋아지곤 해. 개를 키우기 위해서라도 프리랜서 생활을 계속 이어가야겠는걸? 아. 기분이 좋아졌으니 이제 편지를 마쳐야겠다. 나는 앞으로도 기분이 안 좋을 때만 널 찾을 거야. 그건 네 존재의 이유이니 서운해도 소용없어. 실은 나 널 별로 좋아하지 않아. 싫어해. 그래도 해치진 않아. 왜냐하면 넌 내 일부이고, 늘 그곳에 있다는 걸 아니까. 내가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며, 차분하게 지내렴. 그럼 이만, 안녕.